2001년 6월 16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78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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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6일 [그해오늘은] 국경없는 우주에서



1977년 오늘 우주과학자 폰 브라운이 눈을 감는다. 2차대전중 V-2 유도탄으로 런던시민들을 떨게 한 독일 과학자가 미국인으로 삶을 마친 것이다. 미국에서는 달 착륙을 이룩한 주역이 됐으니 두 개의 삶을 산 것이다.

그러나 폰 브라운의 얼굴은 오직 하나다. '과학자'. 어려서부터 달나라 여행을 선망했던 그에게는 V-2도 아폴로 우주선도 같은 '여행도구'였을 뿐이다. 독일에서나 미국에서나 달나라까지의 거리도 같다.

바이마르 공화국 농업장관이던 마그누스 남작을 아버지로 둔 그는 '귀족의 아들'로 태어나 '하늘의 아들'로 자란다. 우주가 있는 하늘의 일만을 생각해서 그렇고 과학자로 성장할수록 신앙심이 두터워서 그렇다.

그가 견신례 선물로 망원경을 받아 어려서부터 우주에의 관심을 키운 것도 부잣집 아들의 우연이라기보다는 하늘의 섭리같다. 어린 시절 수학 성적이 나빴던 그가 로켓의 선구자 오베르트의 '행성간 우주 로켓'이라는 책을 읽고 수학 공부에 열을 올린 것도 그렇다.

2차대전에서 독일이 패하자 그에게 눈독을 들인 소련군을 피해 미군에 항복한 것도 우연은 아니다. 그런 폰 브라운이기에 살상무기를 개발한 것은 일생을 따라 다니는 그림자였다. 그는 말했다.

"외과의사의 칼은 사람을 살리지만 흉기도 될 수 있다. 과학의 도덕성은 사용하기에 달려 있다."

하긴 'V-2'도 원래는 'A-4 로켓'이었으나 나치 선전상 괴벨스가 '보복무기'(VergeltungsWaffe)라고 바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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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세계일보 200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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