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11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75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http://columnist.org
*딴 글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흔들리는 가장

가장이 흔들리고 있다. 사춘기 소년처럼 외로움을 타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특히 40,50대 중년 가장들이 더 심하게 외로움을 탄다는 것이다. 피곤한 직장의 하루를 마치고 가정에 돌아가면 왠지 낯설어 '손님 같다'는 느낌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다. 공동의 화제가 없어진지 오래인 부부간에는 침묵이 흐르기 일쑤다. 학교나 학원에서 돌아온 자녀들은 자기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아 더욱 외톨이가 된다. 최근 중년남성의 일탈을 다룬 TV 드라마의 인기도 가장의 소외감에 공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으로서 부양의무밖에 없는 것이 아닌가 허탈해 하기도 한다.

40,50대는 고도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으면서도 구조조정 바람과 디지털 문화에 재빠르게 적응하지 못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크다. 연봉제가 확산되면서 직장분위기도 변했다.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동료도 줄었고, 후배들은 퇴근과 함께 뿔뿔이 흩어지기 바쁘다. IMF 이후 50대들이 직장에서 많이 사라졌다. 방패막이가 없어진 40대들이 불안해하는 실정이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무 자르듯 호봉 높고 봉급 많은 50대부터 잘랐다. 구세대의 노하우와 신세대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조화를 이루면 조직 발전의 원동력이 될 수 있건만 인정사정 볼 것 없이 토막을 냈다. 사회발전의 에너지 창출에도 역행하는 처사다.

그래도 직장에 남아있는 중년 남성은 그나마 다행이다. 실직 가장의 갈등과 외로움은 더욱 심하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던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일수록 외로움의 폭은 더 크다. 실직이후 두문불출하는 사람도 주변에서 쉽게 보게된다. 탈출구를 모색하려고 섣부르게 투자를 했다가 퇴직금마저 날린 경우도 보았다.

아내와 자식간의 불화를 호소하는 이들이 늘면서 '중년이혼'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혼이 너무 쉽게 이루어지고 있어 가정해체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33만쌍이 결혼하고 12만쌍이 이혼했다. 세 쌍이 결혼하면 한 쌍이 이혼하는 셈이다.

실직자 가정이 늘면서 '황혼이혼'도 늘었다. '검은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아야 한다' 주례사도 공허한 메아리가 돼버렸다. 허물을 덮어주고 서로를 감싸려는 포용력도 부족하고 인내심도 예전 같지 않다. 돈 문제와 인터넷 중독, 알코올 중독, 구타 등 이혼사유도 다양해졌다. 이혼을 생각하면서도 부부관계를 유지하는 잠재이혼도 많다고 하니 이혼율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잘못된 결혼으로 판단되었다면 보다 나은 나름대로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이혼을 선택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행복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여성의 목소리가 상대적으로 커졌다는 것은 시대의 흐름이다.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가 '부부재산계약'을 법원에 등기 신청하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재산관리 내용을 꼼꼼히 따져보면 여성쪽의 주장이 많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혼이 부부간 갈등의 마지막 수단이 아니라 손쉬운 해결책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5월 21(둘이 하나된다는 의미)일을 '부부의 날로'로 채택하여 국가기념일로 지정하자는 추진위원회까지 발족했을까. 이런 추세라면 한 때 인기를 끌었던 연극' 이혼파티'를 모방한 이혼파티 이벤트 업체까지 등장할지도 모른다. 메마르고 삭막한 사회일수록 가정의 건강은 더욱 소중하게 지켜져야 한다.

-------
이규섭
칼럼니스트
일요서울신문 편집인 겸 편집국장
2001.06.11
---------------------------------
http://columnist.org 서울칼럼니스트모임

[칼럼니스트]를 이메일로 받아 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빈 칸에 이메일 주소를 써 넣어 주십시오.
  구독  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