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필자 이규섭의 첫 글 싣습니다. - [칼럼니스트]

2001년 6월 9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74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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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 글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보신을 위한 '규정 타령'

영월댐 건설 백지화 선언을 한 지 1년이 됐다. 멸종위기 동·식물을 보호하고 생태계를 보전하자는 국민의 여론을 반영한 정부의 조치였다. 그러나 국내 환경사의 한 획을 긋고 종합보존대책 수립이 진행중인 강원도 영월군 동강 현장은 개발에 야금야금 훼손되고 있는가 하면 래프팅 인파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어 생태계 보전 의미가 퇴색되어 안타깝다.

영월댐 건설이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를 당시 필자는 동강의 어라연을 둘러보고 아름다움에 반해 '동강을 동강내선 안 된다'는 주장을 칼럼과 사설을 통해 펴기도 했다. 단종의 유배길을 탐방했는가 하면 김삿갓 유적지, 뗏목축제 등 영월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갖고 취재한 바 있다.

영월은 단종과 관련된 문화유적이 있는 역사의 고장일 뿐 아니라 희귀한 동·식물이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는 자연생태계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21세기는 환경과 관광이 두 축을 이룰 것이라고 판단한 필자는 몇 년 동안 문닫은 학교를 활용하여 자연생태학교를 설립, 운영하는 구상을 꾸준하게 준비해 왔다.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자연생태계 현장체험을 통해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역사 탐방과 아우르는 관광벨트를 조성하고 싶었다.

이를 위해 문닫은 학교를 물색하던 중 영월 금룡중학교가 지난 2월말에 폐교가 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2월초 사전 답사를 위해 학교를 둘러보았다. 눈 쌓인 운동장과 텅 빈 교실은 휑뎅그렁했으나 학교 앞으로는 주천강이 길게 누워 있고 교실 뒤쪽엔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자연생태학교로 활용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문제는 임대료가 비싸다는 점이다. 금룡중학교는 지난해 폐교가 된 금룡초등학교와 동시에 임대되는 덩치가 큰 건물이다. 수입이 보장되지 않은 자연생태학교 운영에 높은 임대료는 부담이 아닐 수 없다.

영월교육청 관계자들과 임대료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협의했다. 제시한 방안은 두 가지. 주민 명의로 빌리거나 해당 지자체에서 임대하여 위탁운영하는 방안이다. 그 때부터 5개 마을 이장과 주민, 총동문회장 등을 만나 이해와 협조를 구하려 다녔다. 주민동의 절차가 진행중인 4월 초순. 교육청 담당공무원이 '주민이 임대하여 재임대하는 것은 규정에 어긋난다'고 통보해 왔다. 허탈했지만 아쉬운 쪽은 필자가 아닌가.

다시 지자체 관련공무원 등을 만나 임대 협조를 요청했으나 난색을 표명했다. 지자체 예산이 없을 뿐 아니라 임대료 연체 때 지자체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투자비용 전액 부담 등을 약속하며 어렵게 지자체의 협조를 구했고, 군수 명의로 임대하기로 결재를 받아냈다.

그러나 교육청 관계자는 지자체의 투자 계획이 미흡하고 지자체장이 폐교를 임대하여 민간인 참여로 운영하면 '전대(轉貸)' 규정에 어긋난다며 불가통보를 했다. 그렇다면 그 공무원은 '전대' 규정을 모르고 지자체와 협의하라고 한 것인지 답답한 노릇이다. 담당공무원은 지자체에서 투자하리라고 예상했다지만 간접투자도 투자는 투자 아닌가. 지난 5개월 동안 쏟은 노력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경비와 시간의 낭비는 물론 '보신(保身}을 위한 공무원의 규정타령'에 철저하게 기만당하고 우롱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폐교는 청소년 교육시설과 주민 복지시설 등으로 활용하게 돼 있다. 규정을 따지며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학교는 방치되고 유리창이 깨지는 등 훼손됐다. 만약 그 건물이 담당공무원의 개인 재산이라면 규정만 따지며 방치할 것인지 되묻고 싶다.

규정만 지키면 '만사 OK'라는 무사안일과 뇌물만 받지 않으면 자리를 보전할 수 있다는 '철밥통'식 보신주의가 언제쯤 공무원 사회에서 사라질 것인지. 발상의 전환과 전근대적 의식의 혁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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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섭
칼럼니스트
일요서울신문 편집인 겸 편집국장
2001.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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