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 7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72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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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당신이 개라는 사실을 모른다

"On the Internet, nobody knows you're a dog" (인터넷에서는 아무도 당신이 개라는 사실을 모른다). 인터넷의 속성과 관련해서 이 말 만큼 핵심을 찌른 경구도 없을 듯하다.  

인터넷시대 최고의 격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 말은 미국의 만화가 피터 스타이너라는 사람이 미국의 주간지 「뉴요커」(1925년 H.로스가 창간한 잡지) 1993년 6월5일호에 게재된 만화에서 맨 처음 사용했다. 그는 컴퓨터를 하는 개가 의자에 앉아서 다른 개에게 바로 이 말을 하는 모습을 그렸다.

 스타이너가 왜 이런 만화를 그렸을까. 예리한 통찰력을 가진 그는 인터넷의 특성인 익명성과 모호성이 갖는 부정적인 현상을 풍자하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의 심오한 뜻을 금새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몇 달이 지나서야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고 한다. 유명한 화가의 그림이 수십년 뒤에야 가치를 인정받는 것보다는 행복한 경우라고 하겠다.

이 말은  스타이너가 그의 만화에서 처음 했을 당시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모든 것이 인터넷으로 표준화돼가고 있는 이 시대의 금언(金言)이 되어 네티즌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프리덤 포멈의 테크놀로지 및 프로그램 담당 부사장인 애덤 클레이턴 파월 3세가 국제회의 「팝테크 2000 : 디지털시대의 인간」에서 강연할 때 이 만화를 인용했다. 그는 이 만화가 인터넷의 모호성을 정확하게 묘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전세계의 누구든 MIT총장이나 미국대통령에게 e메일을 보낼 수 있다. 그가 사실은 말리공화국의 11살 밖에 안된 어린이라는 사실을 누가 알 것인가?" 라고 반문하며 인터넷의 모호성에 대해 비판을 가했다.

인터넷에서는 설사 내가 인간이 아닌 동물일지라도 자판을 두드릴 줄만 알면 (그렇게 되기는 불가능하겠지만) 상대방은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해 줄 것임이 틀림없다. 상대방은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비약적인 이야기지만 컴퓨터를 쓸 줄 아는 로봇이 나타난다면 이 같은 일이 불가능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네티즌들은 인터넷상에서 채팅을 하며 사귀고 있는 사이버친구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오프라인에서 만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온라인에서만 대화를 하고 있다. 그래서 얼마든지 이쪽의 신분을 속일 수가 있다. 그런 일이 전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것도 인터넷이 갖고 있는 특성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30대 기혼남자가 10대 소녀라고 속이고 채팅을 하는 경우를 가끔 볼 수 있는데 가상공간에서의 나와 현실에서의 내가 꼭 같은 캐릭터를 가진 사람으로 행사할 필요가 없는 점을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커뮤니티사이트에는 인터넷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이버결혼식을 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현재 선을 보인 곳은 5∼6개 정도이나 그 숫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인데 사이트마다 수백쌍의 사이버부부가 등록(혼인신고)돼 있다.

이들 사이버부부가 결혼을 하고 살림을 차리는 곳이 비록 사이버공간이지만 살아가는 방식은 현실의 흉내를 그대로 내고 있다. 사이버예식장에서 사이버고객(아바타)들이 축하하는 가운데 가상결혼식을 하고 아파트를 장만해 살림을 차린다. 혼수는 사이버백화점에서 들여놓은 것들이며 부부생활을 하면서 포옹이나 키스 등 애정표현도 사이버형태로 할 수 있다. 당연히(?) 아이까지 낳아 기를 수 있으니 현실에서와 비슷한 결혼생활을 경험할 수 있다.
 
사이버세상의 풍속도가 이렇게까지 발전하고 있는데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사이버결혼은 미혼의 네티즌들이 사전에 배우자선택과 재테크 등의 경험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없지도 않다. 그러나 사이버공간에 몰입하다 보면 현실로 착각하여 잘 못된 일을 저지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이버상의 남편과 아내의 역할에만 몰두한 나머지 현실에서의 부부관계에 금이 가 이혼에 이르거나, 사이버배우자를 직접 만나서 불륜의 관계를 맺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사이버결혼을 했다가 예사로 이혼하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인터넷커뮤니티에서 만나 결혼한 사이버부부가 수십만쌍이며, 사이버이혼률도 30%를 넘는다고 한다. 이러다가는 네티즌들, 특히 청소년들이 왜곡된 결혼관과 가족관을 갖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중국에서도 네티즌사이에 사이버결혼이 확산되고 있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는 소식이다. 얼마 전에는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서 20대 후반의 사이버남편이 10대 후반의 사이버아내에게 만나 줄 것을 요구하다 거절당하자 상대를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해 뉴스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중국경찰당국은 이런 일이 빈번해지자 대처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나 법적으로 규제할 방도가 없어 고민이라고 한다. 일부 사회과학자들은 사이버결혼을 일반결혼과 똑같이 인식하고 법적 문제가 없으면 허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는데 아직은 이른 판단인 것 같다.

사이버공간이라는 특성 때문에 앞으로 10대 소녀와 70대 할아버지, 40대 유부녀와 30대 유부남이 자신의 실제 나이와 신분을 감추고 전혀 다른 인격체로서 사이버결혼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생길 것이다. 채팅할 때 남자이면서 여자로 행세하는 사람이 많은 걸 보면 자신의 신체적인 성(性)까지 속여 사이버결혼하는 경우도 흔할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일들이야말로 인터넷의 모호성이 극치를 이루는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결혼인데 이런 분위기라면 사이버결혼은 본래모습을 가진 사람보다는 헛된 모습의 가짜 인생들끼리의 잔치가 될 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이 우리생활과 밀접해질수록 긍정적인 것 못지 않게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는 부정적인 현상들이 잇따라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들을 수수방관했다가는 어떤 불행이 닥칠지 모를 일이다. 지금이야말로 사이버공간이라는 무대에서 주역을 맡고 네티즌들이 「사람냄새 나는 인터넷문화」를 가꾸는데 앞장서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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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1.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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