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 30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68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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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진짜보다 더 황홀한 사이버시상식 비스

한국과학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는 사이버과학연구센터가 지난 26일 제2회 사이버과학반 경진대회에서 입상한 학생들을 위한 시상식을 사이버공간에서 가졌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이 같은 사이버시상식은 국내에서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시상식이란 원래 수상자들이 행사장에 참석해서 이름을 부르면 단상에 올라가 상을 받는 것이 상식적인 일로 돼있다. 대회에 참가해서 경쟁자를 물리치고 입상하여 남들이 부러워하는 가운데 단상까지 나가서 상을 받는 순간이야말로 온 세상이 나의 것이라는 감동과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번 행사의 수상식에서는 수상자들이 직접 행사장까지 가서 상을 받는 방식이 아니라 컴퓨터를 이용해 사이버시상식장에 들어가 자신의 아바타(Avata)가 상을 받는 형식을 취했다. 아바타라는 것이 사이버공간상에서 활동하는 나의 분신이라고 볼 때 또 다른 내가 직접(?) 상을 받는 방식은 많은 사람들(네티즌)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고 하겠다.

과학문화재단측은 수상자들에 대한 예비소집도 사이버시상식장에서 가지는 등 모든 과정을 사이버틱하게 진행했다. 재미있었던 것은 이 행사와 관계없는 네티즌들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색다른 행사를 보기 위해 방문객으로 참석해 성황을 이루었다는 사실이다.

이쯤 되면 현실세계의 입상자들이 꼭 「진짜 시상식장」에서 많은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영예의 수상을 하는 것 못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나의 분신인 아바타가 다른 참석자들로부터 축하를 받으니 진정한 네티즌이라면 관계자와 가족, 친지들만 참석하는 진짜시상식 보다 사이버시상식이 더 실감(?)이 나고 기분도 좋을 지 모를 일이다.

"오늘 사이버상에서 처음으로 시상식을 참가하고서 오늘밤 또다시 잠을 이루지 못할것같습니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사이버 시상식. 발명품제작을 하면서 풀리지 않는 어떤 부분을 해결했을 때의 그 황홀함도 이것보다는 못할 것입니다."

이번 경진대회에서 최우수 발명반에 뽑힌 울산 웅촌중학교 과학반의 박재섭지도교사가 과학문화재단의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린 「황홀한 시상식에 참가하고서」라는 제목의 글이다. 사이버공간이라고 해서 수상의 기쁨이 현실공간 못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어떤 학생은 수상소식을 듣고 게시판에 기쁨의 눈물을 이모티콘으로 표시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사이버공간에서 이루어져 혹시 수상자들이 받은 상장이나 부상도 가상적인 게 아닌가 궁금했는데 게시판에 「아바타를 이용한 시상식이 끝나면 발송한다」고 명시돼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만질 수 없는 사이버상장과 부상이었다면 수상자들의 마음은 섭섭했을 것이다. 역시 실물은 실물로서의 가치를 지니는 것이기 때문이리라.

사이버과학반 경진대회는 사이버과학연구센터 소속 전국 초·중·고 과학반 170여개 팀이 참가해 모두 1만3000여개의 작품이 접수됐다고 하니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짐작이 간다. 이러한 소식은 정보화시대에서의 우리나라 앞날이  매우 밝다는 전망을 낳게 하는 것이어서 매우 고무적이다.  
 
사이버시상식에 관한 소식을 듣다 보니 지난 95년 3월 고 공병우박사가 돌아가셨을 때의 일이 떠오른다. 안과의사로서 한글타자기를 개발하는 등 한글사랑에 일생을 바친 공박사가 타계했을 때 그의 부음이 PC통신으로 전해지자 그때까지 아무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그를 존경했던 네티즌들이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PC통신 사회장」을 선포하고 사이버상에서 사회장을 치른 것이다. 그때만 해도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고 PC통신이 한창 인기가 치솟고 있었던 터라 그야말로 하나의 「문화적 충격」이 되고도 남는 일이었다.

그의 부음이 신문지상뿐만 아니라 PC통신상으로 전해진 것도 이채로운 일이었는데 사이버공간에서「사회장」으로 장례식이 치러졌으니 컴퓨터를 조금만 아는 일반인들에게는 엄청난 강도로 던져진 문화적 충격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당시 공박사의 사이버빈소에는 1주일만에 5천여명의 PC통신회원들이 조문(조회)했으며 수많은 네티즌(조문객)들은 사이버방명록에 추도사를 남겼다. 진짜 빈소였다면 과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하고 조의를 표하는 글을 남기지는 의문이다.
   
이렇듯 우리사회가 인터넷을 생활화하게 되면서 사이버공간은 현실공간을 위협(?)할 정도로 그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제는 인터넷상에서 할 수 없는 일이 없을 정도가 돼버렸다. 아니 하지 않는 일이 없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편지쓰기(e메일보내기)일 테고 은행이용하기(인터넷뱅킹), 주식사고 팔기(사이버주식 주식거래), 물건 사고팔기(전자상거래) 등 일일이 열거하기 조차 숨이 가쁘다. 심지어 현실에서보다 더 성적인 만족을 얻는 경우도 있다는 사이버섹스까지 등장하지 않았는가.    

이뿐이 아니다. 우리들이 영위하고 있는 가정생활이나 지극히 일상적인 생활도 사이버형태를 빌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가정이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그곳을 통해 가족끼리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주고받는 일이 바로 그렇다. 어떤 가정은 부모나 조상의 사이버묘소를 만들어 놓고 틈틈이 들러 성묘하면서 먼저 가신 어른들의 명복을 빌기도 한다.

심지어 사이버공간상에서의 남자와 여자가 사이버결혼을 하여 사이버상에서 부부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현실에서는 한 가정의 남편이 사이버공간에서는 미혼여성이 되어 사이버결혼을 한 뒤 남의 아내로 살아가는(?) 일도 있고, 반대로 기혼여자가 남자로 변신하여 남편구실을 하기도 한다.

이런 한 일들이 도덕적이냐, 아니냐를 떠나 이미 이 사회가 인터넷 없이는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된 마당이어서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새로운 풍속도로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어디까지나 실존하지 않는 사이버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현실의 규범으로 다스린다는 것은 무리를 불러일으킬 따름인 것이다.

해일보다도 더 큰 물결로 밀어닥치고 있는 인터넷파도를 막아 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 힘을 갖기에는 우리 인간이 너무나 왜소하다. 인간이 지적인 동물이라고 한다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문명의 거대한 파도를  거부하기보다는 슬기롭게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를 구하는데 더 힘을 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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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1.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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