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 16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61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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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누군가 e메일을 훔쳐보고 있다고?

누가 당신의 e메일을 낱낱이 엿보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우선 깜짝 놀랄 것이고 그런 뒤에는 기분이 나빠졌다가 곧 불안감에 사로잡힐 것이다. 민감한 사람은 자신이 가입한 웹사이트에서 얼른 탈퇴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런 일이 가정으로 끝나지 않고 인터넷상에서 예사로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나의 메일을 훔쳐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섬뜩한 느낌을 갖게 한다. 언젠가는 내가 강제로 발가벗겨져 남들에게 보여질 것만 같아 두렵기조차 하다.

국내의 한 경제지가 며칠 전 국내외에서 최대의 회원을 갖고 있는 인터넷사이트들의 전자우편 보안에 구멍이 뚫렸다고 보도해 자못 충격적이다. 나만 알고 있는 비밀번호를 어떻게 알고 나의 e메일 내용을 훔쳐볼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내가 수년 째 쓰고 있는 e메일이 한 두개가 아닌데 도청(?)이 겁이나 하루아침에 전자우편을 제공한 사이트에서 탈퇴하자니 그 다음의 대책이 서질 않는다. 이미 e메일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돼버렸지 않은가. 그렇다고 그냥 있자니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이 경제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20대 여성이 자신의 e메일을 누가 훔쳐본 사실을 알게 되고는 범인을 잡아달라고 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이 여성은 자신이 주고받은 e메일을 누군가 엿보고는 그 내용을 그대로 자신에게 보낸 사실을 알고 소스라치게 놀랐으며, 다른 웹메일로 바꿔 사용했는데도 똑같은 일이 벌어져 그 후로는 너무 무서워 외출도 삼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인터넷에서 간단한 도청 프로그램만 다운받으면 누구나 특정인의 e메일을 훔쳐볼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수백만 회원을 가진 사이트의 운영자 측에서 보안장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이용자에게 피해를 준다는 사실은 결코 묵과해서는 안될 일이라고 생각된다.

남의 e메일을 엿보게 하는 이런 프로그램들은 사용자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네트워크 상에서 사용자번호(ID),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등 각종 개인정보를 고스란히 빼 갈 수 있다. 이러한 일들 때문에 국가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전자상거래 확산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한다.

자신의 통신내용을 도청 당할지도 모르는 터에 어떻게 인터넷으로 서로의 의견을 마음대로 주고받을 수 있으며, 회사의 기밀을 훔쳐갈지도 모르는데 무슨 배짱으로 전자상거래를 마음놓고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인터넷인구가 이미 2천만명을 넘어 인구의 절반 가까이 되어가면서 e메일 사용자 수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자우편의 보안상태가 영점을 면치 못한다면 우리들이 지향하는 정보화사회의 앞날은 예기치 못한 일들로 얼룩질 것이 틀림없다.

사실 e메일은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많아 네티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인터넷시대의 필수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휴대폰 사용자가 2천7백만명을 넘어선지도 몇 달이 되지만, e메일은 무료나 다름없는 이점 때문에 통신비가 만만치 않은 휴대폰 이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네티즌들은 특별히 친한 사이거나 급한 일이 있을 때는 휴대폰으로 통화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e메일로 의사를 소통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워낙 인터넷을 자주 이용하다 보니 e메일에 더 익숙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전화보다 e메일을 더 즐겨 사용하는 점을 네티즌의 특성으로 꼽기도 한다.

며칠 전에는 지난 1963년 발생한 영국 사상 최대의 열차강도사건의 범인으로 35년간 해외에서 도망자생활을 해온 로니 빅스(71)라는 사람이 "고국이 그립다"며 영국 경찰청에 e메일로 자수의사를 알려왔다는 뉴스가 보도됐다. 그는 당시 최고기록인 2백60만 파운드를 털어 달아났다가 체포돼 30년형을 선고받았으나 15개월만에 교도소에서 탈옥해 호주,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등에서 숨어 지내다가 1970년부터 브라질에서 살아온 인물이다.

필자는 이 기사를 읽고 "만약 e메일이라는 것이 없었다면 과연 자수하겠다는 뜻을 밝힐 수 있었을까"하고 자문해 해보고는 "그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자답을 했었다. 범인이 자수를 결심한 것은 e메일이 갖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것은 바로 「솔직함」이라고 하겠다.

사실 인터넷에서 e메일을 쓰다보면 종전에 종이로 편지를 쓸 때보다 훨씬 솔직해진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종이편지는 어쩐지 격식을 갖추어야 하며, 그래서인지 내용도 품위를 갖추도록 애를 쓰게 된다. 친구한테 보내는 편지마저 나도 모르게 그런 쪽으로 기운다. 아무래도 덜 솔직해진다는 얘기이다.

그런데 e메일은 어떤가. 정말로 자유스럽다. 그러니 솔직해질 수밖에 없다. 격식을 생략해도 받는 쪽이 특별한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그냥 이해해준다. e메일은 보내는 사람뿐만 아니라 받는 사람도 함께 자유스러워지고 솔직해지는 모양이다.

필자의 20살 되는 아들녀석의 친구가 가끔 e메일을 보내는데 도대체 격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 녀석의 아버지 또한 필자의 절친한 친구여서 글의 내용을 좀 더 정중하게 쓸 만도 한데 네티즌들이 쓰는 은어를 구사하며 마치 형님한테나 하는 「글투」로 e메일을 보내온다. 다 같은 네티즌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버릇이 없다거나 무례하다고 생각해 본 일은 없다.

이처럼 가족이나 친구에게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없이 쓴 e메일들이 남에게 쉽사리 읽혀질 수 있다는 소식은 자못 충격적이다. 마냥 고맙기만 하던 전자우편이 이제는 손에 들고 있는 「뜨거운 감자」같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계속 쥐고 있자니 뜨겁고 놓자니 못 먹게 될 것이니 어찌하면 좋을는지…. 불안하고 불쾌하다고 해서 하루에도 몇 차례나 이용하고 있는 e메일을 포기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얼른 떠오르지 않아 답답해진다. 현실세계에서든, 가상세계에서든 나의 프라이버시를 지키기 위해서는 스스로 방도를 구하는 길 밖에 없다. e메일의 보안이 완벽하지 않은 이상 정말로 중요한 얘기는 다른 채널을 이용하고 전자우편은 그저 조심스럽게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네티즌들이여! 모두들 말조심(전화), 그리고 손조심(e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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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1.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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