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 15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60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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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5일 [그해오늘은] 오키나와 만세, 냉전 만세



일본이 냉전상황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 1972년 오늘 오키나와(沖繩)를 돌려받은 것이라면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태평양전쟁 전부터 일본 땅으로 돼 있던 이 섬이 '주인'에게 돌아간 것 아니냐는 논리에서다. 그러나 19세기 후반까지 '류큐(琉球)왕국'이라는 독립국이던 오키나와가 다시 일본 땅이 된 것은 오직 냉전의 논리로밖에 볼 수 없다.

오키나와는 일본 남단에서도 685㎞나 떨어져 중국과 일본의 중간점에 위치하는 것처럼 역사적으로도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독립된 나라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 섬나라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와 같다. 왕이 있는 오키나와 섬에는 왕궁과 절 등이 있으며 중국 강남인 등과의 교역이 활발하다"라는 구절이 있다. 이 기록은 임진왜란보다 한 세기 앞선 1477년 표류한 어민들이 그곳에 머물며 본 것을 기술한 것으로 여기에 비친 오키나와는 일본보다 중국에 가깝다.

그러던 이 섬을 일본이 삼킨 것은 1870년대로 제물포에 운양호를 보내 조선침략에도 나선 시기였다. 당시 서양 열강에 본바닥마저 뜯기던 청나라로서는 이런 섬나라 일에 나설 경황이 아니었다.

태평양전쟁은 오키나와의 한 전기였다. 오키나와를 '무단점령'한 일본이 패전국이 되고 역사적으로 오키나와의 후견국이던 중국이 연합국이어서만은 아니다. 오키나와 상륙전에서 5만명의 사상자를 낸 미국인들에게 이 섬은 진주만보다도 처절한 반일의 기억이 얽혀서다.

따라서 이 섬을 점거한 버크너 중장도 "오키나와는 미국이 배타적으로 지배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화하자 미국의 우방인 일본은 상륙전도 거칠 것 없이 이 섬에 일장기를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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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세계일보 2001.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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