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 5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53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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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5일 [그해오늘은] '한 위인을 기리며'



1821년 오늘 세상을 떠나는 나폴레옹의 모습은 '황제'도 '폭군'도 아닌 쓸쓸한 나그네였다. 그가 숨진 아프리카의 세인트헬레나섬부터 그랬다. 7년전 지중해의 엘바섬에 유배된 나폴레옹이 탈출한 바람에 혼쭐난 연합국은 대륙에서 1850㎞나 떨어져 아메리카 대륙보다도 10년이나 늦게 발견된 외진 섬에 가두었던 것이다. 집안 사정은 더 쓸쓸했다. 오스트리아 황실 태생의 새 아내 마리 루이스가 오스트리아 경호장교와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까지는 몰랐더라도 편지는 오래전에 끊긴 상태였다. 여기에다 줄곧 독살의 공포에 시달리던 그에게 죽음은 차라리 평온한 잠일 수 있었다.

막상슬퍼한것은세계였다.그를'폭군'이라고비난했던사람들에게도그것은슬픔이었다.나폴레옹은황제가되는등반동으로돌기도했으나 그가몰락하고보니유럽은1789년이전으로돌아가고말았던것이다.

괴테는 "이런 시대에 내가 젊지 않다는 것이 너무 다행스럽다"고 한탄했다. 그의 친구로 일찌기 나폴레옹에게 3번 교향곡(영웅)을 헌정하려 했던 베토벤의 반응은 어땠을까. 베토벤이 작곡을 마치고 보니 '영웅'은 사라지고 '황제'만 있자 악보 표지에 나폴레옹 대신 '한 위인을 기리며'라고 쓴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 베토벤이지만 막상 나폴레옹의 부음에 접했을 때는 "내가 2년전(1819년)에 완전한 귀머거리가 된 것은 너무 다행이다"고 하지나 않았을까.

나폴레옹은 때로 반동에다 폭군이기도 했으나 프랑스혁명의 마지막 희망이었다는 사실을 세상은 그가 몰락한 뒤에야 깨닫게 됐다. 그의 뒤를 이어 베르사유궁을 차지한 루이 18세가 혁명의 소용돌이에서 아무런 교훈도 배우지 못한 채 지난날의 특권은 하나도 잊지 않고 챙겨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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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세계일보 200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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