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5월 3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51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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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보호받을 수 없는 '표현의 자유'도 있다

부처님 오신날 아침에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법원으로부터 들려온 이 소식은 가뜩이나 사이버폭력이나 명예훼손, 무질서가 난무하는 인터넷공간에서의 일탈적이고 무책임한 행위를 추궁하는 것이어서 정보화사회의 그늘이 날로 짙어지고 있음을 걱정하는 필자에게는 무척 안도감을 주고 있다.

「서울지법 민사항소4부(재판장 閔一榮부장판사)는 30일 咸모(29) 씨가 “인터넷 게시판에 나를 비방하는 내용의 글이 올라 삭제 요구를 했는데도 게시판 서비스 회사가 이를 방치해 명예를 훼손시켰으니 손해를 배상하라”며 인터넷 통신업체 하이텔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심판결을 뒤집고 “하이텔사는 咸씨에게 1백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咸씨와 정보통신윤리위원회가 문제가 된 글이 다른 이용자나 제3자의 명예를 손상하는 글에 해당한다며 시정요구를 했음에도 하이텔이 5∼6개월간 삭제하지 않아 咸씨에게 정신적 피해를 주었다" 고 밝히고 "인터넷게시판을 설치·운영하는 전기통신사업자는 사용자가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을 게시판에 올린 것을 알거나 알 수 있었던 경우에 삭제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 고 지적했다.」

위의 글이 바로 오늘 아침에 배달된 신문에 실려 필자를 기쁘게 한 기사이다. 내용을 좀 더 살펴보면 咸씨는 지난 99년 1월 하이텔의 PC통신 전자게시판에서 安모씨가 모 연예인을 험담하자 이를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安씨는 咸씨에 대해 "자기 영웅적 심리에 도취한 광적 열광상태이며, 정신상태가 의심되는 형편없는 저질 스토커 경향이 있다"는 등 咸씨를 비방하는 글을 올렸고, 咸씨는 하이텔에 이를 삭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하이텔은 安씨에게 경고메일을 보냈을 뿐 5개월동안 安씨의 글을 그대로 방치했다. 이에 咸씨는 安씨와 하이텔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 지난해 대법원으로부터 "安씨는 咸씨에게 2백만원을 지급하라"는 확정판결을 받아내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하이텔에 대해 "인터넷서비스 제공업체(ISP)의 책임까지 인정되지는 않는다”는 이유로 咸씨에게 패소판결을 내렸었다.

이 같은 판결은 인터넷게시판에서 예사로이 벌어지고 있는 온갖 비방과 비난 등 사이버 폭력이나 불법행위는 그러한 공간을 제공한 인터넷 서비스 제공업체에 책임이 있음을 명시하는 것으로 참으로 적절한 판결이라고 여겨진다. 이제는 사이버공간에서도 현실세계에서처럼 실정법이 준수되어야 하고 이를 어겼을 경우에는 엄격히 적용할 때가 되었음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법원의 이 같은 판결을 놓고 일부에서는 온라인상에서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소지가 있다고 주장할 것이 틀림없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내 마음대로 표현하지 못한다면 이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고 강변할 지도 모른다.

만일 수백, 수천명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각 동 게시판에 이웃 주민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의 글이 붙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를 오랜 동안 여러 사람이 보게 되고 그 글을 마음대로 떼낼 수가 없다면 아마도 피해자는 더 이상 그곳에 살지 못하고 이사를 가야 할 것이다. 그런 일이 있어서야 되겠는가.

어떤 변호사는 "타인을 비방하는 글이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게시판운영자에게 이런 부담까지 지울 경우 인터넷 산업의 발달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그 변호사는 선량한 네티즌보다는 그들을 상대로 돈벌이를 하는 전기통신사업자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닌가 적이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외국의 경우는 어떤지 궁금해진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명예훼손과 저작권 침해의 경우가 다르게 취급되어 명예훼손 부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한 편이지만 최근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추세라고 한다.

미국은 지난 96년 「통신품위법(CDA)」은 제정해 인터넷서비스 제공업체의 명예훼손 책임을 면제하는 근거조항을 마련했고, 이에 따라 인터넷 사업자의 책임을 전면 부인한 「제란(Zeran) 판결」 등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98년 제정된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은 피해자가 저작권 침해행위를 통보할 경우 인터넷사업자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의무화했다. 유럽에서는 명예훼손을 포함한 불법행위 책임을 더욱 엄격하게 묻고 있다.

사실 인터넷공간은 혼돈과 무질서의 공간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5∼6년 전부터 PC통신이 네티즌들에게 생활화되면서 그러한 경향을 보이더니 최근 몇 년 사이 인터넷을 아주 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상황은 더욱 악화되어가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자신의 의견과 다를 경우 일방적으로 욕설을 퍼붓거나 비방함으로써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이 예사로이 이루어지고 있다. 뾰족한 대책이 없는 한 이 같은 「난폭행위」는 쉽사리 근절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인터넷은 혼돈의 바다, 무질서의 바다로 불리기도 한다. 언론계나 법조계에서는 익명성을 악용해 사이버공간을 어지럽히고 있는 현상을 염려하면서 규제의 필요성을 제기해오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현상은 지금까지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것들이기에 적절한 처방을 내리기가 힘들고, 그래서 치료는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이 문제야말로 정보화사회의 길목에서 겪고 있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해결해야할 커다란 숙제이다.

표현의 자유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보호되고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의 표현 때문에 다른 사람이 심각한 피해를 입게 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래도 표현의 자유는 고귀한 것이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한다고 말할 것인가.

남의 명예를 존중하지 않는 표현의 자유는 보호될 수 없다. 표현의 자유는 그것이 지킬만한 가치가 있을 때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못할 때는 억제되어야 마땅하다. 남의 명예를 훼손하는 표현의 자유는 결코 보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오늘은 불기 2545년 4월 초파일, 석가모니 부처님이 태어나신 날.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 아닌 것으로 보면 곧 如來(여래)를 보리라"고 하신 부처님이나, "다투면 모자라고 양보하면 남는다"는 옛 고승의 말씀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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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1.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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