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 24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47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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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대안교육의 방향

몇 년 전 한 친구가 중학졸업반 아들을 지방의 대안학교에 보냈다. 그 결정까지 많은 어려움을 각오했지만 본인이 부모의 뜻을 충분히 이해하고 기꺼이 동의해 예상보다 수월하게 합의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진짜 어려움은 가정 밖에 있었다. 이해를 가장 많이 해주리라 믿었던 담임선생님이 이의를 제기했다. 대안학교의 장점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공부 잘하고 성품도 착한 애를 굳이 그렇게 먼 곳으로 보내려 하느냐는 것이었다. 친구, 친척들의 반응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애나 부모 또는 가정에 무슨 말못할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눈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람까지 있었다. 대안학교의 취지를 상당히 알고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역시 다분히 피상적인 수준에서 대안학교를 선택한 그의 '남다른 모험과 용기'를 평가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아들은 정말 보람 있는 고교생활을 보내고 대학입시에서도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대안학교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철저히 왜곡된 우리의 교육이 사회와 기존학교 및 국민의 인식을 어떻게 손써보기 힘들 정도로 마비시켜 놓은 때문이다. 그 독성이 너무 강해 자신들이 앓고 있는 증세가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다.

" 우선 전국의 학교 이름들을 없앤다. 그리고 초. 중. 고. 대학의 구분도 없애고 그냥 1학년에서 약 16학년(전문가들의 연구 필요) 정도 만들어 아이가 약 6세가 되면 기본 교양, 예의,심성교육(법과 질서를 지키고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을 약 3-5년 교육시킨 뒤 그 다음부터는 나이에 상관없이(즉 10세와 80세가 같은 반에서 공부할 수 있음) 자신의 수준과 적성, 장래의 목표에 맞게 과목이나 학년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고 수시로 변경할 수 있다"

최근 emhkim이라는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린 '이런 교육제도'란 글의 일부분이다. 매우 급진적이어서 비현실적인 면이 적지 않지만 현행 교육의 폐단을 역설적으로 지적하고, 오늘의 대안교육이 나아갈 최종 방향을 제시한 글이라 하겠다. 그는 이어 그렇게 되면 졸업이라는 개념이 없어지고 몇 학년의 무슨 과목을 수료했다는 인정서만 발급해주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에서는 그것으로 그 사람의 사회적응 능력을 판단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출신학교별 파벌과 간판위주의 풍토가 자연히 사라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성적으로 앓고 있기 때문에 으레 그러려니 하던 상처와 아픔을 근본적으로 치유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학교는 인류의 문화적 가치(언어, 과학, 기술, 예술 등)를 전수하며 그 구사능력과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아갈 적응력을 길러주는 곳이다. 즉 학교는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필요한 도구다.

그러나 목적과 수단이 뒤바뀌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평생 상처 속에 살아가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중도에 학업을 그만 둔 이들이 그로 인한 멍에를 죽을 때까지 벗지 못해 신음하며, 대학까지 나온 이들도 각급 출신학교가 명문이냐 아니냐에 따라 생의 주요 고비에서 희비가 엇갈리거나 치명타를 맞는다. 목적은 내팽개치고 그 도구에 불과한 학교 간판과 학과성적 경쟁에만 매달린 병폐가 우리 사회를 이처럼 각박하고 살벌하게 만들었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생지옥이 된 것이다. 목수를 솜씨가 아니라 그 연장으로 평가하는 식의 어리석음이 빚어낸 비극이요 참상이다.

대안교육은 이처럼 궤도를 이탈한 교육을 정상화시키자는 것이다. 따라서 대안교육이 현행 학교교육의 미비점을 보완하거나 그곳 부적응자들을 재교육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문자 그대로 또 다른 교육방안이 아니라 교육 본래의 기능과 임무를 되찾는 것이어야 한다. 아니 대안교육은 이미 그 목표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는데 사회와 기존 제도 그리고 일반인들이 그릇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바로 잡으려면 대안교육을 대안학교나 관계전문가들의 일로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또 대안교육이 제도권 학교 밖에서만 작동할 것이 아니라 앞의 네티즌이 주장한 것처럼 교육혁명을 몰고 와야 한다. 교육부에서 그 동안 대안교육의 몇 가지 부분들을 현교육제도에 도입하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큰 수술을 해야 할 중환자한테 가정 상비약 수준의 약을 준 것과 다를 바 없는 실정이다.

지금 공교육 붕괴현상이 곳곳에서 나타나며 절망의 소리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시각을 달리해서 보면 꼭 그렇게 비관적일 것만도 아니다. 모든 질서와 제도, 현상은 어느 정점을 지나면 기울어지고 붕괴한다. 그리고 새로운 것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이는 우주와 자연의 엄연한 이치다. 이른바 창조를 위한 파괴는 이런 과정의 일부분이다.

그런 거시적인 관점에서 오늘의 교육현상을 보면 오히려 여러 가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교육정상화를 더 빨리 촉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대안교육 즉 본래의 교육기능이 바로 여기에서 뿌리를 내리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존 학교가 대안교육에 최우선적인 관심을 보내 교육혁명에 불을 붙여야 할 것이다. 물론 본격적인 점화 이전까지 불씨를 살리고 보존하는 것은 대안학교와 관계자들의 몫이다. 그러면 최대 난관이요 마지막 문이라 할 수 있는 시민들의 의식혁명으로 불길이 곧 바로 옮겨가게 마련이다. 그때는 emhkim씨가 그리는 교육제도가 단순한 환상이나 멀고먼 이상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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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베스트 라이프' 4월호 (2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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