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 19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46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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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미국 대통령도 겁이 나서 못쓰는 e메일

네티즌이라면 누구나 전자우편(e메일)을 사용하게 된다. 신속성과 편리성에 있어서 전화만 못하지만 컴퓨터만 있으면 자신의 의사를 언제 어디서나, 그리고 별도의 요금 없이 거의 무한정으로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요즘 들어 크게 사랑 받는 통신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밤새 무슨 소식이 들어왔는지 e메일을 확인하는 일도 네티즌의 첫 일과가 되어버렸다. e메일을 주고받는 일은 이제 아침뿐만 아니라 잠자리에 들기까지 계속될 만큼 우리의 일상에서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렇듯 e메일이라는 것이 좋든 싫든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밖에 없는 통신수단이 돼버린 마당에 e메일의 내용을 누가 훔쳐보고, 그래서 나의 사생활이 침해된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불쾌하고 섬뜩한 일이다.

인터넷이 보안의 사각지대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미국의 조지 부시대통령은 최근 사생활 침해와 정보유출에 대한 우려로 그 동안 자신의 친구나 친척들에게 e메일로 안부를 전하던 것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세계 최대강국인 미국 대통령이 그랬으니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부시대통령은 지난 5일 미국 신문편집인협회 초청 강연에서 “대통령에 당선되어 백악관으로 들어오면서 간혹 이 곳에서의 생활을 훔쳐보려는 호기심꾼들이 있어 유감스럽게도 e메일 교환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고 뉴욕타임즈가 보도했다. 남이 훔쳐 볼까봐 겁(?)이 나서 e메일 사용을 그만두었다는 얘기이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백악관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도 자신은 e메일 중독자라고 해도 좋을 만큼 부친이나 딸들과 많은 전자우편을 주고받았다고 밝힌 바 있으며, 실제로 텍사스주의 주지사이자 대통령 후보시절이었을 때만 해도 친구들이나 친척들과 연락은 거의 대부분 e메일을 이용했던 사람이다.

며칠 전에는 e메일 사용을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또 다른 사례가 보도되어 눈길을 끌었다. 미국의 한 대기업의 CEO가 임원들에게 보낸 e메일 내용이 포털사이트인 야후에 공개되면서 「e메일 부메랑효과」로 큰 타격을 받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의료소프트웨어 개발업체 서너 코퍼레이션의  CEO인 패터슨이라는 사람이 400여명의 지사 임원들에게 "직원 대다수가 일주일에 40시간도 일하지 않으며 회사 주차장은 오전 8시와 오후 5시만 되면 텅 빈다. 이처럼 나태한 분위기를 쇄신하지 않으면 당신을 해고하겠다"는 내용의 e메일을 보냈는데 이것이 야후에 공개됐다.

그러자 이 회사의 주가는 지난달 20일부터 3일 동안 22%나 폭락했다. 전세계에 3,100여 명의 직원을 거느린 이 회사는 1998년과 2000년 포천이 선정한 「가장 일하고 싶은 미국 100대 기업」중의 하나로 꼽힌 우량기업이지만 회사 내부문제를 담은 e메일이 외부로 유출되는 바람에 회사경영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 것이다.

이를 보도한 뉴욕타임스는 경영전문가들의 말을 빌어 패터슨이 「e메일을 통해 대형토의를 하지 말 것」「소수의 신뢰할 수 있는 직원 외에 많은 직원에게 민감한 정보나 아이디어를 전할 때 절대로 e메일을 사용하지 말 것」등 현대기업가들이 지켜야 할 e메일에 관한 두 가지 규칙을 어겼다고 전했다.

e메일에 관한 보안문제가 외국에서만 있는 일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우리 나라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지난해 감사원에서 D사 등 6곳의 인터넷사업자에 대해 실태조사를 한 결과 사업자마다 수사기관의 요청을 받고 3∼4차례씩  e메일 감청을 해준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기관은 보통 한번에 2백여명까지도 통신정보조회를 요청하고 있었지만 인터넷사업자의 감독기관인 정보통신부는 통신정보조회에 대해 파악조차 못한 채 손을 놓고 있다고 감사원은 지적했다. e메일 감청이 관리의 사각지대라는 사실이 드러난 셈이다.

감사원 감사에서는  타인간의 통신을 매개하는 사업자는 한국통신 등 전화사업자, PC통신 및 인터넷 사업자 등 1천2백50곳에 이르지만 정보통신부는 이 가운데 불과 39곳에 대해서만 정보조회자료 등을 받고 있어 나머지에 대해선 실태파악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밝혀냈었다.

세계적인 정보기술조사기관 미국의 IDC(www.idc.com)는 지난해에 전세계에서 인터넷에서 주고받는 e메일 분량이 하루 1백억건을 돌파했고 2005년에는 하루 350억 건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에서 오가는 e메일만도 하루 1억건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처럼 e메일을 사용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전화 못지 않게 편리한 통신수단이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은 전화보다 e메일을 더 즐겨 사용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런데 전화처럼 손쉽게 주고받는 e메일의 내용을 남들이 쉽게 훔쳐볼 수 있다면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엉망이 돼버릴 테니 정말 큰일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 빠른 속도로 바뀌면서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부정적인 일들을 자꾸 접하게 된다. e메일도 그 중의 하나이다. e메일이 편리성만큼이나 위험성 또한 적지 않으니 이대로 가만있다가는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를 일이다.

우리사회의 정보화가 심화되면서 「정보화사회」라는 것이 마냥 좋은 것만 가져다주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피부로 느끼고 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우리의 미래가 장밋빛이 아니라 잿빛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낳고있다.

결국은 지금 우리 앞에 나타나고 있는 갖가지「새로운 현상」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정보화사회의 앞날이 밝을 것인지, 어두울 것인지가 판가름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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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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