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 11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42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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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영웅들

과거의 영웅들이 대체로 이념을 토대로 하여 배출된 반면 오늘날은 시장이 주요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즉 영웅이 나타나는데 상업성이 그만큼 절대적 역할을 한다는 말이다. 또 과거 역사 속의 영웅들이 저절로 태어났다면 현대사회의 영웅들은 만들어진다. 자연 그대로 기르는 것이 아니라 비닐하우스나 가두리 양식장에서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의도에 맞춰 생산해내는 농수산물과 비슷하다.

1982년도에 프로야구를 출범시키면서 각 구단과 언론은 누구를 스타 즉 영웅으로 부상시켜야 할 것인가로 매우 고심했다. 스타가 없는 구단은 관중이 적을 수밖에 없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 역시 구독률 또는 시청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돈벌이가 시원찮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돈이 되는 스타를 만드는 것이 프로야구 성패를 가름하는 무엇보다 우선적인 필수 요소였다.

스타는 뛰어난 실력이 있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팬들을 사로잡는 매력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래서 구단과 언론들은 그런 것들을 찾고 알리는 데 주력을 했다. 그러다 보니 과장되거나 사실과 다른 것이 더러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스타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는 일이면 이런 건 문제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은밀하게 권장되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프로야구뿐만 아니라 스포츠, 연예, 정치,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웅 즉 스타를 잘 만드는 것이 곧 경쟁력으로 평가받고 있을 정도다. 그 결과 과도한 상업성으로 인해 엉뚱한 사람이 스타로 왜곡되거나, 특정 의도에 지나치게 맞추다 보니 영웅이 될 수밖에 없는 사례가 적지 않게 나타난다. 이른바 일그러진 영웅들이다.

'일본의 한국인 차별에 맞선 영웅'으로 영구귀국했다가 1년만인 지난해 '성격장애자'로 추락한 권희로씨가 그 한 예라 하겠다. 1968년 '조센징'이라고 욕한데 격분, 야쿠자 2명을 살해하고 88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이다 잡혀 31년간 옥살이한 그는 일본에서 단순한 깡패라고 한 데 반해 우리한테는 그야말로 영웅이었다.

골이 깊은 반일감정을 부추기며 그동안 그를 집중보도해 온 언론의 힘이 매우 컸다. 언론의 상업주의가 가장 큰 몫을 한 것이다. 그를 소재로 한 영화가 나오고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이 그의 석방과 귀국을 위해 앞다투어 노력했다. 그의 여러 가지 면을 차분히 검증한 보도는 드물었다.

전국민의 열렬한 환영속에 귀국한 영웅이 1년만에 30세 연하의 유부녀와 내연관계를 맺고 그 남편을 살해려다 구속되자 그는 하루 아침에 주책없는 70대 노인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법원에서 그를 성격장애자로 판정한 것이다.

이에 대해 조그만(?) 잘못 하나를 가지고 그의 과거 행적마저 부정한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고 반발하는 국민들이 있는가 하면,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며 영웅대접을 거둔 이들도 많다. 어쨌든 충분한 검증 없는 영웅만들기에 많은 국민들이 상처를 입었고 그 자신도 피해자가 됐다.

최근에 일본에서 절도범으로 체포된 조세형씨 역시 온 국민의 입맛을 씁쓰름하게 만들었다. 지난 1983년 재판 도중 탈주한 '대도' 조세형은 국민들에게 대리만족을 안겨준 영웅이었다. 그가 5일만에 잡혔을 때 국민들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신군부의 독재정권 아래 신음하던 국민들은 조씨가 당시 권력층과 부유층 집만 털어 수백억원 어치를 훔쳤다고 하는데 잃은 사람들은 오히려 쉬쉬하거나 피해액수를 줄이는 기이한 현상을 고소해 하며 은근히 즐겼기 때문이다. 또 독재정권의 하수인 공권력이 일개 탈주범에 의해 농락되는 것을 무엇보다 기뻐하며 대리만족을 느낀 것이다.

수감중 신앙인이 된 그는 형기를 마치고 나와서 선교활동 등으로 과거와 다른 인생을 살아가니 새로운 인간 조세형으로 보아달라며 모범적인 생활을 했다. 그러면서도 당시 사건의 감춰진 진실을 차근차근 밝히겠다고 말해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런 그가 일본에서 좀도둑으로 체포되자 국민들은 어리둥절했고 우롱당한 느낌을 지우지 못했다.

권희로씨나 조세형씨 경우 한 가지 실수를 가지고 종전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은 지나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이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베토벤을 통해 찾을 수 있다. 그는 3번 교향곡을 영웅 나폴레옹을 위해 작곡하고 제목도 '영웅교향곡-보나파르트를 상기하기 위하여'라고 붙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분노하여 악보를 찢으며 "그 역시 권력욕을 채우는 보통인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영웅은 평범한 인간들 의 욕구 따위는 초월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권희로, 조세형씨는 그 정도는 고사하고 보통인간들도 저지르지 않는 파렴치한 추태를 드러냈다.

대중들의 그릇된 가치관에 의해 일그러진 영웅이 나타나는 수도 있다. 지난 98년 탈주범 신창원이 좋은 예다. 그를 미화하는 만화가 나오고, 성원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인터넷에 쇄도했다. 조세형과 비교해가며 그를 의적으로 만들어 가는 은근한 시도도 눈에 띄었다. 상업주의까지 여기에 가세해 그가 입은 것과 같은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린다며 부채질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도 말했듯 의적이 아니며 조세형사건 때처럼 독재정권 치하도 아니었다. 그 가 시민단체에 보낸 편지에서 말했듯이 매스컴이 상당 부분 미화하고 아직 판단력이 미숙한 청소년들이 이를 멋있다고 생각하고 모방하면서 발생한 현상이었다.

박정희, 이승만 전 대통령 등은 상업성이나 왜곡된 가치관에 의해 만들어진 영웅과 달리 사회의 각 세력들간에 '영웅이다' '아니다 독재자에 불과하다'는 등의 시비가 끊이지 않는 점에서 '일그러진 영웅'이라고 할 수 있다. 박대통령을 영웅이라고 높이는 사람들은 그가 아니었더라면 오늘날의 한국은 없었을 거라며 그의 개발독재를 불가피한 것으로 평가한다. 그에 반해 반대측은 그 때문에 지역감정이 심해지고 민주주의는 뒷걸음질했으며 인권탄압은 극에 달했다고 비난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경제의 일본종속을 심화시킨 장본인으로 지적한다.

이승만대통령을 영웅시하는 측도 박대통령을 예찬하는 측과 비슷한 보수세력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이대통령이 항일투사로 활약했고 건국이후에 공산주의의 도발에 강력히 맞섰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남북분단을 고착화하고 반공을 민주주의보다 앞세워 권력 유지에 급급한 독재자였을 뿐이라고 비난한다. 두 대통령을 예찬하는 측은 대부분 그 아래서 많은 혜택을 누렸던 이들이고 반대하는 측은 그들의 탄압에 희생되거나 엄청난 불이익을 당했던 이들이다.

두 대통령을 둘러싼 이같은 영웅논란은 상업성에 의해 태어난 일그러진 영웅들과 달리 앞으로도 장기간 국론을 분열시키며 역사를 그릇 진행시킬 가능성이 있으므로 매우 위험하다. 어느 쪽에건 불순한 의도가 있다면 민족과 국가에 큰 불행과 비극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자유당정권과 박정희의 공화당정권 그 이후 신군부독재정권의 탄압에 희생된 사람들이 영웅대접을 받기는커녕 대중과 역사로부터 잊혀져 가는 것도 '일그러진 영웅'들에 의한 저질러진 깊은 상처요 부작용이다. 반공이라는 미명하에 이승만에 의해 처형된 사람들, 박정희의 5.16쿠데타와 3선개헌을 반대하다 희생된 이들, 그 동안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람들에 대한 빚을 청산하지 못하는 한 민족과 역사의 행보는 부자유스러울 수밖에 없다.

인간 사회는 어느 곳에서든지 영웅 즉 스타는 나오게 되어 있다. 북한, 중국 같은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국민여론을 조작하고 일사분란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상업주의에 의해서 주로 배출된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유형이 명확하게 나눠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체제든 이 두 가지가 섞여서 나타난다.

어떤 의도에서 영웅이 나오든 그 정체를 감별해내는 것은 일반대중이 해야 한다. 즉 의식 수준과 안목이 높으면 권력과 금력 등이 만들어내는 영웅과 스타들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쉽게 판별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일그러진 영웅'의 출생을 막는 감시망이다. 이는 대중들이 철저히 깨어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을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대중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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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서강대 '알바트로스' 봄호 (20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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