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 10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41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http://columnist.org
*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휴대폰시대의 덕목, 폰티켓(Phonetiquette)

이제는 휴대폰이 없으면 어떻게 일상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을는지가 걱정될 정도로 휴대폰사용이 보편화된 시대이다. 그래서 외출할 때나 출장을 갈 때 휴대폰이 없으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가 돼버렸다.

사실 시계를 집에 두고 나오면 무언가 허전하고 적잖이 불편하다. 그런데 휴대폰이 시계역할을 하고 있으니 시계를 두고 나왔을 때 보다 휴대폰을 깜빡 잊고 나왔을 때의 허전함과 불편함은 더욱 크다 하겠다.  

요즘 같아서는 휴대폰처럼 편리한 물건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웬만한 사람들은 누구나 휴대폰을 갖고 있으니 소식이 궁금하면 바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을 수 있다. 약속시간에 늦을 경우 휴대폰으로 연락하면 되니까 옛날처럼 애를 태우며 기다리는 일은 없어졌다.

너무나 광범위하게 보급된 탓인지 초등학생까지 휴대폰을 안 갖고 있으면 따돌림당할 정도라고 하니 휴대폰이 생필품 중에서도 목록 1호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듯 싶다.

휴대폰이 부모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안겨주고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도움이 되기도 한다. 부모들이 밤늦도록 귀가하지 않는 자식에게 휴대폰을 걸어 귀가독촉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휴대폰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그래서 휴대폰을 놓고 「족쇄」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게 싫어서 아직도 휴대폰 없이 지내는 사람을 가끔 볼 수 있다.

신문이나 방송사의 사회부 사건기자들처럼 휴대폰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느끼는 사람들도 드물 것 같다. 80년대 이전 전화가 귀했을 때는 현장에서 기사를 송고하는 일이 제일 큰 문제였다. 특히 시골이나 산골, 외떨어진 곳에서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는 마감시간에 맞추기 위해 취재하다 말고 몇km나 떨어진 곳까지 뛰어가서 기사를 전화로 불러줘야 했다.

그나마 다른 회사 기자와 같이 갈 경우는 먼저 전화통을 잡는 경쟁까지 벌여야 했다. 일찍 차지해야 제시간에 송고를 끝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겨우 발견한 전화를 타사 기자에게 선점당했을 때는 전화를 찾아 또 다른 곳으로 뛰어야 했다.

서울시내에서도 전화에 관한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사건기자의 호주머니에는 항상 공중전화용 동전이 가득했다. 공중전화를 찾지 못하면 장삿집이든 가정집이든 가리지 않았다. 기사송고를 위해서는 체면불구하고 들어가 전화를 빌어 써야 했다.

이제 그런 걱정은 없어졌다. 기사를 부를 전화를 찾지 못해 사건현장에서 발을 구르거나 전화 있는 곳을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던 일은 옛일이 돼버렸다. 내 몸의 일부가 되다시피한 휴대폰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너도나도 휴대폰을 갖고 다니는 시대이다. 휴대폰이 막 보급될 당시만 해도 지하철 안에서 큰 소리로 대화하는 모습을 목격하면 옆의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는가 하면 성미 급한 사람들은 이를 나무라다가 서로 싸우는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

요즘은 그것도 만성이 되어 그저 그런가 보다하고 개의치 않는 분위기로까지 바뀌어지고 있다. 기차여행을 하다 보면 "휴대폰을 진동모드로 해 두라"거나 "통화는 객실 밖으로 나가서 하라"는 안내방송이 들리는데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그러나 휴대폰 벨소리가 울려서는 안될 곳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조용해야 할 학교 도서관이나 극장 안에서의 휴대폰 벨소리는 다른 사람의 공부를 방해하거나 관람분위기를 해친다. 음악연주회에서 휴대폰이 울리는 바람에 공연분위기를 완전히 망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조그만 소음도 허용하기 어려운 이 같은 공공장소에서 무엇이 급한지 스스로 전화를 걸어서 통화하는 지극히 몰상식한 사람들도 더러 있다. 정말로 부끄러운 일이다. 한마디로 우리사회의 전화예절, 즉 폰티켓(Phonetiqette)이 영점이라는 얘기이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는 틈 있는 대로 휴대폰 통화의 때와 장소를 가리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지만 생각대로 쉽지는 않은 것도 사실이다. 마이동풍(馬耳東風)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경우라고 하겠다.

그러나 휴대폰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인 문제점이 불거지자 사용을 제한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법정에서는 휴대폰 벨소리가 재판진행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신성한 법정을 모독한다는 시각에서 이를 엄하게 규제하고 있다. 실제로 휴대폰을 진동으로 하라고 판사가 「지시」했는데도 이를 어기고 벨소리를 울리게 했다가 재판을 방해한 이유로 그 자리서 감치명령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병원이나 비행기안에서는 자칫 휴대폰 때문에 전자기기에 이상을 일으켜 환자의 수술에 중대한 악영향을 미치는 수가 있으며, 비행기도 거의 모든 시설이 전자화 돼있는 까닭에 전파방해에 따른 사고발생의 가능성이 높아 휴대폰사용을 금하고 있다.
 
그러나 휴대폰은 정보화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미 의식주 못지 않은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은 문명의 이기이다. 그것이 아무리 위험하고 조심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사용을 기피할 수는 없는 일이다.

휴대폰 전성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바로 전화예절이다. 전화를 올바로 쓰는 휴대폰문화를 빨리 정착시켜야 한다는 말이다. 폰티켓이 몸에 벨 때 정보화로 치닫고 있는 우리사회는 한결 명랑해질 것이다.

-----
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1.04.10
-----
http://columnist.org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