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 27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37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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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 개인정보

"우리 회사는 회원의 개인정보를 보호하며, 동시에 회원 개개인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최소한의 정보만을 요구합니다. 우리 회사는 회원의 개인정보가 상업 및 정치적 목적에 악용되는 것과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하여 최소한의 정보만을 수집합니다."

위와 같은 내용은 세계 최대의 검색사이트 중의 하나인 어느 회사가 자사 홈페이지에 제시한 「개인정보 보호정책」에 밝혀놓은 약속들이다.

이 회사뿐만 아니라 야후나 라이코스, MSN, 다음, 드림위즈 등 국내외 유명사이트들은 모두가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워놓고 가입회원들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장치를 마련해 놓고 있다.

여기에서 눈여겨보아야 할 사항은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라거나, "회원의 개인정보가 상업 및 정치적 목적에 악용되는 것과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하여" 최소한의 정보만을 수집한다는 대목이다.

그러나 우리들이 막상 인터넷사이트의 회원으로 가입하려면 사정은 달라진다. 우선 신상에 관한 정보를 가르쳐 주어야 하는데 그쪽에서 요구하는 정보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글실명, 회원ID,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생년월일, 주소, 우편번호, 다른 e메일주소, 집 전화번호, 이동전화번호, 직업, 학력, 결혼여부, 본인 및 가족의 월소득」

이 정도는 기본이다. 어떤 경우는 자동차보유여부, 직장전화번호, 직위, 이용은행명, 계좌번호, 주거형태, 취미, 주요관심사, 주된 컴퓨터 사용장소 등도 물어본다.

인터넷사이트의 「약속」대로 적절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받으려면 20가지가 넘는 자신의 개인정보를 미주알고주알 가르쳐 줘야 한다. 이를 두고 과연 최소한의 정보라고 할 수 있을는지…. 오히려 최대한의 정보를 요구하고 있다고 해도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닐 듯 싶다.

정보의 가지 수도 그렇지만 인터넷사이트가 요구하는 것이 어떤 정보냐 하는 것도 중요하다. 우선 주민등록번호는 너무나 중요한 정보이고 월 소득, 직업, 학력 등도 결코 허술히 해야 할 정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 이렇게 많은 정보가 필요한가. 말할 것도 없이 개인의 신상정보가 그만큼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요즘에 와서는 개인정보 자체가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닐 정도가 되어 버렸다. 개인정보를 사고 팔다가 수사당국에 적발되어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보게 된다.

자사의 회원정보를 다른 회사에 넘기는 인터넷사이트도 적지 않으니 과연 그들이 내세우고 있는 개인정보정책을 그냥 믿어야 할지가 걱정이다. 국내에서 검색사이트로서는 선두를 달리고 있는 N사가 저질렀던 일을 보면 이 같은 우려가 우려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다.

보도를 보면 池모씨(28)는 1999년 11월 N사에 신상정보를 밝힌 뒤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던 중 지난해 2월 S컴퓨터로부터 원하지도 않는 광고성 e메일을 받게 되자 자신의 정보가 유출되었다며 두 회사를 상대로 법원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었다.

이 사건의 재판을 맡았던 서울지법 민사합의 12부(재판장 鄭長吾부장판사)는 지난 9일 "N사의 약관은 가입자 e메일주소 등을 제휴회사 등 다른 업체에 제공할 수 없도록 되어 있는데도 제휴회사인 S컴퓨터에 이를 알려주어 원고가 광고성 e메일을 받은 만큼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며 "두 회사는 각각 1백만원씩을 지급하라"는 원고승소판결을 내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재판부가 "수신자의 의사와 다른 영리목적의 광고성 정보가 원고의 사생활을 침해하여 정신적 고통을 준 점이 인정된다"고 판시한 대목이다. 신문기사의 인용이 다소 길어졌지만 개인정보를 함부로 유출하는 행위가 얼마나 잘 못된 것인지를 이번 판결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문제가 된 N사라고 해서 개인정보 보호를 외면하는 것은 아니다. "이용자들에게 맞춤식 서비스를 비롯한 보다 더 향상된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이용자 개인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이용자의 사전 동의 없이는 이용자의 개인 정보를 함부로 공개하지 않는다"는 등의 약속을 홈페이지 「개인정보 보호정책」항목에 명시해놓고 있다.

그런데 N사는 이 약속을 어겼다. 말로만 개인정보를 보호하겠다고 했지 진심으로 개인정보를 보호할 의지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N사는 지금도 회원가입을 원하는 사람에게 신상정보를 입력하게 하면서 "주민등록번호는 ID나 비밀번호를 잊어버렸을 경우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이며, 회원님의 정보를 소중히 다루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아이디나 비밀번호를 잊어버렸을 경우 주민등록번호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알아내는 방법이 있는데(다른 사이트에서는 자신의 별명이나 가보고 싶은 곳을 적게 하는 방법 등을 쓰고 있다) 하필이면 주민등록번호라야 잊어버린 ID나 비밀번호를 찾아낼 수 있다는 말은 석연치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우리의 개인신상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의 노력을 얼마나 기울이고 있는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필자의 경우 2년전 처음 인터넷에 입문(?)하면서 각종 사이트의 회원으로 닥치는 대로 가입했다. 여러 곳에 가입하면 더욱 많고 좋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좋은 ID를 가지려는 욕심도 작용했다. 남보다 먼저 가입해야 내가 좋아하는 ID를 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필자의 e메일 주소가 아마 10가지도 넘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쓰고 있는 것은 딱 3가지이다. 극히 개인적인 경우, 공식적인 경우, 일반적인 경우를 가려 용도에 따라 이것을 쓰기도 하고 저것을 쓰기도 한다.

그런데 필자의 어리석게도 인터넷사이트에서 원하는 정보를 아낌없이 주어버렸다. 인터넷에 대해 잘 모른 나머지 개인정보 보호라는 개념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필자는 인터넷에 별 관심이 없는 아내의 이름으로도 여러 곳에 가입했다. 아마 5∼6곳은 될 것이다. 그런데 넷맹이나 다름없는 아내는 e메일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한 두곳만 빼놓고는 가입한 사이트가 어디 어디인지, ID는 물론 비밀번화가 무엇인지 모를 정도이다. 남편의 과욕 때문에 귀중한 아내의 개인정보만 바깥에다 흘려놓은 셈이 돼버렸다.

이러다가는 안되겠다 싶어 몇 곳의 사이트는 탈퇴를 했지만 그나마 쉬운 일이 아니어서 이제는 아예 포기해버린 상태이다. 설마 누가 어찌하랴 싶은 생각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언제 어떻게 될지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오프라인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양질의 서비스를 위해 필요하니 주민등록번호나 월 소득, 직업, 직위 등을 가르쳐 달라"고 하면 화를 내거나 기분 나빠할 우리들이 온라인 상점에서 개인신상정보를 물으면 쉽게 가르쳐주는 행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아마도 우리 자신들이 인터넷만능주의나 인터넷숭배사상에 빠져 인터넷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마법의 도구」라고 믿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인터넷은 우리 인간에게 많은 「선물」을 갖다 주고는 있지만 여러 가지 치유하기 어려운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개인정보가 엄청난 가치를 지니는 것이 정보화사회이다. 그래서 너도나도 타인의 정보를 손에 넣으려고 애를 쓴다. 그래야 인터넷시대의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개인정보는 누가 보호해주기 전에 나 자신이 먼저 적극적으로 보호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만약 당신이 여러 사이트에 가입하여 자신의 정보를 아무 생각 없이 제공했고, 그래서 걱정이 된다면 꼭 필요한 곳만 남겨놓고 다른 곳은 지금 당장 탈퇴하라. 그 것만이 지금 당신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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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1.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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