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 17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34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http://columnist.org
*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울력은 살아 있었다

"아이는 소 몰리고 늙은이는 섬 욱이기/ 이웃집 울력하여 제일 하듯 하는 것이/뒷목추기 짚 널기와 마당 끝에 키질하기/일변으로 면화틀기 씨아 소리 요란하니/ 틀 차려 기름짜기 이웃끼리 합력하세"

'농가월령가' 9월령 중의 한 대목이다. 가을걷이는 대강 끝났지만 동네전체로 보면 월동준 비 등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으니 모두 힘을 합쳐 해내자는 것이다. 울력이란 이처럼 마을의 공동사에 주민들이 힘을 합치는 것으로 품앗이와 함께 우리의 전통적 협동노동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미덕이 도시화, 산업화로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32년만이라는 얼마전 폭설이 이를 일깨워냈다. 기록적인 눈이 쏟아지던 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몇 차례 방송을 했다. 경비원들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드니 주민들도 나와서 자기 동 앞을 조금씩이라도 맡아 달라는 것이었다. 날이 어두워지면서 눈발은 거의 그쳤으 나 이미 쌓인 눈만으로도 사태는 심각했다. 그러나 아파트 전체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 침묵 속에는 아는 사람은 알만한 걱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약 한 달 전인 설 연휴 끝 무렵이었다. 1월초부터 내린 눈이 녹지 않은데다 그 위에 자주 쌓이는 통에 빙판이 되어 차들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여간 낑낑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경비원들이 틈틈이 작업을 했으나 어림없었다.

그때 어느 종교단체 신도들간에 사발통문이 돌았다. 고향에 갔던 이들도 대부분 돌아와 집 집마다 사람들이 있을 터이니 제설작업을 하자는 것이었다. 우선 서로 잘 아는 신도들만이 라도 나와서 얼음을 깨고 눈을 치우면 다른 사람들도 가세하지 않겠느냐는 계산이었다.

그 생각은 상당히 큰 효과를 거두었다. 많지 않지만 각 동마다 몇 사람씩 나와서 일을 시 작하자 다른 이웃들도 합세했다. 어느 집은 온 가족과 찾아온 친척들까지 하루 종일 얼음과 눈을 치웠다. 부득이 함께 하지 못한 사람들을 미안하게 만들 뿐 아니라 같이 일하는 사람 들까지도 감동하게 만든 것이다.

어떤 초로의 신사 얘기는 그 일가족 못지 않게 유쾌한 화제가 되었다. 한참 일을 하는데 그가 지나가자 주부들이 함께 치우자고 했다. 그는 흔쾌히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한 시간 가량 일을 하고 난 뒤 커피를 시켜 한잔씩 돌리기도 했다. 그런 다음 그가 말했다. "사실 저 는 이 아파트 주민이 아닙니다. 제 딸이 여기 살고 있어 찾아오던 중이었습니다"

어느 동의 경우는 더욱 감동적이었다. 작업에 참가하지 않은 집이 거의 없을 정도로 주민 들이 적극 참여했다. 부득이 외출을 해야 하는 집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내놓아 힘을 북돋 아 주었고 어느 집은 외부 일정을 취소하고 같이 일을 했다. 평소에는 무관심하고 냉랭했던 이웃들이 이날은 아스팔트 바닥에서 점심과 저녁까지 같이 하며 제설작업을 했고 밤늦게 끝 나자 3차,4차까지 함께 술집을 다니며 우의를 다졌다. 그리고 각자 자신들의 가슴 깊숙한 곳 에 이런 따뜻한 마음이 아직도 남아 있구나 하며 흐뭇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아파트 전체가 그렇게 잘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남의 일처럼 냉담한 사람 이 적지 않았고 어느 동은 아예 그런 것과는 관계없다는 듯이 빙판을 방치했다. 정말 얼음 장같은 인심들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에 내린 폭설은 이 때 나타났던 주민들의 협력관계가 지속될 것인지 아 니며 종전의 무관심한 도시민으로 되돌아가고 마는가를 가늠하게 해주는 기회였다. 이번에 는 평일 밤에 작업을 하게 돼 참여율이 낮거나 어쩌면 전혀 반응이 없을 가능성이 높았다. 만약 그렇게 되면 지난번의 감동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는 우울한 결론에 도달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런 우려를 비웃듯이 침묵을 깨고 한 두명씩 나오기 시작했다. 관리사무소에서 넉 가래 몇 개를 사다 놓았으나 코끼리 비스켓 격으로 대부분의 동에서는 구경도 하기 힘들었 다. 그나마 장비라고 할만한 것은 삽 몇 개와 낡아빠진 빗자루들이었다. 대다수는 집에서 쓰 레받기, 세숫대야, 양동이, 함지박 등을 가지고 나왔다. 들고나올 거라고는 그것밖에 없기 때 문이었다. 숟가락과 바늘을 들고 나와서 연못을 파겠다는 사람들 꼴이었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 불평하지 않고 어른은 어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힘닿는 데까지 조금씩이라도 퍼 나르니 두어 시간 뒤에는 일한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작업 을 하지 않는 동이 한 곳도 없다고 경비원이 웃음을 띠며 전하기도 했다.

어느 동에서는 일이 일찍 끝나 주민들이 함께 노래방에 간다고 자랑을 했고 아직 일을 하 는 동에서는 우리도 빨리 끝내고 저렇게 단체로 술 마시러 가자고 즐겁게 농담들을 했다. 아파트 전체 주민이 한 마음이 되는 날이었다. 주민들은 이렇게 합심이 잘 되리라고는 상상 도 못했다며 서로 놀랐다. 끔찍한 폭설이 사람냄새 나는 아파트를 만들어주었다고 고마워하 기도 했다.

다음날 보도를 보니 다른 아파트는 물론 서울시내 곳곳에서 주민들의 눈 치우기 울력이 자 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하려고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저력이 우리에게 있음을 입증해 준 것이다. 또 시민단체에서는 앞으로도 울력이 필요할 때를 대비해서 입법 청원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법까지 제정하면 울력의 기본정신인 자율에 약간 어긋 나지만 바꿔 생각하면 그것을 보강해주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공동체 정신이 언제든지 작동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살맛 나는 세상이 될 것이다.

-----
박연호

칼럼니스트,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Best Life' 3월호 (2001.03)
-----
http://columnist.org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