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 3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25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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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만세' 그만 부르자

 철없던 초등학교 시절,무슨 기념식을 했다 하면 왜 그리 오 
래 걸렸는지,교장 선생님의 말씀은 왜 또 그리 길었는지 모 
르겠다.운동장에 정렬해 서 있자면 온몸이 뒤틀리는 듯했다.
더운 때는 졸도하는 학생이 서넛은 나왔다.그러다 '만세 삼창'
(萬歲 三唱)순서가 되면 반가웠다.식이 끝난다는 알림이기도 
하고,굳은 몸을 풀 기회이기도 해서였다. 

 중고등학교에 들어갔더니 기념식 외에도 무슨무슨 궐기대회 
,규탄대회가 잦았다.그런 대회는 역전 광장이나 공설운동장 
에서도 했는데,대개 누군가가 혈서를 쓰고 때로는 유엔사무 
총장에게 보내는 메시지 같은 것이 낭독되기도 했다.마지막 
에 만세 삼창이 있고 그것이 끝나면 시가행진으로 들어갔다. 

 어른들한테 들으니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고 있던 시절 
공식 행사를 할 때 꼭 만세를 삼창했다고 한다.그 말을 듣고 
난 뒤로는 만세 삼창이 있을 때마다 앞에서 두 팔을 번쩍드 
는 교장 선생님의 모습이 군복차림으로‘덴노헤이카 반자이’
를 외치는 모습과 자꾸만 겹쳐 보였다. 

 중국에서는 최고 통치자인 천자(天子)에게 오래 살고 오래 
통치하라고 ‘만세’라는 말을 썼다.제후들에게는 이 경우 
‘천세(千歲)’라고 해야 했다.우리나라에서는 중국의 종주 
권 행사가 뚜렷해지던 고려말부터 ‘천세’였다.대한제국이 
되면서 ‘대군주 폐하 만세’‘대한제국 만세’를 부를 수 
있었다.

‘만세’에 해당하는 서양말들은 '롱 리브’‘비브’‘비바’ 
등이다.오래 살라는 뜻이다.군주의 장생과 그가 다스리는 
나라의 무궁을 기원할 때 썼다.‘만세’는 동서양 다 전제
군주 시대의 잔재다.그러나 그 때문에 ‘만세’를 부르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이 말의 출생 근거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 많은 사람이 일제히 두 팔을 번쩍 들고 누군가의 
선창을 따라 세 번 만세 부르는 것은 우스꽝스러워 보인다. 
게다가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것은 일제시대에 하던 것을 
물려받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공식 행사의 식순에 전체주의 
냄새가 나는 만세 삼창을 도식적으로 넣는 것은 이제 그만했 
으면 좋겠다. 3·1운동 때처럼 다중이 한뜻이 되어 자발적으로 
부르거나, 아들이 세계 권투 챔피언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대한국민 만세다”하는 것이야 얼마든지 괜찮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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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대한매일 논설위원
대한매일 200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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