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 13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13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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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여성을 에너지화하자

언젠가 몇 사람이 사적으로 모인 자리에서 갈 데까지 간 한국의 교육을 회복하고 정상화하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가 있겠느냐는 문제가 화제에 올랐다. 자리가 자리인지라 심각한 표정으로 여러 가지를 거론하면서 열을 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높은 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을 우리가 주제넘게 그런 걱정하게 됐느냐고 냉소적인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어느 명문학원 강사가 한마디 툭 던졌다. 서울 강남의 극성 엄마 200명만 본보기로 지구에서 몰아내면 교육정상화는 손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그 한 마디에 좌중은 모두 낄낄대며 그거야말로 명 처방이라고 입을 모았다. 동석한 여성 두어명도 맞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서울 강남의 엄마들을 꼽았지만 전국 곳곳이 마찬가지다. 자식 교육에 퍼붓는 우리나라 엄마들의 에너지와 열기는 대단하다. 그 치맛바람이 좁은 국토에 부존자원 빈약한 이 나라를 이만큼이라도 살게 해주었다. 유엔통계도 이를 인정하고 있다. 여성들의 위력적인 에너지가 한 국가의 방향을 제대로 잡아 준 것이었다.

그러나 매사에 양면이 있어 그런 긍적적인 점에 반하여 부작용 또한 적지 않았다. 즉 사회적 엔트로피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증가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쯤은 그 막강한 여성들의 에너지가 부수적으로 발생시킨 폐단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렇게 쓰여야 한다.

하지만 과거의 폐단은 더욱 커지고 새로운 부작용은 속출하고 있다. 50,60년대의 치맛바람은 일부층에 제한되어 있었다. 대부분 주부들은 하루 하루 생활을 꾸려가느라 자녀들의 교육에 관심을 기울일 여지가 적었다. 바꿔 말하면 많은 학생들은 부모들의 소극적 간여 또는 무관심 속에서 학교를 다녔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자녀들의 자율성과 창의력 향상에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다르다. 가정마다 자녀들이 한 두명에 불과하고 생활수준이 높아졌기 때문에 엄마들은 자녀교육이 최대 관심사이고 그것으로 해가 가고 달이 간다. 내 자식 위주의 이기주의와 무조건 일류대학의 세칭 인기학과만 보내려는 비교육적 자세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 부작용은 새삼 거론하지 않아도 누구나 느낄 것이다. 학교교육은 붕괴위기에 몰려 있고 올바른 가치관은 헌신짝처럼 되어 버렸다. 적성, 인성, 창의력 등은 사전에나 있는 말이 되었고 자녀들은 정신적,육체적으로 나약해지고 있다. 다 큰 애들이 입대하는 부대앞까지 따라가서 울고불고 하는 엄마들이 한국 말고 또 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그런가 하면 수다, 무례, 탐욕, 뻔뻔스러움의 대명사로 매도되어온 아줌마들이 2년전 조그마한 반란을 일으켰다.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약칭 아나기)이라는 이 단체는 남북분단과 한국전쟁 등으로 파괴된 사회와 가정을 인내와 억척으로 복구한 우리 어머니, 누나들의 저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보다 폄하하는 남성위주의 사회에 반기를 든 것이다. 내 자식,내 남편만 우선하는 못 말리는 가족이기주의와 빗나간 교육열 등 비난받을 점도 있지만 크게 보면 나라와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바가 더 많다는 반론이었다.

맞는 말이다. 해방이라고는 하지만 빈곤 외에는 뚜렷한 것이 없고 설상가상으로 터진 한국전쟁은 국가 존립 자체를 위협했다. 그때 이 나라를 이끈 힘은 여성의 에너지였다. 끔찍하고 참혹한 가난 속에서 가정을 지키고 자식들을 키워 온 모성은 누구도 말 몇마디로 훼손할 수 없는 거룩한 힘이었다. 해방이후 질기고 강해진 것은 나일론과 여성밖에 없다는 찬사 겸 감탄사도 그 때문에 나온 것이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는 60,70년대 공순이라는 비하를 받아가면서 이 나라의 틀을 다진 여공들이 없었다면 오늘이 있겠는가. 평화시장에서, 구로공단에서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흘려온 그녀들의 피와 땀의 대가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또다시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실직한 가장들이 넘쳐 나고 파산한 가정들이 줄을 잇는다. 높고 힘있는 사람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외쳐대지만 그걸 믿는 국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면면히 이어온 우리 여성들의 에너지에 기대를 거는 이들이 훨씬 많다. IMF 관리 체제 하에서 보여 준 여성들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에너지는 인류 역사 이래로 대부분 사장되어 왔다. 근대에 들어와서 조금씩 햇빛을 보고 있지만 전체에 비하면 미약한 정도다. 에너지 매장량이 무한하다는 뜻이다.

그 가운데 일부가 사용되면서 부작용도 수반하지만 그렇다고 극성 엄마 200명을 추방하듯이 할 게 아니라 건전한 방향으로 돌리도록 국가 ,사회 그리고 남성들이 도와야 한다. 그것이 위기에 놓인 한국 나아가 인류의 비상구를 여는 힘이고 희망이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이 입만 열면 내거는 개혁도 여성 에너지가 외면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종전의 가부장적 자세에서 벗어나 그녀들을 사회의 감시자, 살림꾼으로서 정당히 대우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이루어 낼 수 있다. 따라서 오늘의 경제위기는 여성들의 역할에 따라 그 방향이 가늠될 수 있고 편견없는 남성들의 지원이 따르면 우리는 또 한번 고난을 성공적으로 극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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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Best Life' 2월호 (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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