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2월 12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12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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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성 따르기

대혁명으로 자유와 평등을 쟁취한 나라 프랑스가 사람의 이름과 성(姓)에 관해서만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보다 보수적이다.

수백년 동안 프랑스 사람은 이름을 400여개 안에서만 골라야 했다.이 목록에서 가장 많은 것은 장(요한),피에르(베드로),조세프(요셉)같은 기독교 성인 이름이나 성경에 나오는 이름이다.세자르(카이사르)같은 고대사의 인물,앙리(헨리),에두아르(에드워드)처럼 중세 이전에 흔히 쓰던 이름,아실(아킬레스)같은 신화 속 인물의 이름 등도 들어 있다.1993년에야 법이 개정돼 이름 제한이 풀렸다.

프랑스에 있는 성은 25만개쯤이다. 성은 프랑스말로 ‘파트로님’이라고도 하는데 아버지 이름이라는 뜻이다.한자의 '姓'(성)과 '氏'(씨)가 모계 중심 사회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당연히 프랑스에서는 절대적으로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돼 있다.미혼모 소생만은 예외적으로 어머니 성을 따라도 된다.자녀에게 어머니 성을 아버지 성 다음에 붙여 줄 수는 있어도 그 다음 대에 계승되는 것은 아버지쪽 성만이다.

‘파트로님’이 곧 제 뜻을 잃게 될 것 같다.프랑스 하원이 8일 어머니 성 따르기를 허용하는 법안을 가결했기 때문이다.상원 통과 절차가 남아 있으나 유럽 전반의 추세를 거스르지 않을 것이다.1994년 유럽인권법정이 아버지 성만 계승하는 것을 ‘차별’로 간주했고,유럽에서 이 ‘차별’이 남아 있는 곳은 프랑스,벨기에,이탈리아 등 몇 나라밖에 없다.

어머니 성 따르기가 우리에게는 먼 옛날에 이미 있었다.가락국 개조이며 김해 김씨 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은 바다 건너온 허황옥(許黃玉)을 왕비로 맞았다.왕자 가운데 둘이 어머니를 위해 허씨 성을 이어받았다고 한다.그 후손 김해 허씨는 김해 김씨와 한 혈족이라 하여 통혼하지 않는다.

지금 가락국 시절처럼 할 수 있게 하자면 아마 엄청난 반발이 있을 것이다.남자들의 반대가 심할 것이다.그러나 여자의 성을 생각해 보자.여자의 아버지와 그 아버지의 역대 아버지들이 지녔던 성이다.남자들이 억울해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아들이 없어 대가 끊기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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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대한매일 논설위원
대한매일 2001.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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