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30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07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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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커뮤니티 파워

지난 해 16대 총선을 앞두고 시민단체들이 비리정치인 낙천. 낙선운동을 펼칠 때 정치계와 언론계는 지대한 관심을 가졌으나 그 핵심을 제대로 직시한 정치인과 언론인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이 시민단체의 운동과 관련해 유권자들의 높아진 수준, 한국사회에 뿌리를 내리는 시민운동,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정치판 등과의 함수관계를 진단하고 그 영향력과 파급 효과를 예견한 것은 일리가 있었다. 내다보는 방향도 빗나간 것은 아니었다. 총선정국을 덮칠 태풍의 발생과 진로 그리고 속도 등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거나 놓친 것이 있었다. 아니 정치인과 언론인 대다수는 이를 간파할 능력이 없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터넷의 힘이었다. 낙선운동이라는 태풍이 상륙을 시도하면서 동반하고 있는 인터넷 힘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려는 측면이 없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낙선운동과 결합해 발휘할 인터넷의 엄청난 위력을 미리 계산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노릇이었다.

즉 많은 시민들의 시위, 기존 언론을 통한 여론의 영향 등은 자신들 경험에 비추어 그런대로 읽을 수 있었으나 네티즌들의 활동과 힘은 정확하게 판독할 수 없었다. 시민단체들이 홈페이지를 통해 정치인들의 부정과 비리를 수집하고 사이버 낙선운동을 전개해도 대다수 정치인과 언론인들은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하나 더 장착한 것 정도로만 여겼다.

기존의 제도와 체제는 물론 사고방식까지 크게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디지털 사회의 요청을 이해하지 못했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물결을 자각하지 못한 것이다. 개표 결과 시민단체들이 꼽은 낙선대상 후보 가운데 68.6%가 고배를 들었다. 시민운동과 인터넷의 시너지 효과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한 것이다. 정치계와 언론계는 그때야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외국 언론들도 한국 총선에서 행한 인터넷의 역할과 힘을 추적하고 보도했다.

80년대 후반 PC통신 동호회에서부터 출발, 90년대 후반 급성장한 인테넷 상의 각종 모임 즉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활동과 그 영역을 일관되게 주목해 왔다면 조금도 놀랄 것이 되지 못했다.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것은 인터넷 커뮤니티의 힘이 실현된 한 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오프라인 상의 모임들을 단순히 온라인으로 옮겨 놓은 것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활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상 이상으로 인간의 생활패턴과 사회 관행의 변혁을 요구하고 있다.

시민운동이 만약 오프라인에서만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 요구 내용을 우리는 좀 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민단체들은 유권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기 위해 거리시위를 비롯한 각종 활동을 펴고(물론 서명 운동 등 많은 활동을 전개했다) 이를 전달해 줄 언론의 협조를 절대 필요로 했을 것이다. 정치계와 언론은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여론을 조정하게 된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는데 기존 언론을 그리 필요로 하지 않았다. 인터넷 상의 대안매체들이 상당 부분 이를 맡아 주거나 자신들이 직접 해당자한테 전하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들끼리 서로 제보하고 의견을 나누며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데 언론이나 정치계의 역할이 없어도 충분했다.

인류의 역사와 거의 함께 한 여론 전달체계에 혁명적 변화가 온 것이다. 즉 대중의 의사를 언론 등 누군가가 여론으로 재구성해 국가나 조직의 최종 책임자 또는 결정권자에게 전달하 고, 이에 대한 조치 및 반응이 그 역순으로 진행되는 전통적인 방식이 무너진 것이다.

물론 기존 언론의 역할이 완전히 무용지물이 된 것은 아니다. 또 인터넷만으로 모든 의사 전달과 교류를 해낼 수도 없다. 그러나 기존 미디어들의 지위가 근본적으로 흔들리는 것만 은 분명하다. 정치계와 언론은 바로 이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에 지난 번 총선에서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지 못했다.

서울 시내 어느 경찰서 출입기자와 경찰관 사이의 충돌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언론이 보여 준 자세를 통해 우리는 이와 비슷한 사례를 볼 수 있었다. 처음 해당 기자들과 언론사들은 경찰에 대해 위압적인 태도로 나갔다. 여론 전달, 사회 감시 및 계도 등의 기능면에서 아직도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는 언론의 착각과 자만심이 그 배후에 있었다. 경찰 당국이 해당 경찰을 징계할 때만 해도 그런 구습이 그대로 통하는 듯 했다.

그러나 인터넷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자 각 커뮤니티의 네티즌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전국의 경찰들은 당사자이기 때문에 사이버공간에서 더욱 강력한 시위를 벌였다. 오프라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경찰관들은 단결력과 위력을 과시했다. 결국 경찰당국은 징계를 완화했고 고자세이던 언론사들도 뒷걸음질을 해야 했다. 같은 직종 종사자들이 온라인상에서 한 목소리로 좋지 않은 과거의 관행에 맞선 것이다.

현직 공무원들이 익명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펴는 '사이버 공무원 모임방'도 인터넷 커뮤니티의 힘을 유감없이 보여준 예라 할 수 있다. 이들은 99년도 5월말 개설한지 한 달도 안돼 6만여명이 방문할 정도로 기세를 올렸다. 사이버공간에서만 존재하면서 공무원들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선언한 이 사이트를 국내 서버에서 폐쇄하자 외국 서버로 자리를 옮기기도 했다. 공무원 신분임을 잊지 않고 그 범위 내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직접 낸 것도 기존 여론 전달체계의 수정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커뮤니티 파워의 한 양상이었다.

5.18 광주민주항쟁 전야제의 민주당 386세대 술판이 전국에 알려진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해야 할 일이었다. 사실 여부를 놓고 당사자들간에 뒤에 많은 설왕설래가 있었으니 진상 여부는 여기서 논외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그 내용의 전파과정이다.

참석자 가운데 한 사람이 인터넷의 어느 홈페이지에 올리자 많은 사람들이 이를 읽었고 인터넷 신문인 '오마이뉴스'에서 집중적으로 다뤘다. 그러나 정치인들과 언론은 이 때도 커뮤니티의 힘을 자각하지 못하고 더듬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네티즌들의 여론은 구태의연한 정치와 언론의 둑을 무차별 무너뜨렸고 결국 그 물길은 오프라인에서도 홍수를 이루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형성은 모두 알다시피 동호회, 친목회 등에서 비롯했다. 오프라인의 모임들처럼 여러 가지 제약이 없고 번거롭지 않아 급성장했다. 또 사회활동 제약과 정보 부족으로 발언기회가 적던 소외층에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사이버공간에서 여성들의 모임이 많아지고 그들의 발언과 힘이 강해진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모임들이 꼭 정치적, 사회적 목소리만을 내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들의 공동 관심사를 논의하고 애환을 같이 하면서 결집력을 과시했다. 따라서 애써 기존 언론의 전달 체계에 편승할 필요도 적었다. 반대로 응집력 강한 집단이 활발하게 활동하면 언론 등 각분야에서 주목하게 마련이고 더불어 그 힘도 강해지는 법이다.

전문가들이 모이는 커뮤니티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각 분야의 최신정보, 기술, 신제품, 업계동향 등을 서로 교환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으면서 창의력을 발휘한다. 그리하여 오프라인의 웬만한 연구소, 학회 등에 못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비즈니스 면에서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취미, 공동 관심사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동호회 수준에서 출발했던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이제는 강력한 힘을 발휘해 기존 사회체제, 관습, 제도들의 새로운 배치를 요구하고 이끄는 단계에 이르렀다. 인류의 삶과 사고방식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지각변동이라고 후손들은 얘기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그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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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웹진 '인재제일' 1,2월호 (2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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