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25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205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http://columnist.org
*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하나를 보면

우리 동네에서 걸어서 10분쯤 되는 곳에 쓰레소각장이 있다. 혐오시설이라 하여 오랜 동안 그곳 주민들의 반대가 거셌고 설립이후 가동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런 과정을 우리는 대부분 언론보도를 통해서 알았다. 그쪽 주민들을 직접 만나보거나 현장을 가 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자기 동네 코 앞인데도 그렇게 관심도가 낮았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아파트 뿐만 아니라 같은 구의 주민들 모두 소각장의 가동을 알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관리사무소에서 방송을 한 것이다. 마치 공습경보를 발령하는 것처럼 사뭇 비장하면서도 약간 위협적인 어조라 듣는 사람들은 긴장까지 할 정도였다.

내용인즉 우리 동네에서 발생한 쓰레기가 새 소각장에서 처리될 것이며 이에 따라 지금까지보다 더욱 철저한 분리수거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쓰레기 종량제 및 분리수거를 실시한지가 언제인데 새삼스레 저리 야단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 중에서도 종이 등 불에 타는 물질과 플라스틱 등 유독가스가 배출되는 것들은 절대 섞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만약 그것이 조금이라도 지켜지지 않으면 소각장에서 반입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각오하라는 투였다.

한 마디로 우리 구 관내 쓰레기 소각장이 가동을 했으니 분리수거를 철저히 해서 소각장 주변 주민들을 괴롭히지 말고 환경오염도 줄이자는 것이었다. 하나도 어려울 것 없는 일을 가지고 저렇게 호들갑을 떨며 방송하는 것이 우스웠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아는 데는 며칠 걸리지 않았다. 소각장에서 쓰레기 반입을 거절해 동네마다 처리를 못하고 쌓였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지 않은 쓰레기들이 아직도 많아 화가 난 소각장에서 반입을 중단한 것이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의 비장한 방송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를 알리며 주민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하도 요란해 경비실에 가서 알아보았더니 그런 방송을 할 만도 했다. 어느 개가 짖느냐 나는 나대로 하겠다는 식으로 이것저것 뒤섞어 버린 쓰레기가 계속 나온다는 것이다. 한심했 다. 정치, 경제, 교육 문제 등이 거론되면 전문가 못지 않게 왈가왈부하기를 예사로 하는 사 람들이 조금만 신경 쓰면 할 수 있는 분리수거 하나도 제대로 하지 않다니 어이가 없었다.

소각장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자기 동네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남의 일처럼 그렇게 나오는 것이 제 정신인가. 혐오시설을 허락해 준 그 동네 주민들을 생각하고 자신들의 위생을 위한다면 누가 말하기 전에 해야 마땅한 일이다.

수질을 오염시키는 원인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것이 생활 하수다. 즉 일반가정에서 많이 발생한다는 말이다. 바꿔 말하면 수질, 대기 오염의 대부분은 일반 가정에서 조금만 노력하면 크게 개선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쓰레기 분리수거 하나 똑바로 못하는 사람들이 남의 눈에 뜨이지 않는 하수 처리를 어떻게 할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결국 자신과 가족의 건강 나아가 후손들의 생활터전을 파괴하는 일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자행하는 것이다. 교양 있는 척 떠들고 멋진 옷, 좋은 집과 비싼 차에는 온갖 신경을 쓰면서도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것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 우리들. 그 후안무치를 손가락질할 후손들을 생각하면 두렵고 부끄러울 뿐이다.

-----
박연호

칼럼니스트,전 국민일보 논설위원
'자연공원저널' 1월호 (2001.01)
-----
http://columnist.org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