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15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99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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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교통혼잡이 예상될 때 먼 곳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는 것이 가장 빠를까. 영국의 어느 광고회사가 이와 비슷한 문제를 놓고 상금을 내걸었다. 비행기 등 여러 가지 교통수단과 기발한 방법들이 나왔으나 가장 바람직한 답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이었다.

상대성이론을 좀 간단하게 설명해 줄 수 없느냐는 질문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미인과 함께 있으면 1시간이 1초 같고, 뜨거운 난로 위에 앉아 있으면 1초가 1시간처럼 느껴지는 것이 상대성원리라고.

이 두 가지는 일종의 넌센스 퀴즈식 답변이다. 물리적 차원의 질문 초점을 피해 심리적으로 답했기 때문이다. 복잡한 교통사정이나 뜨거운 난로 위는 엄연한 물리적 현상으로 이를 편한 쪽으로 바꾸려면 엄청난 에너지와 적정 시간이 필요하다. 그보다는 앞의 사례들처럼 인간의 심적 자세를 바꾸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의미가 여기에 들어 있다.

서민들의 일상이란 어깨 한번 제대로 펴볼 틈 없이 항상 근심 걱정의 연속이지만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다. 극복해야 할 고통과 어려움의 장벽이 너무 험난해 새해가 새해 같지 않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좌절과 분노에서부터 불공정한 사회 풍조 때문에 겪는 상실감, 박탈감까지 고통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혹독한 이 계절을 어떻게 넘기고 살아남느냐며 비통한 한숨을 토해낸다. 지독하게 아픈 나날들이지만 주저앉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비정한 현실이다. 앞을 가로막는 이 가혹한 상황을 돌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먼저 물불 가리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혀 현실을 개혁하는 것이 원안이지만 그건 인류 차원의 장구한 시간을 요하는 방법이다.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질 일이 아니다. 대신 넌센스 퀴즈의 답변들처럼 현실의 도전에 심적으로 대응하며 개혁을 병행해 나가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즉 힘들고 괴로운 인생여정을 함께 할 '사랑하는 사람'이나 '미인'을 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문자 그대로의 사람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근심 걱정 고통을 덜어줄 모든 수단과 마음가짐이다. 자신의 결연한 의지나 세상을 새롭게 보는 눈일 수도 있다. 세상과 다른 사람을 내 마음에 맞도록 바꿀 수 없으면 거꾸로 나를 바꾸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불교의 '보왕삼매론' 두 번째 말씀은 그런 점에서 좋은 반려자가 될 것이다. '세상살이에 곤란함이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가르치며 인생에 곤란함이 없으면 업신여기는 마음과 사치한 마음이 생기니 근심과 곤란으로 세상을 살아가라고 당부하기 때문이다.

강물도 동반자로 손색이 없다. 완만한 곳에서는 천천히, 경사진 곳에서는 급히 흐르는 등 조용히 지형에 순응해 흐르는 것도 모자라 큰 바위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아무 말 없이 돌아서 간다. 그러나 긴 시간을 두고 보면 그게 아니다. 묵묵히 흐르면서 오히려 지형을 바꾸고 바위를 변형시키거나 옮겨 놓는다.

정말 어렵고 힘든 때다. 새해라고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암울한 시절이다. 그래도 우리는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 그 길에는 이런 말씀과 강물이 동반자로 가장 적절하리라 본다. 그들과 함께라면 어떤 어려움이나 괴로움도 우리 곁에서 상당히 먼 곳으로 물러날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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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호

칼럼니스트
삼성증권 사외보 'Fn Honors Club' 1월호 (200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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