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월 5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95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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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그해오늘은] 역사의 '야간비행'



1982년 오늘 자정으로 야간통금이 해제된다. 새삼 '역사는 자유의 발전과정'이라던 헤겔의 말을 떠오르게 한다. 밤의 여신 '닉스'에게서 낮의 여신 '헤메라'가 태어나는 그리스 신화를 떠올릴 수도 있다.

통금은 주(周)시대에 생겨나 여러가지 모습으로 이어져 왔고 조선조에서의 통금은 바로 종루(종각)처럼 생생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한마디로 까마득한 옛날부터 밤은 온전한 국민의 시간이 아니라 취침나팔이 울리고 난 군막사의 시간 같은 것이었다.

물론 광복후 37년이나 이어진 통금은 지난날의 그것과는 성격이 다르다. 전등이 없던 시절의 밤이란 따로 할 만한 일도 없어 자연스레 통금이 이루어진 셈이다. 야간순찰에 나선 포도들은 투전판이나 단속하는 정도였다.시계가 없던 그 시절 인정(밤 10시경)과 파루(새벽 4시경)의 종소리는 생활의 기준도 되었다. 원래 종루에는 물시계가 있었으나 정확하지 않아 경복궁의 자격루로 잰 시간을 전달해서 종을 쳤으니 훗날의 사이렌과는 다른 쇳소리였다.

전등이 생겨나 밤의 문화가 이루어진 20세기의 통금은 미군정 시절부터 시작돼 치안과 방첩이라는 명목으로 존속돼 왔다. 통금에 걸려들만큼 얼빠진 간첩이나 도둑이 없다는 것은 당국이 더 잘 알면서도 밤만 되면 큰길을 바리케이드로 막았다. 따라서 그것은 시끄럽던 거리가 병영처럼 조용해지는 것이 보기에 좋아서라는 '미학적' 동기로 밖에는 풀 수가 없었다.

그런 통금을 5공이 없앴다고 감격할 일도 아니다. 5공은 5.17의 이미지를 씻으려 올림픽을 유치했으나 외국의 첫 반응은 통금하에서 무슨 올림픽이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통금을 없앴으나 올림픽은 성공적으로 치렀고 간첩도 도둑도 날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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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평

세계일보 문화전문기자
세계일보 2001.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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