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3일 칼럼니스트 COLUMNIST No.193
1999.09.19 창간 서울칼럼니스트모임 (Seoul Columnists Society) 주4~5회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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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보기 *누구나 칼럼 *의견함
네티즌들이 토정비결을 보는 이유

마침내 신사년 새해 아침이 밝았다. 지난해는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역이 구름에 가려 해맞이에 나섰던 사람들을 실명시켰는데 올해는 동해안 쪽에 날씨가 좋아 많은 사람들이 해맑은 태양을 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지난해가 여러모로 어려웠던 것은 첫날의 날씨가 흐렸던 탓이라고 치부해 버리고 올해 첫날은 그래도 맑은 편이니까 매사가 잘 풀릴 것이라는 기대를 가져보기도 한다.

해가 바뀌면 우리들이 재미 삼아 해보는 일이 하나 있다. 바로 토정비결이다. 내용이 꼭 들어맞아서가 아니라 그저 궁금해서 그런다. 옛날 같으면 길거리에서 돋보기를 낀 할아버지에게 토정비결을 보았으나 요즘은 집에 있는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올해의 운세」를 점쳐본다.

아침에 배달된 올해 첫 신문을 보니 새해를 맞아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사이버 점집」이 북적거리고 있다는 기사가 눈길을 끈다.

내용을 읽어보면 앞에서 말했듯이 올해 운세를 궁금해서 알아보는 정도가 아니라 점을 신봉하는 네티즌이 많지 않나 하는 생각이 앞선다. 네티즌들이 첨단과학의 산물인 컴퓨터로 점을 본다는 것 자체가 50대인 필자로서는 상당히 혼란스러워진다.

사이버 점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경기가 나빠져 앞날을 걱정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기성세대들이 정치를 잘하고 경제를 일으켜 사회를 안정시킨다면 「사이버 점쟁이」들이 이처럼 극성을 부리지는 않을 텐데….

사이버 점을 보아주는 사이트는 한 두곳이 아니다. 인터넷에서 「운세」나 「토정비결」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수십개의 사이트를 찾을 수 있다. 대부분 사업적으로 문을 연 경우이겠지만 진짜 점쟁이가 손님을 끌기 위해 만든 곳도 있을 것 같다.

유명 포털사이트도 인터넷 점보기에 앞장서고 있다. 다음이나 드림위즈, 네이버, 심마니, 라이코스 등이 경쟁적으로 점을 보는 코너를 마련해 놓고 다양한 운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종류도 다양해 토정비결 뿐만 아니라 별자리점도 있고 꿈해몽, 풍수, 궁합, 성명풀이 등의 서비스를 하는 곳도 있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에 관계없이 자신의 앞날이 불안하거나 궁금하면 점을 보게 된다. 젊었을 때는 점에 대해 우습게 여기다가 나이가 들수록 자신도 모르게 점에 대해 거부감이 없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어쩌면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풍습이 몸에 배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점이라는 것은 분명히 비과학적인 구시대의 유물이다. 그런데도 네티즌들은 비록 컴퓨터로 보는 것이지만 점을 좋아한다. 이 시대의 네티즌들은 과학교육을 받았고, 첨단기기인 컴퓨터를 사용하는 세대인데도 말이다.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우리는 비과학적인 일에 대해 아주 잘못된 것이라며 배척해버린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고 심할 경우 불안해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할 때 점이 사라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은 첨단과학시대이다. 그래서 이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변할지 가늠하기가 매우 어렵다. 시대가 첨단화되면 될수록 장래를 더욱 점치기 힘든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점이 배척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컴퓨터에 대 놓고 고해성사를 하고 컴퓨터에게 자신의 장래를 물어보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세상이다. 스스로 일으켜 놓은 기계문명에 덜미가 잡힌 된 인간들의 모습이 점점 왜소해지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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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1.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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