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는 모두 꿈들이 많아서,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 보고 싶어한다.나도 그랬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면 교사를 하고 싶고, 좋은 글을 읽을 때는 그런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고, 용감한 군인 이야기를 들으면 군인이 되고 싶었다. 지금 되돌아보니 결국 내가 원했던 세 가지를 다 해 본 셈이다.

육군 보병 장교를 했으니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이룬 것이고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두 해 반 동안 교사를 했으니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꿈도 이룬 셈이며, 지금은 신문 기자로서 글을 쓰고 있으니 글장이가 되겠다는 꿈도 어느 정도 이룬 셈이다.

신문 기자가 되어 고생도 하고 고민도 많이 했지만, 남이 하기 어려운 경험을 쌓았다. 빛나는 업적을 세우지는 못했을지라도, 일찍 붓을 놓게 되는 기자 사회 풍토에서 아직도 글을 쓰고 있으니 기자로서는 행복한 축에 든다고 할 수 있다.

군 생활은 병역 의무를 수행한다는 의미가 있었으니까 직업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세 가지 직업을 거치면서 늘 만족해 한 것은 아니었다. 단계마다 갈등도 있었고 번민도 있었다. 그렇지만 그 때마다 그 일이 도무지 의미없는 일이라거나 재미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후일 내 생애에 큰 도움을 주리라고 믿으려 했다.

나는 인생을 늘 배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훈련생이 되면 훈련생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소대장이 되면 소대장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 교사를 해 보았으니 교사가 무엇인가를 알고 신문 기자를 했으니 기자가 무엇인가를 안다.

나는 신문사 후배들에게 신문사란 돈 주고 밥까지 먹여 주는 대학과 같다고 말하곤 한다. 연극 담당 기자가 되면 봉급 받으면서 연극에 관해 배운다. 국방부 출입 기자가 되면 봉급 받으면서 군사 문제를 공부하고, 오래 하다 보면 군사 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 그렇게 후한 장학금을 주면서 공부하게 하는 대학이 어디 있겠는가.

흔히 자기 직업에 만족하는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 자기 마음에 드는 일을 맡지 못했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거기서 무엇인가를 배우겠다는 생각을 하면 불만은 줄어들 것이다.

직업을 수행하다 보면 직업정신이라는 것이 생긴다. 생기지 않으면 스스로 직업정신을 지니도록 노력해야 한다. 과일 가게를 한다면 자기 가게 과일 맛이 어디에 내놓아도 항상 낫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 직업정신이다. 난파된 배에서 가장 늦게 탈출하거나 배와 운명을 함께 하는 것은 선장의 직업정신이다.

직업은 자신을 완성해 가는 수행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오래 한 직업에 성실한 자세로 매진해 온 사람들에게서는 딴 사람들이 넘볼 수 없는 지혜가 느껴진다. 학문도 모든 분야가 깊이 들어가면 종국에는 철학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에게 맞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직업을 바꿀 수밖에 없다. 또 직장이 싫어서 그 곳을 뜨고 싶다면 떠야 한다. 그렇더라도 현재의 직업에 종사하는 동안은, 또 현재의 직장에 있는 동안은, 그 직업 또는 직장이 주는 배움의 기회를 구태여 박차지 말고 최대한 누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불평만 하고 자기 계발을 등한히 하면 자신만 손해다. 나는 가끔 후배들에게 절이 싫거나 주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중이 염불을 게을리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중이 되기를 그만두지 않겠다면 수행을 열심히 하는 것이 최선이다. 열심히 도를 닦으면 어느 절에 가나 제 몫을 하겠지만, 절이나 탓하고 주지만 비난하면서 허송세월하면 남는 것이 없다.

평생 직장이란 옛날 이야기가 되어, 이제 직장인보다는 직업인으로서 경쟁력을 갖추도록 자기 연마를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하다 보면 직장인으로서 성공할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더군다나 날이 갈수록 지식과 정보와 기술의 수명이 짧아져 늘 숨가쁘게 새로운 것을 좇아가야 하니 직업이란 영원한 학업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