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1998.7.31(금)
저승도 아닌 이승에 ‘지옥’으로 불리는 것들이 있으니, 그 하나를 들자
면 ‘시험 지옥’이란 것이 있다. ‘시험 지옥’이란 대학입학시험 경쟁에서
수험생과 그 부모가 겪는 고통이 ‘지옥’만 하다는 데서 나온 말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무시험’이라 하면 언뜻 ‘시험 지옥’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2002년부터는 서울대학교와 몇몇 대학교에 시험 없이 입학하게 된다.서울
대가 30일 발표한 시안에 따르면, 이해부터 입학정원의 80%를 고등학교장 추
천으로 뽑는다. 나머지 20%는 고교장 추천 없이 뽑는데, 검정고시 출신자,
경시대회 입상자, 교육감의 추천을 받은 학생들이 대상이다. 이렇게 하겠
다고 이미 밝힌 대학도 있고, 앞으로도 서울대 입시 방식을 따르는 대학들이
많이 나올 것이므로, 4년 뒤 무시험 입학은 보편적인 형태가 될 것이다.
대학 압학시험제도는 하도 자주 바뀌어 마치 자고 깨어날 때마다 변해 온
것만 같은데, 이번에는 바뀌어도 아주 혁명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번에는
4년 뒤 바꾼다고 하니, 전에 새 방식을 바로 당년이나 다음해에 적용하기도
했던 것에 비추어 보면 꽤 여유 있게 시간이 남아 있는 것 같아 보이는데,
좀더 살피면 그렇지 않다.
서울대로서는 지금 1학년생의 11.2%를 고교장 추천 입학 방식으로 뽑았으
므로 이 방식을 앞으로 해마다 늘려 가는 것이 된다. 다만 전형 기준은 변하
는 부분이 많다.
2002년이면 현재 중학교 3학년생이 대학에 들어가는 해다. 시안이 계획대
로 실시되면 이 학생들은 바로 대학 입학 준비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나 마찬
가지다. 내년 고교에 입학하자마자 대학 무시험 입학을 위해 학업성적과 활
동에 대한 평가를 받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학교장 추천을 받으려면 우선 학업 성적이 좋아야 한다.월말 고사와 학기
말 고사를 잘 봐야 하니, 이 시험 하나하나가 바로 대학 입학시험과 같은 셈
이다. 이 시험성적들이 나빠도 수능시험이나 본고사를 기약할 수 있던 때와
는 다르다. 이런 점은 학교 교육 정상화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서울대 뿐만 아니라 많은 대학 또는 모든 대학이 교장 추천서를 요
구한다면, 진학 지원자들 모두에게마다 어떻게 추천장을 일일이 써 줄 수 있
을지 모르겠다. 결국 입학지원서에 찍어주던 교장 직인 같은 정도가 되어 버
릴 가능성이 있다.
고교들 사이에는 학력 격차가 엄연히 있다. 대학들이 자체적으로 등급을
매길 것이라 하는데, 그러면 무시험 입학 제도의 중요한 취지가 흐려질지도
모른다. 고교 등급표를 만드는 것은 그 기술적인 어려움을 제쳐 놓고라도 전
국의 모든 고교를 서열화한다는 문제가 있다.
대학 무시험 입학이라는 방향은 옳다. 무시험 입학이라고 해서 경쟁이 사
라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더 치열해질 수도 있다.고교 전학년에 걸쳐 경쟁
해야 한다.결국 대학 입학을 원하는 학생에게 긴장없는 천국은 없다.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면서 공정한 경쟁이 벌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시험 입학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이 공정성인데,부정이 끼지 못하게 해서
‘무시험 지옥’이란 새 말이 혹시라도 생기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교
교사와 교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해진다.
<편집국 부국장 pensant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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