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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속 북한산 오르다
미쳤구먼. 사오마이 태풍이 엄청난 위력으로 서울에 온다는 날(9월 16일) 북한산에 부득부득 오르겠다니, 미치지 않고서야... 미쳤다는 소리를 집에서부터 듣고 나온지라, 지하철 칸에 등산복 차림으로는 딱 혼자인 나를 보는 다른 승객들의 눈초리에 희미한 조소가 묻어 있다 해도 대수로울 것은 없었다. 사내 산악회가 잡은 날마다 비가 오시니 참 이상도 하다. 비를 피하기로만 한다면 한 해가 다 가도록 산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할 판이다. 그래서 예정된 산행을 강행하기로 하고 행여나 했는데, 밤골 매표소에 닿아서도 비는 멈출 기세가 전혀 아니었다. 폭풍우를 뚫고 산에 오르겠다는 용사들 모여 보니 모두 여덟. 회장과 총무만 달랑 나오는 일이 벌어질까 조바심하던 참이니 이 숫자를 어찌 적다 하랴. 천하도 도모할 수 있는 인원 아닌가. 우리는 북한산을 이 날 완전하게 독점했다. 인적 없는 산 속. 비에 씻긴 산 공기는 차고 달았다. 계곡은 수량이 많아 물 흐르는 소리가 우렁찼다. 맑은 물은 녹옥이었다가 이내 바위에 부딛고는 백옥으로 부서졌다. 폭포는 오랜만에 작심한 듯 큰 몸짓을 해댔다. 굵은 물다발이 힘차게 미끄럼을 탄 뒤 솟구쳤다. 가슴 속 속세의 찌꺼기가 절로 사라진다. 예 말고 어디에서 선경(仙境)을 찾을까. 계곡 물을 처음 건널 때는 징검돌을 찾아 밟았지만 발을 적시지 않는 우중 등산이 가당치 않은 사치라는 것은 두 번째 물 건널 때 깨달았다. 발을 한 번 적시고 나니 거리낄 것이 없었다. 방수 구두는 안에 든 물을 완벽히 가두어 걸을 때마다 철벅거렸다. 숨은벽 능선을 타고 올라 백운대와 인수봉의 뒤꼭지를 보았다. 빗속에서 더욱 사랑스러워 보이는 봉우리들. 그 허리를 면사포처럼 엷은 안개가 감았다가는 풀었다. 오르던 능선과 계곡을 되내려와 밤골 매표소 옆 별장집에서 배낭을 부리고, 구두와 양말을 벗어 보니 발가락이 하얗게 불었다. 마당엔 휴대폰으로 알려 준 시각에 맞춰 빨갛게 모닥불이 피워져 있었다. 그 불을 둘러싸고 오리구이를 안주로 하여 마신 걸쭉한 농주의 맛... 그 맛을 어찌 말로 전할 수 있겠는가.금세 취기가 돌며 포만감이 오고, 젖은 옷은 모락모락 김이 나며 말라갔다. 더 내려와 북한산 온천탕 뜨끈뜨끈한 물에 몸을 담갔다가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니 날아갈 듯 상쾌했다. 출근한 날 궁금해서 물어 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산에 정말 갔었냐고? 그래, 우리는 산에 갔다 왔다. 우리가 다녀 온 곳은 선계(仙界)였으며 그 날 하루 우리는 신선이었다. 우리는 또 갈 것이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별장집 02-384-0522 ---------------------------------- 대한매일 DB팀장 2000.09.20 --------------------------------- http://columnist.org 서울칼럼니스트모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