튼튼한 가정 튼튼한 사회

며칠 전 한 지방 도시에 갔다가, 법원 부근 대서소 간판에 「이혼 상담 전문」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았다. 크지도 않은 이 도시에 이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기에 작은 대서소 간판에 그런 문구가 들어가 있는지 고개가 갸우뚱거려졌다. 미국 같은 데서야 부부 열 쌍 가운데 다섯 쌍이 이혼한다. 어떤 주에는 이혼국이라는 관청까지 있다. 우리나라도 이혼 건수가 부쩍 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앞으로 미국처럼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발렌타인데이가 가까워오면, 미국 슈퍼마켓에서는 「아빠와 그 부인께」 또는 「엄마와 그 남편께」라고 적힌 카드를 볼 수 있다. 이혼하고 나가 새 배우자와 살고 있는 아빠나 엄마에게 보내는 카드다. 이런 카드를 어린아이가 사고 있는 것을 보면 퍽 안쓰럽다. 미국에서 학부모를 초대하는 학교 행사에 가보면 양친이 다 오는 학생이 절반에 못 미친다. 편부나 편모 슬하의 아이들이 많은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여자들의 이혼 요구가 두드러지게 늘고 있다. 예전과 달라, 이혼한 뒤에도 자립해서 살 수 있는 경제력 때문인 듯하다. 불행한 결합을 지속하는 것보다 헤어지는 편이 나은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말하더라도 이혼은 당사자들의 불행이며 자식에게는 더 큰 불행이다. 그래도 이혼은 는다. 가정의 견고성이 전만 못하다.

전 시대에 견준다면 현대 가정은 가족이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적다. 이혼이 늘어나는 것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농경사회에서는 부부가 함께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부모와 자식이 함께 일하는 시간도 많았다. 일하는 법을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쳤다. 부모는 자식의 교사였다. 부모의 지식과 경험은 항상 자식보다 윗길이었다. 요즘은 그렇지가 못하다. 부모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공통 관심 영역도 좁아졌다. 대화가 부족하고 애정이 엷어지기 쉽다.

기성의 도덕 관념에 변화가 오면서 결혼과 가정을 가벼이 보는 풍조가 생겨났는데 그 폐해가 적지 않다. 결손 가정으로 인한 비행 청소년의 증가가 그것이다. 청소년의 마약 중독과 범죄 행위가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 있는 나라들이 많다. 가정은 사회 질서와 안정성을 받치는 초석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사회와 국가는 지탱할 수 없다.

가정은 인류가 오래 유지해온 사회제도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더라도 가정이라는 최소단위의 사회가 없어질 수는 없을 것이다. 가정은 단순히 종족을 유지시키는 구실뿐만 아니라 신뢰와 애정과 책임을 가르치고 배우는 인성 교육기관의 구실을 한다. 이를 완벽하게 대체할 교육기관은 없다. 가정이 없게 된 아이에게는 가정과 가장 비슷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정의 위기, 가족제도의 해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고, 사회가 더욱 더 각박해진다고 걱정하는 이도 많지만, 꼭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수만은 없다. 확실히 요즘 젊은이들은 선배들보다 더 가정을 챙긴다. 직장 일을 위해서는 늦은 귀가와 휴일 근무를 당연하게 알던 선배들과 다르다. 기술 발전에 따라 노동 시간이 줄어들면 가족이 함께 지낼 시간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건강한 사회는 건강한 가정이라는 바탕 위에서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나라마다 건강한 가정을 위한 정책을 펴고 있다. 당연히 우리나라도 가정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 갖춰져 있기는 하나, 실제적이고 세세한 배려는 아직 부족하다. 행정당국자의 태만과 부정 때문에 어린 자식을 잃고 실의에 빠져 훈장도 반납하고 딴 나라로 이주한 부모를 우리는 보았다. 이 가족의 슬픔은 누가 대신할 수 있단 말인가.

5월은 가정의 달. 가정의 소중함을 되새겨 보자고 만든 것이다. 국민 모두 그러해야 하고 나라일 맡은 이들은 더욱 그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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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강문
칼럼니스트 / 대한매일 데이터베이스팀장
새마을운동 200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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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olumnist.org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