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헤매는 이메일

"오빠, 왜 답장 안해? 내가 싫어졌어?"로 시작되는 이메일을 받고 어리둥절했다. 누이동생이 여럿이지만 이렇게 반말로 내게 편지를 쓸 누이도 없고, 중년이 넘은 그 애들이 싫으니 좋으니 말할 턱도 없는데 말이다. 수신인을 보니 잘못 배달된 것이었다.

더 읽어 가니, 연인에게 향하는 뜨거운 마음을 절절이 담고 있었다. 애타게 남자에게 호소하는 편지는 그 뒤로도 서너번이나 내게 잘못 배달돼 왔고 그때마다 되돌려 보내졌다. 은밀하게 전해야 할 속마음을 엉뚱한 사람에게 털어놓은 그 발신인은 얼마나 황당했을까.

이메일은 편리하지만 언제나 정확하게 배달된다고 믿어서는 곤란하다. 가끔 내게 잘못 배달된 편지를 볼 때마다 내 편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 에게 잘못 가는 수가 있겠지 하고 불안해진다. 내가 보낸 것이 '보낸 편지함'에 분명히 들어가 있는데도 편지를 받았어야 할 쪽에서 받지 못했다고 하면 그 편지는 어딘가 엉뚱한 곳에 가 버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지난 번 지방자치체장 선거 무렵에도, 잘못 찾아온 이메일을 받았다. 누구라고 이름만 대면 전국민이 다 알 만한 분이 후보로 나섰는데, 그 부인이 쓴 편지였다. 복수로 돼 있는 수신인은 편지 내용으로 보아 발신인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인 듯했다.

남편과 맺어지게 된 사연과 그의 자상하고 다정한 성품에 자신이 얼마나 감동했는지 하도 정감있게 적고 있어서, 내가 그 지역 유권자라면 남편에게 한 표 찍어 주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런 전자편지가 경쟁상대 진영 사람에게 잘못 갔을 때 어떤 반격을 받았을지 알 수 없다.

이메일이 엉뚱한 곳으로 배달되는 것은 프로그램이나 서버에 이상이 생겨서라고 하지만, 잘못 가는 편지는 아예 가지 않는 편지만 못하다. 중요하거니 비밀유지가 필요한 내용을 보낼 때는 만일의 경우를 생각 해야 한다. 무료 이메일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하는데, 내가 겪은 경우를 보면 유료 서비스에서도 배달 사고가 있었다.

이메일은 가끔 제 갈 곳으로 가지 못한다. 이메일 배달 착오로 말미암은 손해에 대한 배상 문제가 대두되면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
박강문(朴康文)

대한매일 DB팀장

벼룩시장 2000.09.14
---------------------------------

http://columnist.org 서울칼럼니스트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