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바닥 하나 사이의 간접통화 

                                박강문 (서울신문 과학정보부장)  

 내가 촛대와 등잔과 난로를 좋아하는 것은 밝고 따뜻한 것에 대한 동
경 때문인 것 같다. 언젠가 이것들을 쓰면서 조용한  곳에서 살리라는 
꿈도 있었다. 헨리 데이빗 소로가 월든 호숫가에 손수 지었다는 오두막
(실은 훨씬 뒤에 복원한 것)을 눈 덮인 겨울날 찾아갔을 때, 그 안에 
놓인 작은 난로는 얼마나 따뜻한 정감을 주었던가. 비교적 새롭게 시작
된 내  수집 취미는 오래 가지 못했다. 수집가가 되려면 돈과 시간, 수
집품을  둘 만한 공간이 필요한 것인데, 이 모두가 내 사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소로처럼 은거하리라는 꿈도 내게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화려한  
몽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소로가 살던 미국 땅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땅은 너무 비싸고, 소로에게 소박한 전원생활이 우리에게는 
사치에 가깝다.내 꿈은 촛대 몇 개와 석유등 하나, 난로 두 개로 대충 
끝났다.

 난로 하나는 파리 특파원으로 있을 때 사마리텐 백화점에서 할인가격
으로 산, 앙증맞게 작은 '고댕'  주물 난로다. 또 하나는 난로에 대한 
내 관심을 알고 사진작가 김성태씨가 센 강가의 아틀리에서 쓰던 것을 
귀국할 무렵에 선물로 준 것이다. 이것은 겉이 갈색 도기로 덮여 있어
서 흔히 보던 난로하고는 다른 꼴이다. 두 난로는 기약없는 날을 기다
리며 아파트 베란다에서 잠자고 있다.   

 저번 일요일 날씨도 서늘하기에 아파트 베란다에서 새 난로를  한 번 
피워 보았다. 서울 아파트 살이에 웬 난로냐고 의아해 하겠지만, 강남 
아닌 정릉의 아파트에서 살 때는 다른 이웃들이  그렇듯이 연탄난로를 
거실에 놓고 겨울을 났다.그러나 여기 강남에서는  아파트에서 난로를 
피우는 일은 없다. 다들 난방이 완벽하기 때문이겠지만, 내가 사는 아
파트는 지은 지 20년이 넘은 낡은 아파트라 겨울 난방이 신통치 않다.
그래도 강남의 분위기는 난로를 피울 만하지 않다.이 분위기를 기스른 
반란은 짤막하게 막을 내렸다.

 창밖으로 연통을 뽑고 신문지 몇  장을 구겨서 태웠더니, 금방  난로 
부근이 훈훈해졌다. 난로 앞면의 내화 유리창 너머로 제법 너울거리는 
불꽃이 따뜻하게 보였다. 그러나 이 노변의 평화가 오래 즐길 일은 아
니라는 것을, 창밖의 연기를 보며 곧 깨달았다. 신문지 몆  장을 태우
는데도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것이었다. 내 집은 아파트의  맨 위층도 
아니고 2층이어서 3,4,5층이 위에 있다. 이 연기 올라가는  것이 위층
들의 창밖으로 보일 것이다. 공기  구멍을 서둘러 꽉 닫고  불을 껐을 
무렵, 아니나 다를까 전화 벨이 울렸다.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온 전
화였다. 바로 우리집 위의 3층 사는 분이 항의하는 전화가  왔다는 것
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한번 시험 삼아 피워 본 것이고  다시는 피
우지 않을 것이라고 관리소 직원에게 말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런 경우에 시골에서라면  내 집으로  바로 찾아와 
웬 일이냐고 물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이웃을 들어오게 하여 난
로도 구경하게 하고,아껴 마시는 솔잎술도  한 잔 권했을 것이다.  이 
술은, 내가 17년전 허리가 아플 때, 죽마고우가 솔잎술이 좋다면서 산
에 가서 따온 깨끗한 솔잎을  진로 소주에 넣은 것이다.  도시도 지방 
도시는 옛날 인심이 남아  있어서 아파트라도 이웃끼리 왕래가  있다. 
재작년 아버지가 거기서 돌아가셨을 때, 아파트의 젊은 주부들이 소매
를 걷고 집안일처럼 나서 주었다.  

 여기는 서울이다. 더구나 전화라는 편리한 물건은 얼굴 마주 보고 말
해야 하는 데 따르는 부담이나 불편함을 덜어 준다. 그렇긴 해도,  방
바닥 하나를 격해서 사는 이웃이 전화로 관리사무소에  신고하고 관리
사무소는 그것을 그 집의 방바닥 하나 밑에 있는 집에  전화로 전달한
다는 것은 삭막한 풍경이다. 하긴 나도 시골에서라면 이웃들을 여러번 
초대해서 식사를 함께 했을 것이지만,  이사 막 오고 나서  시루떡 한 
접시씩 돌린 뒤에 반응이 시들해서  친해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지  않
다.

  5층짜리 아파트라 열 가구의 사람들이 한 출입구를 쓴다. 아침에 집
을 나설 때나 저녁에 집을 들어설 때 가끔 이웃 젊은이들과 마주친다.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이  젊은이들은 내게 인사하지  않는
다. 우리 아이도 아마 이웃  어른께 인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 
대학생 아이는 밤늦게나 새벽까지 컴퓨터 채팅하는 일이 많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국내 친구 뿐만 아니라 얼굴 모르는 외국  친구와도 영어
로 여러 시간 필담한다. 우리 아이는 이웃 아이들을 모르고 그들은 우
리 아이를 모른다.이웃 아이들도 밤새워 컴퓨터 채팅을  할 것이다.그
러면서도 한 지붕 아래의 비슷한 또래끼리는 대화가 없다.

 우리 회사에서 '텔섹 5678'이라는  전화 사서함 서비스를  한다. 거기 
내 회원번호에 잠금장치를 하지 않고 있으니까 날마다  수십명의 메시
지가 들어와 쌓이는데, 9할9푼이 젊은이들 것이다. 20대나  10대의 남
녀 젊은이들이 너나없이 친구를  사귀고 싶어한다. 대개 이성  친구를 
원하지만 다 그렇지는 않다. 그 나이 때는 친구가 많을 텐데, 왜 그리 
외로운 젊은이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가까운 데서 친구를 찾지  않고 
먼 데서 친구를 찾으려 한다. 이웃을 잃어가는 세태 때문이 아닌가 생
각된다. 

 통신 방법의 발달은 거리 개념을 엷게 한다. 발달된 최신의  통신 방
법에 잘 적응하는 것은 젊은이들이다. 그런데 거기 적응하다보면 그렇
지 않아도 사라져만 가는 '이웃'을 더욱 모르게 될 것 같다.점점 얼굴
과 얼굴을 맞대는 것을 짐스레  여기고 매개체를 이용한 의사  소통에 
매달리는 것은 그리 좋은 현상이 아니다. 다들 우렁처럼 껍질 속에 들
어가서 전화선이나 안테나 하나만 삐죽 내밀고 있는 모습,  미래 인류
가 이렇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이버 대학'이니 해서 교육마저도 온라
인으로 수행되려 하고 있는 세상이지만,  이럴수록 '스승의 침이 튀고 
기침 소리가 들리는' 직근거리에서  가르침을 받는 인격교육의 중요성
은 크다.  

  아버지 어머니들이 누리던 이웃과의 따뜻한 교류가 내 대에 와서 사
라지고 있다. 우리 다음 세대는 더욱 황량한 시대를 살아갈 것이니 딱
하다. 나는 역사의 시계추 운동을 믿어 보려 한다. 너무  한쪽으로 쏠
리면 다시 반대쪽으로 간다. 어느 때쯤 가면 이웃 찾기 풍조가 살아날
지도 모른다. 등불이나 난로처럼 따뜻한 세상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
아지면 말이다. 
          
   진로 사보 'CCI' 1996.10
  
칼럼니스트
정보화 사회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