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사용자 번호’

  컴퓨터 통신망이나 인터넷 접속 서비스 또는 전자우편
서비스에 가입하면 이른바 '아이디’라는 것을 써야 한다.
그런데, 이 '아이디’라는 것을 정할 때는 신중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한번 정하면 바꿔 주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입 해지하고 재가입하면서 바꿀 수밖에 없다.

  97년 9월초 하이텔이 며칠동안 기존 가입자 (사용자)의
 '아이디’를 희망에 따라 바꿔 준 일이 있기는 하지만,
이런 일은 아주 드문 것이다. 하이텔이 이 일을 한 것은 
가입자 가운데 바꾸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아주 많았기 때문
이다. 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마음에 맞지 않는 것을 쓰다가 
드디어 뜻을 이루고 기뻐들 했다. 한시적인 이 조치를 놓치고 
안타까워하는 가입자들이 아직도 많다.

 ‘아이디’변경기간에 바꾼 것들 가운데는 숫자로 돼 있던 것이
 많았다.무미건조한 숫자 '아이디’를 가진 사람이 많은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지금은 흔히 '아이디’라고 하지만, 처음
에는 '사용자 번호’라고 했다. 컴퓨터 통신 초보자들이 가입
할 때 사용자 번호’를 쓰라고 하니까, '번호’라는 말에 사로
잡혀 꼭 숫자로 해야 하는 줄 알고는 670225처럼 생년월일을 
쓰거나, 아니면 집 전화번호, 대학 학번 따위 등을 쓰기도 했던
 것이다.

 초기 통신 프로그램들은 미국에서 만든 것들이다. 접속하면,
가입자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User ID와 Password를 묻는다.
국내 컴퓨터 통신 초창기에 이 말들을 우리말로 바꾸면서 
각각‘사용자 번호’'비밀 번호’라고 했다. 잘못의 출발점은 
여기였다.‘사용자 번호’라고 하지 말고 ‘사용자 딴이름’이나
'통신 이름’으로 했더라면,무미건조한 숫자의 나열로 자기 이름
을 정한 사람이 그렇듯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밀 번호'라는 것도 그렇다.‘암호’라고 했으면, 꼭 숫자가 
아니라도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숫자만의 조합은 
풀기가 쉽다. 이를테면,우리나라 현금인출카드의 비밀번호는 네 
단위 숫자로 돼 있는데, 그래봐야 0000에서 9999까지 1만개의 
조합밖에 없다. 세자리 숫자로 하면 1천개다. 나는 007가방의 
비밀 번호를 잊어 버렸을 때 000부터 999까지 짚어 나가다가 별로
 시간 걸리지 않고 가방을 연 일이 있다.

 숫자는 아홉가지 기호로 돼 있고 알파벳은 26개(대문자 소문자 
구별하면 52개)의 기호로 돼 있다.숫자와 알파벳을 섞으면 조합의
 종류는 엄청나게 늘어나 풀기가 어려워진다.

  최초의 번역자가 ‘사용자 번호’'비밀 번호’라고 한 것은 사실 
전혀 엉뚱한 잘못은 아니었다. 컴퓨터라는 물건은 본디 바로 숫자를 
다루는 물건이기 때문이다. 글이나 그림이나 소리까지도 컴퓨터는 
숫자로 처리한다. 게다가, 입력하는 모든 자료를 일일이 숫자로만 
해야 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므로 컴퓨터 하면 곧 숫자였다.

  User ID란 말이 쓰이기 전에는 같은 쓰임새로 Account number
라는 말이 쓰였다는 사실도 왜 ‘번호’란 말이 나왔는가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내가 82년 미국의 한 대학에서 컴퓨터 과목을 
들을 때 그 과목 듣는 학생에게마다 ‘어카운트 넘버’를 주었다. 
물론 숫자로 된 것이었다. 대용량 컴퓨터의 메모리를 잘게 쪼개 
숫자를 붙여 나눠 준 것이다. 그 번호는 말 그대로 예금통장 번호와 
비슷한 것이었다. 오늘날도 '계정'과 '계정 사용자'란 말이 컴퓨터
 통신쪽에서 쓰인다.

 또 하나 생각나는 것은 국내 컴퓨터 초창기에 가입자에게 
서비스회사측에서 일방적으로 ‘사용자 번호’를 정해 주었다는
것이다.한 회사는 컴퓨터 통신 서비스를 시작하고 몇 년 동안은 
가입자에게 거주시도 약호 알파벳 한두 글자에 가입순 숫자 네 
개인가를 붙이는 방식으로 이름을 만들어 주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사용자 번호’요 더 정확히 말하면 '사용자 관리 번호’인 셈이었다.

 외국의 사정을 아는,깬 가입자들이 시정하라고 아우성이었지만,
회사측은 ‘관리상의 문제’(가입자를 자기네들이 관리하는 데 
편리하다나)를 들어 거부했다. 가입자가 돈내면서 서비스를 받기
보다는 서비스회사측에 편리하게 관리당해 주어야 하는
시대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이런 어긋남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다.        
박강문 <서울신문 과학정보부장>
뉴스피플 199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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