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웨어, 셰어웨워, 그리고 양심


미국에 있는 동안 미국 것은 최대한 공짜로 쓰겠다고 작심했기 때문에,공 짜 전자게시판에서 공짜 소프트웨어인 프리웨어는 있는 대로 내려받아 써 보았다.공짜가 아닌 셰어웨어까지도 마음대로 쓰면서 양심의 가책이 없었 다.미국에 돈 벌어 주는 일을 한국인이 얼마나 많이 하고 있는데,무역 역조 심하다던데,조금이라도 미국에 돈을 덜 보태야지.이런 알량한 애국심으로 내 꺼먼 양심을 감추었다.

그때 내가 가입해 주로 사용하던 전자게시판은 보스턴의 `아거스',그 부 근 도시 케임브리지에 있는 매서추세츠공과대학교의 경영대학원 학생들이 운영하는 `라이브와이어',이렇게 두 군데였는데 물론 다 공짜였다.그밖에 공짜로 드나드는 곳은 몇몇 군데가 더 있지만,접속이 잘 되고 내용이 풍부 하기로는 위의 두 군데를 따르지 못하였다.

프리웨어란, 말 그대로 공짜 소프트웨어다.컴퓨터 하는 이 가운데는 자신 이 공들여 만든 프로그램을 다른 이들이 마음대로 쓰도록 내놓는 이타주의 자들이 많다.자신이 뭔가를 이루었다는 성취감과 남을 위해 뭔가를 하고 있 다는 봉사 정신으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셰어웨어는 얼마든지 복사해도 되고 얼마든지 남에게 나눠 줘도 된다는 점이 프리웨어와 비슷하지만,본질적으로 공짜는 아니다.충분히 써 보고 마 음에 들면 돈을 내라는 것이다.마음에 들어 계속 쓰겠다는 생각이 들면 개 발자나 판매를 위탁 받은 이에게 돈을 보내 사용자로 정식 등록하는 것이 도리다.

셰어웨어를 실행하면,미등록 사용자의 양심에 호소하는 다음과 같은 글귀 가 나오는 수가 많다.`당신은 이 프로그램을 00번째 시험사용하고 계십니 다.정식으로 등록하시면 이 문구가 없는 프로그램을 받으시게 됩니다'

이런 글귀를 볼 때마다 사실은 양심이 찔린다.못 본 체 하고 계속 쓴다. 어떤 것은 100번도 더 쓰고 있다.이렇게 사용 횟수가 많아지면 양심이 더욱 찔린다.혹시라도 누군가가 내 컴퓨터를 켜 보고 욕하지나 않을까 걱정도 된 다.그러면 압축을 다시 풀어 사용 횟수 누적이 0부터 다시 시작되도록 한 다.양심이 꺼먼 짓거리다.

80286,도스,2400bps 시절이라 긴 프로그램을 내려받으려면 한시간도 걸리 고 두 시간도 걸린다.긴 프로그램 몇 개 끌어오다 밤을 하얗게 새우는 날도 있다.전화요금이 무지무지하게 올라간다.이런 날은 누가 우리 집에 전화해 도 내내 통화중이다.

이러면서 다행히 그동안 한번도 내 컴퓨터는 바이러스에 오염되지 않았으 나,정작 나는 불행히도 귀국 3개월 정도를 앞두고 진짜 바이러스에 걸려 열 병으로 죽을 고생을 했다.하버드대학교 병원에 입원하기도 하고 태권도 사 범 출신 교포 이보인씨한테서 침도 맞고 국내 한의대 교수인 정규만 박사의 처방전을 팩스로 받아 차이나타운에서 한약을 지어 먹으면서 이름모를 바이 러스와 싸웠다.

이 병을 앓으면서,나는 미국에서 누린 공짜 이상의 돈을 써 버리고,그동 안 누린 기쁨의 몇 갑절 되는 고통을 맛보았다.의사는 미국이나 캐나다 동 부에 있는 어떤 바이러스에 방어능력이 없어 걸린 것 같다고 하고,아내는 잠을 제대로 자지 않고 컴퓨터에 매달려 과로로 생긴 병이라고도 했지만,나 자신은 공짜 좋아하기에 대한 벌책이라고 생각했다.남에게서 빼앗거나,남에 게 줄 것 주지 않고 돈 모은 자들을 보라.그들은 돈으로 얻는 즐거움 이상 의 고통을 겪는 경우가 많다.

공짜인 프리웨어를 쓸 때에도 고맙다는 뜻을 제작자에게 보내는 것이 도 리라고 생각된다.몇줄 적어 보낸 찬사와 격려의 말,조언에 그 제작자는 기 뻐할 것이고,더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힘쓸 것이다.

내가 돈을 보낸 셰어웨어는 대전의 지란지교가 만든 국내 윈도용 통신 프 로그램 `잠들지 않는 시간'이다.지금은 윈도용 통신 프로그램이 여러 개 나 와 있지만,지난해 내가 구입할 때는 이 프로그램이 값도 싸고 성능도 쓸 만 했다.게임 중에서 나는 변종 `테트리스'들을 좋아하는데,프랑스 게임 회사 가 만든,가로 움직이는 `테트리스' 게임의 정식판을 살까 지금 생각중이다. 아이디어가 산뜻한 변종이다.

셰어웨어는,개발자 쪽에서 볼 때,광고비 안 들이고 널리 알릴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매력이다.그래서 큰 소프트웨어 업체들도 제품을 종종 셰어웨 어 형태로 내놓는다.셰어웨어에는,써 보았으면 정식 등록하라고 양심을 자 극하는 글귀를 넣지만,양심이 꺼먼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좀더 단호한 조치를 해 놓기도 한다.일정한 날짜가 지나면 실행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이것도 시꺼먼 양심에는 그리 효력이 없다.실행하기 전에 날짜를 바 꾸면 되니까.

그러나 꺼먼 양심을 내내 유지하려면 귀찮은 점이 있다.나처럼 순화과정 을 거치면서 제대로 지불하려고 마음먹게 되는 경우도 있다.이 점을 셰어웨 어 내놓는 이들이 기대하는 지도 모른다.셰어웨어가 많이 나오는 것은 그래 도 세상에 양심이 남아 있다는 믿음 때문이고 또 실제로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박강문 <서울신문 과학정보부장> 뉴스피플 199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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