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악.사.어.서.수

 


  선비는 모름지기 육예(六藝)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육예는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 요즘에야 신분이나 직업에 귀천이 
없으니까 '선비'란 말은 '교양인'이란 말로 바꿔도 될 것이다. 
현대의 교양인이 갖춰야 할 육예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예.몸가짐  마음가짐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예다.예전에도 
선비의 제1덕목으로 꼽은 것이 이것인데,현대에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해외에 나가 나라 먹칠을 하고,가난한 중국  동포를 
등치는,사람답지 않은 사람이 많아지고,어른 알기를 우습게 아는 
젊은이들이 늘어,동방예의지국이 동방무례지국이 되고 있다는 
한탄이 나오고 있다.다른 민족을 깎아 내리기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동이에만은 후한 점수를 주었던 것은,그들이 부러워하고 본받고 
싶어한 예도(禮度) 때문이었다. 

  악.선비라면  풍류를 알아야 한다니,음치라면 선비 되기는 
틀렸다.공자는 근엄한 어른인 줄로만 알기 쉽지만, 노래집 '시경'을 
엮은 분이다.우리 조상들은 세계가 알아주는 풍류객이었다.중국 옛 
역사책에도 가무를 즐기는 민족으로 돼 있다. 우리 기록으로도,
신라 서울 경주는 노래방이 없던 시절이건만,거리에 노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음악 방면의 탁월한 전통은 현대에도 양양하게 흐르고 있다.우리는 
국내적으로 노래방과 단란주점의 보급에 힘입어 전국민의 가수화를 
선진적으로 이룩했다.국내 음악대학은 세계에서 가장 입학하기 
어려울 정도로 인기가 높다.대외적으로는,미국 줄리어드 음대 학생의 
절반을 한국인 자제가 차지하게 되었으며,장차 세계 유명 연주자 
대열에 한국인의 이름이 줄줄이 들어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활쏘기.예로부터 우리는 활 잘 쏘기로 유명했다.이 전통은 
오늘날 여자들이 주로 착실히 잇고 있는 듯하다. 총을 현대의 
활이라고 본다면,국방 의무를 완수한 한국 남자들은 이 덕목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정계와 관계에 그렇지 않은 분들이 꽤 있다고
들리기는 한다.활쏘기를 현대에 맞게 해석하려면,`운동'이나 `스포츠'
쯤으로 해야 할 것 같다. 골프 좋아하는 이는 말하되, 현대 교양인의 
사는 '골프'라 한다. '당구'나 '볼링'을  주장하는 이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수영'은 어떤가.평소에 좋은 운동이 되면서,구명대 잘 갖추지 
않고 걸핏하면 침몰하는 배 탈 때 생명을 보전해 줄 수 있다.

  어.말이나  마차를 탈 줄 알아야 한다.현대 교양인이라면, 2종 보통 
자동차 운전면허증 정도는 있어야 되겠다.예전에는 음주 승마에 벌칙이 
없었다.신라 김유신 장군이 천관녀라는 기생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음주 
승마를 했지만,면허증을 박탈 당한 일이 없고,주인이 조종하지 않아도 
깜깜한 밤에 기생집에 잘 데려다 주던 말만 앰하게 주인의 금주 결의 
과시 때문에 칼날에 희생됐다.당나라 이태백도 자주 백주에 대취해 나귀 
등에 위태롭게 얹혀 다녔다고 하는데,그때 교통사정이란 것이 요즘 같지 
않아 탈이 없었던 듯하고,'하마'신호 위반 건이 기록돼 있을 뿐이다. 
오늘날 음주 운전은 살인예비행위다.운전기술  유무보다 안전운전 
자세가 중요하다. 

  서.글을 알아야 한다.우리는 세계에서 문자해득인구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모범국답게 `세종대왕상'이라는 시상제도를  만들어서 문맹퇴치에 
공이 큰 딴 나라 사람들에게 유네스코를 통해 거액의 상금을 주고 있으니,
이 방면은 더 말할 게 없다.다만, 예전의 진서(眞書)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걱정하는 이가 있다.현대의 진서는 영어인데 영어 모르면 사람 
대접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수.셈할 줄 알아야 한다.산술과 천문 지리와 역학이 여기에 속한다.
현대에 적용하자면,컴퓨터 다루기가 되지 않겠나 생각된다.성인도 시속을 
따라야 한다고 했으니, 컴맹이고서야 어찌 현대의 교양인임을 자처할 수 
있으랴. 

  주목할 만한 것은,컴퓨터로 육예 가운데서 예(禮)만 빼놓고 수를 
포함해 다 익힐 수 있다는  것이다.자동차 운전과 비행기 조종 훈련을 
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을 통해 한다[御].컴퓨터는  현대의  붓이니  
글쓰기[書]의 대부분이 이를 통해 이루어진다.음악[樂]의 작곡과 연주,
감상도 점차 컴퓨터의 영역이 되고 있다.컴퓨터 게임의 대부분은 
쏘고[射] 때리는 것이다.

  그래도,옛날이나  이제나 가장 중요한 것이 예라는 것은 불변이다.
사람탈 쓰고 짐승짓 하는 사람이 없어져야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박강문<서울신문 과학정보부장>   
  서울신문 발행 시사주간지 뉴스피플(1996.12.5)

칼럼니스트
정보화 사회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