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기쁨'과 '희망가' 

마르티니가 작곡한 이 곡의 가사는 '사랑의 기쁨은...'으로 시작하기는 해도,배반당한
사랑을 괴로워하는 내용이어서,곡명을 제대로 붙이자면 `사랑의 아픔'쯤으로 해야 맞
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프랑스말 또는 이탈리아말로 흔히 불리는데,곡이 아름다워서 클라식가수
대중가수 가릴 것 없이 많은 가수들이 불렀다.그 가운데서 그리스의 나나 무스쿠리가
불어로 부른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랑의 기쁨은 잠깐일 뿐,사랑의 쓰라림은 오래 간다면서 남자는 떠나간 여인 '실비
'(실비아)를 원망한다.우리 가요 '무너진 사랑탑'의 가사하고 기본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가사의 우리말 번역도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
았네>로 시작하건만,이 노래를 결혼식을 축하하는 뜻으로 태연히 부르고들 있다.누군
가가 남의 결혼식장에 가서 남인수의 `무너진 사랑탑'을 부른다면 어떻게 될까.

'사랑의 기쁨'이 결혼 축가가 된 것은 가사 내용이 아니라 순전히 곡명에 사로잡힌
결과다.가사 첫머리를 곡명으로 삼은 노래들은 적지 않다.교회 찬송가는 대개 가사 첫
부분을 따서 곡명으로 삼는다.또 제대로 곡명을 모를 때엔 가사 첫 부분이 곡명을 대
신하기도 한다. '짝사랑'하면 어떤 노래인지 몰라도 '으악새'하면 '아하!'하고 생각날
수도 있다.

'사랑의 기쁨'은 곡명이 가사 전체 내용을 배반한 경우다.이 노래를 축가로 쓰는 것
은,정보 분류의 오류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고,이름과 실질이 다름을 헤아리지 않은
탓이다.이름과 실질의 관계는,언어학의 한 분야로 연구될 만큼 복잡미묘한 것이기는
하다.이 관계를 왜곡하거나 허위로 포장하는 일도 많다.민주와 정의의 깃발은 때로 반
민주행위와 부정부패의 겉껍질일 수도 있다.

신랑 신부에게 사랑을 배반하지 말도록 교훈을 주기 위해 '사랑의 기쁨'을 불러 주
는 것이라고 말한다면 한 차원 높은 역설이 되기는 하겠다.

역설적으로 곡명을 붙였다고 생각되는 노래에 작사 작곡자를 알 수 없는 '희망가'라
는 것이 있다.<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너의 희망이 무엇이냐>로 시작해 <세상 만사
가 춘몽중에 또다시 꿈이로다>로 끝난다.가사대로라면 '절망가'나 '낙망가'다.

밤이 깊으면 새벽이 멀지 않듯이,절망의 나날이 지나고 나면 희망의 날이 온다는
뜻으로 붙인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데,그게 아니라면 평범한 실수의 또 한 예가 될 수
밖에 없겠다.

희망가'가 유행하던 때를 돌이켜 보면 암울한 시절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이 노래
를 생각할 때마다 기억의 우물에서 함께 길어올려지는 사건이 있다.

군인들이 일으킨 두 번째 정변 뒤 서울의 일간신문 기자들은 김일주라는 이가 운영
하는 안양연수원에 입소하여 사흘동안 학습해야 했다.이 교육기간중에 동아방송과 동
양방송,신아일보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 들렸다.학습시간마다 시작은 연수원 교재의
하나인 노래책에 실려 있는 '건전가요' 한두 곡을 부르는 것으로 돼 있었는데,일부 언
론사가 없어졌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부터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희망가'를 불렀다.

'희망가'가 이 노래집에 들어간 것도 곡명 때문이다.연수원 사람들이 노래집에서 이
노래를 뺐다는 이야기를 뒤에 들었다.정보 가운데는 이름과 실질이 달라 낭패일 때가
있다. 연수원 사람들이 경험한 것도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