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추억의 컴퓨터들 


   아니,15년 전에 나온 TI99/4A 컴퓨터를 아직도 쓰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 정기적으로
 모이기도 한다니...정말 놀랄 일이었다.   

   8월초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의 워싱턴대학교에 갔다가,구내서점에 놓인 무료 컴퓨터 
 신문을  하나 집어다 읽어보니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다. `퓨짓 사운드 컴퓨터 사용자
들'이라는 이 신문은 발행일자가 1996년 여름으로 돼 있으니 계간이거나 부정기간일 듯. 
 퓨짓 사운드는 시애틀과 부근 지역이다. 이 신문의 알림난을 보면,애플 사용자 단체가 
 아직도 많을 뿐만 아니라 TI99/4A,아타리, 코모도어,탠디,탠덤,그리고 램 5KB인 손바닥 
 만한 컴퓨터 타이멕스 싱클레어까지도 유저  그룹이 살아 있다. 

    보스턴컴퓨터회(BCS)가 해마다 난장을 여는데,1990년에 가 보았다. 거기에 소수파 
 사용자 단체들이 한켠에 당당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았지만, 이제쯤은  다 사라졌
으리라고 생각했는데,희귀 집단들이 아직도 버티고 있는 것이다. 

    각양각색 컴퓨터 사용자 단체들의 모임 통지들.여성전산인 모임도 있고 회계사,출판
인, 산부인과의사 등 전문분야별 컴퓨터 모임이 활발한 것 같았다.이보다 더 내 눈길을 
 끈 것은 물론 옛날의 컴퓨터들을 아직도 쓰고 있는 이들의 모임이다. 

   타이멕스 싱클레어 사용자 그룹은 매월 첫 목요일에 모인다. TI99/4A및 주네브(이것도 
 텍사스 인스투르먼트사 제품임) 쪽은 네 그룹이나 있는데 한 패는 격주로 모이고,
 나머지는 한달에 한 번 모인다. 옛 컴퓨터들을 쓰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는 
 미국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나라가 넓어 별난 사람도  많은가. 

   TI99/4A는 내가 처음으로 80년대초에 지녔던 추억의 컴퓨터다.이 기계 사용자 그룹 
 가운데 하나는 전자게시판까지 운용하고 있다. 이 여름 무더운 밤 서울에서 시애틀로 
 한번 연결해 볼까 하고, 요즘 인기있는 윈도용 국산 통신 에뮬레이터 `잠들지 않는 시
간'을 써서 전화를 걸었다. 

   곧 접속이 됐다. 성명,주소,전화번호,사용기계 등을 쳐서 넣으라 해서 그리했더니 
 "어떻게 알았느뇨" 물은 뒤 바로 회원번호를 주었다. 회원수는 내가 끼어들어 꼭 40명
이 되었다. 작은 단체라 그런지 모두 실명을 쓴다. 이 전자게시판의 이름은 `퓨짓 
 사운드 TI 외톨이들'이다. 나온 지가 오래 되어 거의 사라지다시피한 컴퓨터들을 
`외톨이가 된' 컴퓨터라고 부르고 이 컴퓨터들의 애호가들은 `외톨이'로 자칭하고 있다. 

   서부인 워싱턴주의 퓨짓 사운드 지역에 있는 이 전자게시판을 움직이는 운영자
(시솝)는 이상하게도 중서부인 위스컨신주 밀워키에 살고 있다. 그렇게 충분히 할 수도 
있겠다. 컴퓨터 통신은 바로 공간의 장애를 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운영자 팀 테시는 
독특한 컴퓨터광으로서 특히`외톨이가 된 컴퓨터'를 위한 통신망 운영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시애틀의 것도 그가 만든 소프트웨어로 돌아가고 있다. 이용자들이 편하도록 
 세심하게 신경써서 만든 것인데 값은 35달러. 작은 동호인집단의 컴퓨터 통신망 
 구축이나 개인 전자게시판 개설에 안성맞춤일 듯 싶다. 

    밀워키 하면 떠오르는 숫자가 있다.역시 팀 테시의 전화번호 지역코드는 
 414였다. 그 유명한 `밀워키 414 그룹' 사건. 80년대초 미국 정부와 국민이 
 대경실색한 해킹 사건이다. 밀워키의 컴퓨터광 고교생 개구장이들이 미국 국방부등 
 민감한 기밀 정보를 가진 기관들의 컴퓨터 속을 동네 야구장처럼 들락거린 것이 
 밝혀진 것이다.지역번호 414가 단서가 되어 꼬리를 잡혔다. 사상 최대의 해킹 사건에 
 긴장했던 당국은 범인들이 어린 학생들임을 알고는 크게 놀랐다. 

    팀 테시는 미국내에서 TI/주네브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22개 전자게시판 목록도 
 실었다.이밖에도 IBM 컴퓨터를 서버로 하지만 TI/주네브를 위한 전자계시판이 15개가 
 더 있다. 

    이번 `외톨이'게시판에 들어가서 주운 유머 한토막-. 빌과 힐러리가 아칸소의 
 친척과 친구들을 만나러 다니다가 한 시골 주유소에 들렀다. 빌이 차에 연료를 넣는 
 동안 힐러리는 뒷간에 갔다 오다가 어떤 남자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키스까지 했다.
 빌은 기분이 상했다. "누군데 그렇게 다정하게 키스해?" "고 등학교 때 친구야. 
 결혼까지 할 뻔한 사이였지" "이봐,당신은 대통령과 살고 있잖아" " 흥,나야 이래도 
 저래도 대통령 부인이 됐을 거지만, 당신은 오늘처럼 주유소에서 기름이나 넣고 있는 
 신세가 됐을 수도 있지" 

박강문 <서울신문 과학정보부장 parkk[a]columnist.com>
서울신문사 발행 시사주간지 뉴스피플(1996.8.22) '정보화사회 칼럼'

칼럼니스트
정보화 사회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