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네티즌
1980년대 후반 국내 컴퓨터 통신 초창기에는 대체로 30대 40대가 활발한 온라인 활동가들이었다. 해가 지나 면서 이 사람들은 40대 50대가 되어 뒷전으로 물러섰다. 그 대신 10대 학생층이 대거 진출해서 채팅이나 토론 광장을 휩쓸게 되었다. 요즘 보면 채팅방에서 30대조차 도 받아 주는 데가 적어 찬밥 신세다.그래서 `30대끼리 이야기하자'고 따로 멍석을 깔기도 한다.그러니 나 같 은 50대는 어디 끼어 볼 데가 없다. 60대 이상 노인들을 위한 마당을 한국PC통신이 하이 텔에 만든 것은 잘 한 일이었다.1992년에 생긴 `원로방' 의 운영은 성공적이었다.연세 많은 분들이 컴퓨터 통신 의 매력에 끌려 새로운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나는 하이텔에 들어가면 회원은 아니지만 꼭 원로방 을 구경하고는 했다. 노년에도 소년처럼 호기심이 가득 한 분들이 거기 있었다.거기서 좋은 글을 많이 읽었다. 풍부한 인생 경험과 세상을 보는 너그러운 마음들에서 훈기를 느꼈다.특히 강태원씨 같은 분의 글은 문필인의 글 못지 않게 훌륭했으며 큰 감명을 주었다.이 분은 원 로방이 배출한 스타 집필가다. 내 하이텔 아이디가 잘리면서 오래 동안 여기 들어가 보지 못했다.요금 납부를 은행계좌 자동이체로 하고 있 었는데 한번은 잔액이 모자라 미납이 되자 서비스가 중 단됐다. 통고를 받고 지로로 송금했는데도 회복되지 않 았다. 처음에는 불쾌하고 야속했으나, 유료로 아이디를 세 개(하이텔,천리안,나우누리)나 유지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 한국PC통신의 칼날같은 처리에 감사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이에 원로방에 큰 변화가 있었던 듯하다. 최근 `복지통신'이라는 잡지를 받아 보니 원로방은 사 단법인 한국복지정보통신협의회로 발전해 있었다. 원로방의 노인들이 정보통신의 이로운 점을 당신들만 즐기지 않고 다른 노인들도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려 고 무진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전부터 알았지만,법인체 로 만들어그 활동을 조직적이고 체계 있게 벌이고 있다 는 것은 엄청난 발전이었다.물론 한국PC통신이 많이 힘 썼을 것이다. 이 협의회는 정보통신의 혜택을 향유하는 것도 노인 복지의 한 가닥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만들어졌다. 1995년 12월 법인 등록을 마치고 회지로서 `복지통신'을 내고 있다. 1996년 11월 창간호가 나오고 1997년 3월호가 제2호로 나왔다. 협의회는 지역 또는 직능별로 17개의 지회를 둘 정도 로 큰 단체가 되었다. 이 노인단체로서 이만한 규모의 것은 드물 것이다.규모도 규모지만 이만큼 활동적인 단 체도 보기 힘들 것이다. 회원들이 컴퓨터 글자판을 두 드려 정보를 찾고 자신의 의견을 발표할 줄 안다. 이런 수준의 단체니까 앞으로 적지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수 도 있다. 국내 컴퓨터 통신의 선구자이고 열성적인 전도자이 던 유경희씨가 원로방의 신설과 그 뒤의 발전에도 힘을 많이 썼다.YKH001이라는 아이디로 천리안에 매일 글을 올리던 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이분이 어느날 만나자 하여 뵈었더니 원로방 봉사회 원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봉사회원은 나이 로는 정회원 자격이 안되지만 원로방에 참여하여 정회 원들이 통신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이나 의문점을 해결 하는 데에 도움이 될 일을 맡아서 한다. 시간적으로 그 럴 만한 여유가 없어 청을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이 분 의 열성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노후를 위해서도 컴퓨터를 지금부터 가까이하라고 말한다.컴퓨터와 함께라면 노후에 무료하 지도 않고 덜 외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컴퓨터 게임을 함께 할 수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라면 손주도 좋아할 것이다. 컴퓨터 글자판을 두드리는 일은 암 다음으로 무서운 치매를 막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머리와 손가 락을 많이 쓰면 뇌의 노화가 더디다고 하는데, 컴퓨터 쓰는 일이야말로 여기 딱 맞는다. 정보 검색이라는 것이 새로운 직업으로 정착되고 있 는데, 정보를 찾는 일에도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 나이 많은 사람이 더 잘할 수도 있다.이 분야는 정년 퇴직한 전문인들의 활동무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박강문 <서울신문 과학정보부장> 시사주간지 뉴스피플(1997.6.19) `정보화사회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