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홈페이지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를 중학생이나 국민학교 학생들도 여는 세상인데,
글 쓰는 신문기자들의 것은 찾아 보기 힘들다. 적지 않은 문인들, 그리고
화가들까지 사이버 공간으로 활동무대를 넓혀 가고 있음을 볼 때, 기자들의
이 방면 천착은 매우 더디다는 생각이 든다. 성격은 달라도 기자 또한
문인이나 화가처럼 '표현하는 것'이 일인 사람들이다.
우선, 기자들은 바쁘다. 그 업무는 대개 긴장 속에서 수행된다. 하루
전투가 끝나면 심신이 고달프니 한 잔 술로 피로를 풀기 일쑤고 귀가는
늦어진다. 다음날에는 또 새 전투에 휘몰린다. 다람쥐 체바퀴 돌 듯 이런
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뭘 좀 돌아보고 정리해 볼 여유를 얻기 어렵다.
마감 시간 가까이 되어 들어오는 원고를 들기만 하면 손을 덜덜 떠는
선배 데스크도 보았 고, 늘 자기 모르는 새에 누군가 딴 신문사 기자가
무슨 기사를 쓰고 있는 것만 같아 한 자리에 차분히 5분을 앉아 있지
못하는 동료 기자도 보았다. 직업병도 이 정도면 중증이다.
이런 생활 속에서 자칫 세상의 큰 흐름을 보지 못하고 새로운 것을
흡수하지 못해 '맨 그 타령'으로 세월을 보내기 쉽다. 변화에 가장
민감하다고 생각되는 기자들이 뜻밖으로 세상 물정에 어두워 어수룩하게
봉을 잡히는 수가 많다.
생활의 양상도 양상이지만 그것의 반복이 음으로 양으로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모처럼 시간적 여유가 생겨도 활용하기란 쉽지 않다. 여가의
활용도 계획과 준비가 필요한데 그 또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터넷 개인홈페이지라는 기막힌 매체가 있는데도 기자들의 활용이
미미한 것은 위와 같은 기자 생활의 속성 때문이지만 앞으로 차차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다. 글 쓰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독자를 늘릴 수 있는
방편으로 이보다 훌륭한 것도 드물다.
한 지방 신문의 서울 주재 기자 최낙상씨의 홈페이지(www.peacenet.co.kr/
~nasachoi)를 보고서 나는 그 신문이 괜찮은 신문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최기자는 국회를 출입하면서 정치와 정치인에 관한 글을 '최낙상
기자의 국회 돋보기'라는 제목으로 홈페이지에 연재해 왔다. 중앙 일간신문
정치부의 어느 기자도 하고 있지 않은 일을 그가 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런데, 28회까지 연재된 최기자의 이 재미있는 개인 칼럼을 더는 보지
못하게 될 것 같다. 그의 소속부가 정치부에서 경제부로, 취재 대상이
국회에서 경제계로 며칠 전 갑자기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회를 팝니다',
사공이 많은 배는 산으로 가지 않고 침몰한다', '선거판에는 진실이 없다'
같은 글을 이제 보지 못할 것이다.
최기자의 홈페이지가 그 소속 신문사 운영 웹사이트에 있는 것을 보고
이 회사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혹시 이 회사가 최기자의 홈페이지를
달가워하지 않아 그의 출입처를 바꾸지는 않았을까.?
홈페이지에 대한 서로의 관심 때문에 나와 만난 최기자의 말은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면서도 "홈페이지 만들고 있는 것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이 없지 않아 부담스럽기는 하다"는 것이었다.
칼럼의 내용이 문제된 일은 없지만 '쓸 데 없는 딴 짓거리'를 하고 있지
않느냐는 시각이 있다는 말이었다.
컴퓨터를 잘 알고 자신이 터득한 컴퓨터 관련 지식을 주위 사람들에게
일러 주기를 좋아하는 후배 기자 하나는 홈페이지를 개설했다가 얼마
전에 임시로 닫았다. "시간에 쫓기는 생활이라 유지하지가 어렵고 또 사실
눈치가 보여 계속해야 할지 생각중"이라고 했다.
기자가 홈페이지를 만들기 어려운 것은 바쁜 생활도 생활이지만 주위의
눈길이 아직 호의적이지 못하다는 데에도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내에 기자가 홈페이지 만드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 인물이 있다면 그는
아마 홈페이지에 한번도 들어가 보지도 않은 사람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
면 권장하지는 못할망정 은연중 사기를 꺾지는 않을 것이다.
최기자의 홈페이지가 있었으므로 그가 소속한 신문사에 호감을 지닐 수
있었다. 또 후배 기자의 홈페이지는 그동안 우리 사의 인상을 좋게 하는
데에 조금이라도 기여한 점이 있었을 것이다. 기자의 홈페이지 개설은
장려해야 한다.
박강문 <서울신문 과학정보부장 http://user.chollian.net/~baggang>
1998.4.16 뉴스피플
정보화 사회 칼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