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화의 빛과 그늘
주민등록증을 잃어버려 새로 만들러 갔더니 동사무소 창구 직원 이 "운전하실 줄 아세요?"하고 물었다.그렇다고 하니까 주민등록 증 뒷면 특기란에 98500이라고 써넣었다.전쟁이 일어나서 소집된다 면 자동차 운전을 맡아야 할지도 모른다고 그 직원이 일러 주었다. 이때가 1984년,자가용 승용차가 활발하게 보급되기 시작하던 때였 다.13년이 지난 지금,운전을 특기라고 여기는 사람은 없을 만큼,자 동차 운전의 대중화가 이루어졌다.이 10년 남짓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큰 변 화를 경험했다. 컴퓨터라는 물건의 대중화에 걸린 기간도 자가용 승용차의 경우와 비슷하다. 보통 사람이 개인적으로는 가까이 가 보기도 힘들었던 컴퓨터를 자기것으로 소유하기 시작한 것이 10여 년전이고 이제는 초등학생이나 유치원생도 만진다.아직도 컴퓨터를 두려워하고 아예 외면하는 이들이 있기는 하지만, 사무실 풍경이라 면 컴퓨터가 몇대씩은 놓여 있게 마련인 세상이다.
1997년 5월 7일로 전화 가입자가 2천만명을 넘어섰다.이날 2천만 번째 가입자에게 한국통신이 펜티엄 컴퓨터 한대를 주었다.큰상을 줄 때 예전 같으면 쌀 한가마나 황소 한마리를 주었는데 상품도 시 대 따라 이렇게 바뀌었다.이제 전화 보급율은 두 사람에 한 대 꼴 로 선진국 수준이다.셋방살이하는 이가 집주인 안방의 전화를 한번 쓰자면 되게 송구스럽기만 하던 시절은 회고적인 텔레비전 드라마 에 가끔 등장한다.
컴퓨터와 통신기기가 놀랄 만큼 발전하고 광범하게 보급되면서 이 른바 정보화 시대에 이르고 우리는 정보화 사회라는 환경에 둘러싸 였다.분명히 세상이 편리해졌으며 삶의 질이 높아졌다.산업 분야에 서는 인력을 줄이면서 생산력을 더 올릴수 있게 되었다.근래 한창 유행하는 말인 '저비용 고효율'을 성취할 수 있는 길이 정보화에 있다는 믿음은 올바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보화의 혜택을 모든 국민이 다 누리게 해야 한다는 것이 국가 목표로까지 돼 있다.세계 에서 뒤지지 않고 앞서자면,나라는 정보대국이 되고 국민은 훌륭한 정보 이용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이 부문의 대중화가 진전되면 될수록 좋을 수밖에 없다.
필요한 정보를 빠른 시간 안에 얻는다는 것은 학자나 전문가에게만 유용한 것이아니다.이를테면 날씨,관광여행,교통,서적,문화행사에 관한 정보나 상품 구입 정보는 시간과 경비를 줄일 수 있다.복잡하 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자료 수집과 정리는 일부 전문가와 컴퓨터가 맡기 때문에 딴 사람들은 좀더 창의적인 시간을 더 쓸 수 있게 된 다.개성과 창의성이 존중되고,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관심이 높아진 다.아마 앞으로 예술 분야는 제2의 르네상스를 맞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많은 정보를 접하면서 '우물안 개구리'의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게 되며 합리적인 사고를 하게 된다.전자게시판이나 뉴스그 룹,웹의 개인 페이지들을 보라.자기 표현 기회가 많아져 여론이 쉽 게 형성되고 사회는 민주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정치적 으로 누가 가장 국민의 미움을 받는가를 컴퓨터 통신의 여론 광장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다.아마추어들이 활발한 정보교환으로 외국 곡 베낀 대중가요 작곡자들을 혼 내는 곳도 이런 곳들이다.
어떤 일이든 바람직하지 못한 면이 따른다.그러나 상당한 부분이 필요 이상으로 과장되기도 한다.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뒤,도둑과 사 기꾼이 없던 적은 없다.옛날 도둑은 걷거나 말타고 다녔지만,오늘날 도둑은 차타고 다닌다.도둑이 차를 이용한다고 차의 유용성을 헐뜯 는 것과 같은 논의를 종종 본다.정보화 시대의 도둑은 당연히 그 발 전된 수단을 이용한다.사기꾼도 마찬가지다.논의가 도득과 사기꾼을 어떻게 막느냐여야지 차를 없애야 한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서는 곤 란하다.
정보화 진전에 따르는 부작용이나 역기능으로 논의되는 것은 많다. 사생활 침해와 개인정보 악용에 대한 불안도 그 일부다.어디를 통해 인적 사항을 알았는지 아무 허락도 없이 상품 광고지를 집이나 사무 실로 보내온다.짜증나는 일이다.이메일로도 쓰레기편지는 꾸역꾸역 쌓인다.'남성 고민 해결' 따위의 광고가 이메일로 낯두껍게 들어온 다.정부가 추진하는 전자주민등록증은 정작 신중한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인데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다.이번에는 자동차운전 특기 정 도가 아니라 건강과 부의 정도 등 개인에 관한 많은 정보가 칩카드 한 장에 다 담길 것이니 불심검문 한 번 당하면 그 자리에서 벌거벗 겨지는 것과 같다.
또 외설이 문제인데 웹의 포르노 범람에 대처할 뾰족한 방안은 없 는 것 같다.이것은 전화방 규제처럼 쉽지 않다.국내서는 어떻게 막 아 보지만 인터넷 세계는 국경이 없다.컴퓨터를 통해 외설스런 것들 을 접하고 범죄를 저지를 수준이라면,그런 계제가 아니더라도 결국 진창에 빠졌을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그렇다 해도 외설 문제만 은 국내 규제가 어느 정도 있어야지 그러하지 않으면 국내 웹 사이 트의 많은 부분이 도색으로 뒤덮이고 말 것이다.이용자 공간이 한정 되는 전화방 정도는 용인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그 사용자들이 그보 다 덜하지 않은 다른 방법으로 즐길 길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관통력이 좋은 총알을 만들면 장갑차를 더 단단하게 만들고 또 이 장갑차를 뚫자면 더 강력한 총알을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미국 경찰 에 성능 좋은 방탄조끼가 지급될 것인데 이것을 범죄조직도 이용할 것같아 걱정이라고 한다.컴퓨터망의 보안도 그와 같다.보안 기술을 개발하면 도둑도 배운다.비공개 컴퓨터망을 침범하는 것은 도둑이므 로 중벌로 다스려야 마땅하다.
빠른 시간 안에 다중에 전파되는 컴퓨터 통신을 이용한 사기나 유 언비어 유포도 확실히 문제이기는 하나 이용자 개인의 판단에 의지 하는 수밖에 없다.이용자 가운데는 의로운 이들이 있어 이런 못된 짓을 고발하는 데에 헌신적이므로 크게 걱정할 것은 아니다.규제는 자칫 악한 자들이 아니라 선한 이들의 표현 자유를 억누를 수 있다. 아직까지 나타난 현상은 그다지 우려할 만하지 않다.폐해를 심하 게 강조하는 사람들은 규제를 좋아해서 그럴지도 모른다.규제가 없 어야 좋은 것은 정보통신 분야라고 다를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