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후생(後生)은 가공(可恐)
예전에 아들은 아버지를 보고 배웠는데,이제는 또래끼리 배운다.미래에는 아버지가 아들한테 배우게 될 것이다.인류학자 마거릿 미드가 한 말이다.
미드가 말한 미래가 벌써 와 있다. 그의 예언이 맞았다는 것은 컴퓨터를 두고 생각 하면 실감할 수 있다.아이들은 컴퓨터를 두려워하지 않고 잘 다루지만,부모 세대에는 컴퓨터를 어떻게 켜고 끄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다.아이가 밤새 컴퓨터에 매달려 채팅이나 음란한 그림 보기에 빠져 있어도,그저 공부 열심히 하는 줄 알고 있는 부모 도 있다.컴퓨터 조작하다 막힌 아버지가 아들한테 물어 보는 것은 흔한 정경이 되었 다.
기술 발전 속도는 어지러울 만큼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대학에서 공부하고 나오면 배운 기술이 이미 낡아 버려 문제라고도 한다.
그만큼 기업들이 활발하게 새로운 상품을 내놓아 특히 전자상품은 라이프 사이클이 자꾸 단축된다.전자기기 수리점을 하는 인척의 말도 "새로운 기술매뉴얼을 따라 읽기 가 숨가쁘다"고 한다.수리공의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는데,없던 기능들이 추가되면서 기계 구조가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새 기계에 적응이 빠른 것은 아이들이다.방에 있는 녹화기도 아이들이 시간을 맞추 어 놓지 않으면 마냥 깜박거리고만 있는 집들이 많다.호기심이나 학습능력은 나이가 들면서 줄어들어 어른이 되면 새로운 것을 잘 배우려 들지 않는다.
능력 위주와 업무 능률을 내세운 직장내 조직파괴,위계파괴가 유행처럼 퍼지고 새 환경 변화에 적응 더딘 축들이 밀려나는 사태 속에서는 연장자의 권위만으로 버티기 어렵게 되었다.공자가 2천년전에 벌써 후생이 가외(可畏)라 했거니와 지금은 더욱 그런 시대다.
전에는 글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뉘던 것이 지금은 컴퓨터를 아는 사람 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뉜다.그 둘 사이에는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매체의 특성이 사람의 사고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맥루한이 말했지만 그가 이 말을 할 때에는 컴퓨터가 포함되지 않았다.그는 활자매체와 텔레비전만을 비교했다.
컴퓨터는 엄청난 매체다.정보 세계의 문간이 바로 컴퓨터다.컴퓨터를 아느냐 모르느 냐 하는 것은 정보 접근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와 직결된다.
또 컴퓨터만큼 입력과 출력의 관계를 명확히 보여 주는 것은 없다. 올바르게 입력되 어야 올바로 출력된다.용량과 속도의 한계도 명확하다.한계를 넘는 것을 요구하면 감 당하지 못하고 시스템이 멈춘다는 것을 컴퓨터 다루는 이들은 잘 안다.
인류 역사의 시대 구분을,문자로 기록된 이후의 시대를 역사시대라 하고 그전의 시 대를 선사시대라 한다.앞으로는 컴퓨터시대와 선컴퓨터시대로 나누게 될 것이다.
어떤 이는 사람들에게 턱없이 무리한 일을 시킨다.무리는 폐해를 낳을 수밖에 없다. 밀어부치면 된다는 반합리적인 생각은 컴퓨터시대의 것이 아니다.컴퓨터시대에 선컴퓨 터시대적 사고를 하는 이가 이끄는 집단은 발전할 수 없다.
그런데 후생이면 다 가외인가.공자가 그랬듯이 한마디 더 붙여야 한다.`컴퓨터를 모 르면 불가외(不可畏)'다.
그러나 컴퓨터를 안다고 해서 그것만이 다는 아니다.정보 접근 방법을 알아도 제대로 된 정보를 골라 적절하게 이용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아무리 컴퓨터시대가 되더라도 따뜻한 인간애가 살아있어야 하고 인간사회의 본질적 인 규범은 존중되어야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지진 때 컴퓨터 통신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피해 지역과 피해 정도 를 신속히 알리고 구호에 참여했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89년 어느날 입원한 동생이 다음날 수술받으려면 같은 혈액형의 사람 여덟이 피를 제공해야 했다.밤에 긴급히 컴퓨터 게시판을 통해 도움을 요청했더니 많은 분들이 나서 주었다.이 일은 유경희씨의 저서에 컴퓨터가 인정의 가 교가 될 수 있다는 예로 기록되었다.
요즘의 조직파괴,위계파괴가 혹시 인간경시를 부추기고 인간사회를 메마르게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인정머리도 없고 윗사람이나 연장자를 덮어놓고 우습게 보는 후생,훌륭한 컴퓨터 실 력을 바이러스 퍼뜨리기 따위의 못된일에 쓸 궁리나 하는 후생이라면 정말 가공(可恐) 이다.
박강문<서울신문 과학정보부장>
뉴스피플 1996.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