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자서전과 국제어

 대우그룹 총수 김우중씨의 자서전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가 여러  언
어로 나왔는데 에스페란토 번역판도 이제 곧 나온다. 대우는 한국에스페란토
협회의 격월간 기관지 `에스페란토'의 발간비도 지원하기로 했다. 국제어 에
스페란토의 효용성에 눈을 뜬 국내 대기업은 지금 대우 하나뿐이다.`세계 경영'
을 내거는 기업집단답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 종교단체로는 원불교가 해외 포교에 에스페란토를 활용해 온 지 오래
다. 원불교 경전을 에스페란토로 번역했으며,현재는 인터넷을 통해 에스페란
토로 세계에 원불교 소식을 활발히 전하고 있다.`Uxonbulismo'(원불교)를 
주제어로 하여 검색하면 여러 개의 웹사이트를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 국제관광공사가 한국관광안내서를 에스페란토로도 내고 있는  것
을 아는 이가 많지 않다. 에스페란토 사용자로서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아
직 적지만 끊이지 않고 있다는 것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가난한 단신
여행자에게는 한국에스페란토협회(02-717-6974,5)서 숙소를 제공하고 있는데,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용했다.

 요즘은 특히 아마추어 무선사(햄)들의 에스페란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데, 외국인과 교신할 때 영어로보다 훨씬 쉽게 그리고 더 당당하게 대화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에스페란토문화원(02-779-5936,7216)을 중심
으로 에스페란토와 무선통신에 대한 강습 및 활동이 활발하다.

 에스페란토는,쉽고 중립적인 언어로 민족과 민족 사이,나라와 나라 사이의
언어 장벽을 해소하자고 만든 인공어다. 이 생각은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이지
는 못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몽상가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꿈으로 치
부하기도 한다.

 그러나,이제 중립적인 국제어는 지난 어느 시대보다도 필요하게 되었다.국
제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한 것이다. 10월13일 저녁 한국
방송공사의 텔레비전2 뉴스파노라마 시간에 흥미로운 보도가 있었다. 에스페
란토를 유럽연합의 공용어로 하자는 의견들이 강하게 나오고 있으며,유럽에서
에스페란토 학습열기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난날,에스페란토가 국제기구의 공용어가 될 뻔한 일이 있었다. 제1차 세
계대전이 끝나고 만들어진 국제연맹에서 에스페란토를 이 국제기구의 공용어
로 하자고 결의했다.이 기구는 강대국의 비협조로 오늘날의 국제연합만큼 강
력하지 못했으며 그나마도 오래 존속하지 못하고 이 결의를 한 뒤 곧 없어져
버렸다.

 현재 유럽연합 가입국은 15개국,공식언어가 11개다. 나는 유럽연합이 아직
유럽공동체일 때 브뤼셀에 있는 그 집행위원회에 가 보았다. 그때는 12개 가
입국에,공식언어가 9개였다. 집행위원회 사무실마다 9개국어로 적혀 있는 문
패부터가 언어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유럽연합은 실무언어로 정한 영어와 불어를 주로 쓰기는 하지만,회의 때는
공식언어로 모두 동시통역해야 한다. 그 수많은 공식언어들 때문에 유럽연합
의 운영비 절반 이상이 통역과 번역에 들어간다. 돈도 돈이지만 업무의 효율
성이 떨어지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매년 여름 열리는 세계에스페란토대회는 통역이 필요없다.100개가 넘는 나
라에서 모인 사람들이 에스페란토 한가지로 토론하고,연극하고,노래하고, 문
학콩쿠르도 연다.여기에는 우리나라에서도 해마다 대표를 보내고 있다.

 영어나 러시아어 등 세력 큰 언어를 쓰는 사람들은 에스페란토에 무관심하
거나 심하면 적대적이기까지 하다.자기네가 쓰는 언어가 국제성을 띠고 있으
니까 굳이 다른 언어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거나,에스페란토가 세력
을 얻으면 그만큼 자기네 언어의 영향력이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언어만큼 
정치적은 것은 없다.

 100년전인 1898년 만년의 비스마르크에게 한 신문기자가 물었다."근대사에
서 가장 결정적인 현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비스마르크는 북미인들
이 영어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대답했다. 영어가 다음 20세기에 떨칠 위
세를 예상했던 것이다.

 앞으로 한 세기는 영어,스페인어 같은 큰 언어들에 대한 작은 언어들의 저
항으로 특징지어질 것이다. 민족어들이 살아남는 길은 국제 관계에서만은 중
립적인 언어,예컨대 에스페란토를 쓰도록 하는 데에 힘을 모으는 것이다. 에
스페란토운동은 세계평화운동이며 자주독립운동이다.러시아나 나치 독일이
에스페란토를 핍박한 것은 그런 까닭에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