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방 전화선의 수난       
   "정말 유럽 통합 되는 거야?" 파리 주재 한국 언론사 특파원
동료들이 종종 뇌까리곤 했다. 유럽 정상회의나 유럽 통합 관련 
회의나 서방 선진 7개국(G7) 정상회의를 취재하러 유럽 여러 
나라 도시에 가는 일이 잦았는데, 취재 현장인 회의장소 건물에 
마련된 기사작성실에서는 별로 문제가 없지만,숙소인 호텔에 
돌아와 해설 기사 따위를 써서 서울 본사에 보내려면, 노트북 
컴퓨터의 모뎀과 전화를 연결할 수 없을 때가 많다. 나라마다 
크기와 형태가 다른 잭을 쓰기 때문이다. 이런 것도 통일하지 
못하면서 통합은 웬 통합이냐 이 말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다. 전기 콘센트 플러그 또한 나라마다 다르다. 
영국 것은 아기 주먹만 하게 크고 세 개의 뿔이 나와 있다. 
스위스 것은 여덟 팔(八)자로 뿔 두 개가 배열돼 있다. 나는 
미국에서 사 놓았던 만능 어댑터를 한동안 요긴하게 썼다. 나중에는 
파리 공항 매점에서 산 각국 컨센트 플러그 뭉치를 사서 유럽의 
다른 나라 취재 갈 때 가지고 다니면서 썼다. 첨단 장비인 노트북 
컴퓨터를 가지고 가도 이런 준비가 없으면 유럽에서 사용하기 힘들다. 
또 그쪽 전화에 맞는 잭이 없으면 컴퓨터 모뎀을 통해 기사 보내기도
어렵다. 

  특히 유럽 어떤 나라의 호텔들은 전기 아끼기의 명수다. 프론트 
데스크의 응대가 자못 정중하고 객실은 깨끗하지만, 숙박비가 
미국의 갑절은 되는데다 전기 아끼기 자린고비 정신은 정말 철저하다. 
객실에 사사로이 전기기기 꽂아 쓸 콘센트 하나 없다. 만능 어탭터를 
가지고 가도 소용이 없다. 어쩌다 화장실의 전기면도기 꽂는 곳이라도 
있으면 반가워 미칠 지경이다. 
  
  호텔 방에는 대체로 진공청소기를 꽂기 위한 빈 콘센트가 하나쯤 
있게 마련인데 이것마저 없는 곳이 많다. 청소할 때는 복도에서 
전기를 끌어 오는가 보다.노트북 컴퓨터를 가지고 가서도 방안에서 
꽂을 데가 없다. 대개 이럴 때면 텔레비전 코드를 뽑고 전원을 
연결할 수 있는데 그마저 하지 못하게 돼 있는 수도 많다. 텔레비전 
코드를 벽 속에 넣고 밀봉해 버려 뽑지 못하게 해 놓은 것이다. 전기 
스탠드 코드도 그렇게 고착시켜 뽑을 수 없다. 우리 경찰과 신문들이 
잘 쓰는 '원천 봉쇄' 그대로다. 
 
  취재 일로 유럽 여행에는 어지간히 이력이 난 내게 이런 정도의 
봉쇄에 맞설 채비는 돼 있다. 전구 대신 꽂는 소켓 하나면 된다. 
물론 미리 준비해야 한다. 스탠드의 전구를 뽑은 뒤 그 자리에 소켓을 
끼우고 노트북 컴퓨터 전원 플러그를 꽂는다. 그 지독한 자린고비들이 
전구에까지 자물쇠를 채우지는 않고 있다는 것은 천만다행이다. 
  
  이렇게 전원을 확보하고 나면, 기사 송고를 위한 모뎀 연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벽면의 전화선 아웃렛에서 전화선을 뽑고 그 자리에 
모뎀 연결 잭을 꽂으면 되는 것인데 여의치 않은 곳이 많다. 잭이 
맞지 않거나 아예 뽑을 수 없게 해 놓은 것이다. 이러면 전화기를 
분해하거나 그도 안되면 침대를 밀어내고 전화선 피복을 벗겨야 한다. 
작은 드라이버, 잘 드는 주머니칼이 필요하다. 모뎀 연결 코드는 미리 
한쪽 끝을 잘라 선 두 가닥으로 된 선을 벗겨 놓는다.
  
  전화기를 뜯거나 전화선 껍질을 벗기면 선 네 개가 나온다. 컴퓨터 
통신은 선 두 개만 필요하다. 네 개 가운데서 선 두 개를 찾아내어야 
한다. 수학적으로는 4 곱하기 3은 12, 열 두 개의 조합이 나온다. 열 
두쌍에서 맞는 한쌍을 단번에 맞출 확률은 8.3% 쯤밖에 안된다. 그래도 
차분히 앉아서 모뎀 연결 코드의 두 가닥 선과 일일이 한쌍씩 
연결해 보면 15분도 안돼 맞는 쌍을 찾을 수 있다. 
  
  전화선과 모뎀 연결 코드를 단단하게 이으려면, 악어입 한쌍을 한쪽 
끝에 단 모뎀 연결 코드를 미리 만들어 가지고 다니거나, 작은 너트와 
볼트 두쌍을 마련해 두는 것이 좋다. 
 
  위에서 말한 방법은 어쩔 수 없을 때에 쓰는 것이지, 누구에게나 
권장할 만하지는 않다. 먼저 호텔 사람들에게 노트북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하라. 더러는 몇천원 정도씩의 보증금을 받고 
콘센트 플러그 어댑터와 모뎀 연결 잭을 빌려 준다. 호텔 쪽의 도움이 
없어 비상책을 썼을 때는 반드시 끝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전화선을 
벗겼다면 절연 테이프로 감아 원상 복구해야 한다. 
  
  미국의 어떤 비즈니스 호텔들은 노트북 컴퓨터 사용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잘 해 놓았다. 호텔 경영진이 깨어 있어 변하는 세상의 흐름을 
제대로 안다. 알리나니, 깨어 있지 못한 사람들이 경영하는 호텔이라면 
어느 날 어느 방인가의 전화선이 벗겨질 수 있다. 그래도 싸다. 

박강문 <서울신문 과학정보부장>
서울신문사 발행 시사주간지 뉴스피플(1997.10.16) '정보화사회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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