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도무문' 인터넷 시장
엄마가 "애들아, 장 보러 가자" 하니, 아이들은 컴퓨터 앞으로 쪼르르 몰려 온다. 엄마는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월드와이드웹에 접속하여 '가상시장'에 들어간다.전기밥솥을 하나 사기로 하고 여러 회사 제품의 값과 기능과 디자인을 견주어 본다.물건을 고른 뒤, 엄마는 '주문'이라고 쓰인 곳을 눌러 주소, 성명, 신용카드 번호, 배달일시를 입력한다. 이제 아이들 차례다. 화면 안의 문방구점, 서점들을 기웃거리면서 살 것을 고른다. 물건들은 내일 집에 배달될 것이다. 시장이나 백화점이 있지만 이 가족은 자주 가지 않는다. 머지않은 장래에 이렇게 인터넷 시장을 이용 하는 이가 많아질 것이다. 그렇게 되니 공장 제품을 파는 가게들은 점포 임차비가 비싼 데에 굳이 매장을 둘 필요가 없어져 시외로 나가 큰 창고를 짓는다. 전산화가 이루어져 커다란 창고를 단 두사람이 맡는다. 주문을 받는 사람은 단 한 사람이다. 밤에는 컴퓨터가 자동으로 주문을 받는다.배달 일은 택배회사가 한다. 간접비용이 많이 줄어 물건 값의 거품이 걷힌다. 그런데, 인터넷을 통해 외국의 물건을 살 때는 어떻게 되는가. 최근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 이 인터넷 시장에서 나라밖 물건을 사면 서로 관세를 물리지 말자고 제안했다. 인터넷 큰길은 어느 나라에도 뻗치지 않는 곳이 없다. 이 길을 통해 장사 물건들이 수도 없이 오고갈 것인데 국경을 넘는다고 거추장스럽게 무슨 관세를 받느냐, 다같이 받지 않으면 되지 않느냐. 좋은 이야기 인데, 실은 꽤나 겁나는 소리다. 인터넷은 미국이 닦은 길이라 미국이 가장 많이, 가장 잘 이용한다. 미국은 장사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다. 미국 물건들이 이 길에서 활개칠 게 뻔하다. 미국은 '우리가 관세를 받지 않을 테니 너희도 모두 관세를 받지 말라' 한다. 미국으로서는 득 보는 일이니 마음 편한 이야기다. 공항에서 관세를 물려도 사치품을 잔뜩 사 가지고 오는 이들이 많은데 이런 돈 많은 사람들 신나는 날이 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뿌리는 이가 거두나니, 이제 미국은 수확의 철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미 인터넷으로 미국은 돈을 벌고 있다. 인터넷 주소 등록료 챙기는 것만 해도 적지 않다. 인터넷 관련 소프트웨어 팔아 버는 돈이 많다. 또한 앞으로 인터넷 무역을 하려면, 인증제도가 필요해진다. 컴퓨터 저편, 수만리 떨어진 곳의 장사꾼에게 내 신용카드를 내맡기자면 뭔가 믿는 구석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 이 가게는 믿을 만하다고 누군가가 말해 줘야 한다. 이일을 미국이 맡을 것이고 인증료를 받을 것이다. 인터넷 관련 기술, 예컨대 암호화 기술 같은 것은 미국의 독차지다. 특히 이 점 때문에 유럽 같은 데서는 마뜩지 않아 한다. 인터넷 무역이 잘 유지되려면 보안이 중요하다. 고객의 신용카드 번호 같은 것이 마구 노출되어서는 곤란하다. 누군가가 인터넷을 헝클어 버리는 못된 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미국은 암호화 기술을 밖에 내돌리지 않으려 한다. 그러다 보니 미국은 인터넷을 개구리가 논바닥 들여다보듯 훤하게 볼 수 있으되, 딴 나라는 그렇지 못하다. 인터넷이 미국에는 완전히 '이 손 안에 있소이다'다. 딴 나라들은 미국에 예속되는 것만 같아 썩 내키지 않는다. 멍석 깔아놓고 이 사람 저 사람 마음대로 쓰게 할 때는 다 속셈이 있어서였을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본디 인터넷은 국방을 위한 것이었다가 일반에게 공개된 것인데, 그 유용성 때문에 날이 갈수록 위력을 얻어 가자, 미국은 인터넷이 무역의 큰 통로가 되리라는 가능성을 주목해 왔다. 결국 그리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무역 대로를 우리도 이득 챙기며 활보할 방도를 생각해야겠다. 이번에 클린턴 대통령의 제안을 보면서 문득 생각나는 일이 있다. 오래전 일인데,학원가의 명강사 서한샘씨의 명성과 함께 한샘학원의 인기가 치솟자 지방 여기저기에 '한샘학원'간판을 단 학원들이 생겨났다. 물론 명칭 도용이다. 서씨는 이를 한동안 그대로 두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기다리고 있으면 그게 저절로 다 진짜 한샘학원이 될 텐데 뭘" 하는 것이 답이었다. 그의 설명은 이랬다. 지방의 '한샘학원'들이 생길 만큼 생기면 원장들을 다 모아 명칭사용을 공식적으로 허용 하면서 조건을 내건다. 시설을 명칭에 걸맞게 개선해야 한다. 그러면 한샘학원에서 쓰는 것과 똑같은 교재를 공급하마. 이렇게 해 나가면 모두 진짜 한샘학원이 되는 것 아니냐. 인터넷 무관세 시장과 별로 연결이 되는 듯 싶지 않은 서씨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은 웬 까닭인가. 장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 이 때문일 것이다. 박강문 <서울신문 과학정보부장> 서울신문사 발행 시사주간지 뉴스피플(1997.7.31) '정보화사회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