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정보화의 문제들

 
  미국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간 아이한테 오늘 산수 시간에
무엇을 공부했느냐고 물었더니 컴퓨터실에 가서 게임을 했다
고 했다.미국에까지 데리고 온 아이에게 학교가 공부는 시키
지 않고 놀리기만 하는가 하는 걱정이 한순간 들었다. 내 표
정을 읽은 아이가 설명했다.산수 시간마다 시험을 보는데 문
제를 일찍 다 푼 아이에게는 선생님이 컴퓨터실 입실권을 한 
장 주어 컴퓨터를 가지고 놀게 한다는 것이었다. 자주 이 혜
택을 받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부러워한다고 자랑까지 했
다.알고 보니 이미 기초적인 컴퓨터 교육을 하고 있었다. 이
때가 1982년 가을이다.

  이 일로 나는 미국내 학교의 컴퓨터 교육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아이들을 위해 여름방학  때 여기저기서 컴퓨터 캠프가 
열리는 것도 보았다.나는 귀국해서 `미국 학교 안팎의 컴퓨터 
교육'이라는 제목의 해외연수보고서를 냈다.이 보고서는 언론
과 관계있는 주제가 아닌데다가 당시는 국내 학교들이 컴퓨터 
교육에 아직 관심이 없었을 때라 연수 주관 기관에도 다른 어
느곳에도 도움을 주지 못하는 문서가 되고 말았다.

  미국 학교들은 컴퓨터 교육을 딴 나라들보다 일찍 시작했다.
내가 가 있던 대학의 교육학과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교육'
(Computer-aided Education)같은 강의과목도 있었는데 파스칼 
언어로 학습 프로그램을 만드는 실습을 하고 있었다.`플레이토'
(PLATO)라는 양방향 학습 프로그램 방식은 매우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화면 중앙의 `거북이'를 움직여  도형을 그리는 언어
`로고'(LOGO)의 교육적 효과가 주목받던 것도 80년대 초반의 
일이었다.

  학교  컴퓨터 교육이 기종 선택의 어려움,소프트웨어의 빈약
함,유능한 교사의 부족,그리고  경비 조달의 원활치 못함이라는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것은,옛날이나 이제나,한국이나  미국이
나,별로 다를 게 없다. 요즘은 특히 시스템이 복잡해져 그것을 
다루려면 전 같지 않게 꽤 높은 수준의 능력이 필요해 어려움이
더욱 크다.시스템이 훌륭할수록 `컴퓨터를 잘 아는 열성적인 교
사'의 힘만으로는 움직여 나가기 힘들다.

  최근  미국의 컴퓨터 월간잡지 `패밀리 피시' (Family PC)에 
학교 컴퓨터 교육의 어두운  장래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매서추
세츠주 한 초등학교의 예를 들었다. 30만 달러의 장비가 갖춰진 
중앙컴퓨터실이 있고 교실 26개에는 이곳과 연결된 개인용 컴퓨
터가 있다.56kbps의  회선으로  인터넷에 접속된다.교실에는 컴
퓨터를 텔레비전과 연결하는 컨버터도 갖춰져 있다. 네트워크는 
대기업에서 쓰는 노벨 네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것이다.이만하면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다.그런데,학교 예산에서 이 시스템 운용
전담자에 대한 비용 항목이 없어져 버려 곧 시스템 가동을 중단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의 정보화,교육의 정보화가 최근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
는 우리나라 학교 현장에서도 시설은 해놓고도 놀리고 있는 곳이
많다고 한다.사단법인 미래사회정보생활이 만드는 웹잡지 `에듀
파인더'(http://www.edufinder.org)가 전국 초,중,고 정보주임
교사  9백명에게 설문지를 돌려 조사했더니,멀티미디어교실이 설
치되지 않았거나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50.7%나 나왔다.

  그 이유를 직접적으로 물은 항목은 없지만, 효율적인 교육정보
화 추진에 관한 의견에서 대충 알아챌 수는 있다. `장비 등 인프
라 구축',`교사의 정보화 수준 제고',`양질의 교육용 소프트웨어 
공급 확대',`통신이용요금 인하'의 순서로 답변이 나왔다.시스템
이용 능력이 있는 교사가 부족하다는 것이 한가지 이유로 돼 있다.
"교사들에게 고루 연수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관주도보다는 관
련 학원 등에서 실시하는 단기과정을 수강할 수 있도록 시간적,
경제적 배려를 해 달라"는 건의가 많았다고 한다.
 
  또 "멀티미디어교실을 현실화해 지방교육청별 정보교사 모임을 
통해 설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건의가 많은 것을 보면, 교육
정보화 정책이 교사들의 의견이 반영될 기회가 없는 채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장비 구입을 학교에서 자율적으로 할 수 없다
는  지적에다,업계 로비를 배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관련
업는 제품 판매만 생각말고  미래  교육을 걱정하는 차원에서 질
좋은 부품 조달과  최신정보 무료제공 등  사후 서비스에 힘써야 
한다는 충고를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