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성과 허깨비
                                    


  70년대  신문사 편집국은 시끄러웠다.그때는 출입처에 나가 있
는 기자들이 그날 보도될 기사를 전화로 부르고 안에서는 이것을
종이에  받아 적었다.잘 들리지 않으면 되묻고,기사가 신통치 않
으면 사나운 데스크(부장이나 차장)의 호통이 뒤따랐다.

  80년대의  편집국은  팩시밀리 기계의 등장으로 훨씬 조용해진
다.이 기계야말로 신문기자를 위해 생긴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
다.전화통을  붙잡고,允을 `오징어 윤',卨을 `탱크 설'이라고 부
르던 것이 옛일이 되었다.

  9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컴퓨터를 통한 원고 작성과 송고가 이
루어졌다.원고지가  필요하지 않고,초고를 다시 정서하는 번거러
움이 없다.

  그런데,가장  편리한 것이 가장 불편할 때가 있다.기자에게 불
행한 일은 항상 기사 마감 시간 직전에 일어난다.내가 파리 특파
원  할 때 가끔 겪던 황당한 일은,마감 직전에 갑자기 컴퓨터 송
고가  되지 않는 것이다.원고지에 먼저 쓰지 않았으니까 바로 팩
스로 보낼 수도 없다.컴퓨터 화면을 종이에 황급히 옮겨 써서 팩
스로  보내거나(그때 가지고 있던 프린터는 느려터져 급할 땐 도
움이 안되었다),더 급하면 전화로 부른다. 

  편리한  기계가 사용될수록,인간의 개입이 줄어들고 그만큼 직
접적인  호소력이 약해진다.전화로 기사를 부르고 받는 음성에는
인간의 감정이 실려 있었다.선배기자의 따뜻한 말과 호된 꾸지람
이,위안과 채찍이 되었다.안에서는 기사를 부르는 기자의 숨가쁜
목소리에서 사건의 심각성을 느꼈다. 

  팩스 기계를 통해서는 `종이'가 오간다.허전할 수밖에 없다.뭔
가  빠진  듯 불안하다.실제로 가끔 전송이 되지 않는 사고도 있
다.그래서 `보냈다'고 다시 음성으로 알려야 개운하고,그 소리를
들어야 뭔가 채워진 것 같다.

  컴퓨터  전송으로  오가는 것은 `만져지지 않는'것이다.팩스로
올 때는 `종이'라도 `만질' 수 있다.이 차이는 상당히 중요하다.
내가  다시 파리 특파원 시절 일을 되돌아보면 이 차이를 경시했
던 잘못이 컸다.최첨단 방법으로 기사를 보내놓고 `보냈다'는 사
실을  옛 방법인 음성통신으로 알려 주어야 한다는 것이 나는 영
마뜩지 않았다.안에서 번번이 내 기사들을 보지도 않고 지나쳤다
는  것을 나는 나중에 알았다.컴퓨터 통신 때는,더욱이 상대방이
컴퓨터에  별 관심이 없는 경우라면,음성통신이나 팩스의 보조가
필요하다.

  이렇듯 컴퓨터 커뮤니케이션의 약점은,컴퓨터를 켜고 조작하지
않으면  접할  수 없다는 것이다.신문의 죽음을 예언하는 이들이
많지만,희망은  있다.신문지는  현관에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워다
펼치기만 하면 된다.조작법이 아주 간단하다.휴대성도 좋다.아침
식탁머리에서  볼 수도 있고,저녁에 누워서도 볼 수 있으며,화장
실에서도 읽을 수 있다.

  오늘날 사회는 컴퓨터가 하는 일이 많아,컴퓨터가 말썽 부리면
되지  않는 일도 많아졌다.은행에 가서도 컴퓨터가 서면 돈을 찾
을  수 없다.신문사에서는 컴퓨터가 어찌되면 신문을 만들 수 없
다.정부와  민간의 크고 작은 전산망이 일시에 돌아가지 않게 될
때 혼란은 엄청날 것이다.

  요즘은 군대의 중대 단위 행정병까지도 컴퓨터를 쓴다고 한다.
당연히 그리해야 할 것이다.그런데 만약에 전기가 공급되지 못하
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될까.컴퓨터를 쓸 수 있을까.군대란 최악
의  상황 전개까지도 가정해서 대비해야 하므로,수동식 타자기의
이용도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어떤  이는 수동식 타자기가 필요 없다고 하지만,전기를 쓸 수
없는  곳에서는 컴퓨터 백대보다 타자기 한 대가 낫다.컴퓨터 자
판도 수동식 타자기 자판과 같아야 한다는 공병우 선생의 주장이
맞다고 생각한다.  

  악조건에서는  간단한 것이 오히려 강하다.산악이 많은 한국의
전장에서  가장 유용한 운반장치는 지게였다고 전 유엔군 지휘관
은  회고했다.수세식 화장실이 일반적인 서울에서 재래식 화장실
을 없애지 않고 있는 분도 있다. 

  컴퓨터와 그것이 관련된 세계에는 분명히 취약한 구석이 있고,
`허깨비'  같은 것도 있으며,때로는 대단히 불편한 점도 있다.인
터넷을 통해 구인광고를 한 사장이 아주 이상적인 적임자를 찾아
냈다.학위논문의 주제며 경력이 마음에 꼭 들었다.면접하자고 오
랬더니  소년이  왔다.그 소년은 컴퓨터 세계의 `가상' 분위기에
젖어 아무런 죄의식없이 요구에 맞춘 자기 소개서를 만들어 보냈
을 뿐이다. 딴 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박 강 문 <서울신문 과학정보부장>
  뉴스피플 1996.9.5


정보화 사회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