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o보다 e가 낫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또 바뀔 모양이다. 1959년에 제정된 '한글의로마자 표기법'을 1984년 맥큔-라이샤워 방식으로 바꿔 오늘날까지 써 오고 있는데,문화체육부와 국립국어연구소가 최 근 내놓은 표기법안은 대체적으로 1959년 방식으로 되돌리는 것 으로 돼 있다.

1959년 방식은 불만스런 점이 있긴 하지만 그럭저럭 공식적인 표기법으로 사용돼 왔다.이것을 1984년 바꾼 것은 1986년 아시아 경기대회, 1988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외국인이 잘 알아 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이제 또 바꾸면,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때 가서 또 같은 주장이 되살아나 다시 바꾸지 않을까 걱정된다.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을 두고 말이 많은 것은 근본적으로 한국말과 한글이 로마자와 잘 맞지 않아 딱부러지게 옮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글의 음가와 로마자의 음가가 같은 것이 적다. 우선 로마자 모음은 턱없이 모자란다. 또 한글 자음에서는 마찰음, 파찰음에서 유성이냐 무성이냐 하는 것이 변별적 자질이 되지 못하나 로마자에서는 확연한 구별이 있다. 유기음이냐 무기음이냐 하는 구별은 우리에게 중요한데 로마자에서는 그렇지 않다.

로마자는 라틴어를 적는데는 그만이지만, 그밖의 언어를 적으려면 불편하다.그래서 이 글자를 채용한 다른 언어에서는 한 소리를 두 글자 이상으로 나타내는 때가 많다. 독일어에서는 한 소리를 tsch와 같이 네 글자로까지 적는다. 한글을 로마자로 옮길 때 한 소리(글자)를 한 글자로 옮기는 것이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두 글자 이상이 되는 것을 너무 꺼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표음 위주 방식인 맥큔-라이샤워 방식은 문제가 많다. 비교적 읽기가 쉽다는 장점은 있지만 무엇보다도 환원성이 나쁘다. '독립문'의 Tongnimmun을 다시 뒤집으면 '독립문'이 되지 않는다.정보의 전달과 분류 때 큰 문제가 된다. 또 o,u 위의 초승달 부호는 컴퓨터나 타자기로 찍기가 어렵고 어깨점(') 하나가 있고 없음으로 '청주'(Ch'ongju)와 '정주'(Chongju)를 구별해야 하는 것도 무리다.

국립국어연구소가 글자옮기기 방식으로 되돌리기로 한 것은 정보처리가 날로 중요해지는 이 때에 올바른 방향을 잡은 것이다. 시안 가운데 1959년 방식과 다른 것 한 가지는 1959년 방식에서 'ㅓ', 'ㅜ' 'ㅡ'를 eo, u, eu로 적던 것을 e,wu,u로 적기로 한 것이다. 이것을 불만스럽게 여기는 이들이 많지만, 내가 보기에는 전의 것보다 낫다.

사용빈도가 많은 'ㅓ'를 eo 두글자로 쓴다는 것부터 내키지 않는데다가 eo는 '에오' '오우' '요' '야' 따위로 읽히기 쉬워 불만이었다. 내 딸 이름자 가운데 하나를 Seol로 쓰고 서양인들에게 읽혀 봤더니 그랬다. 어떻게 쓰더라도 'ㅓ'를바로 읽지 못한다면 간편한 e를 쓰는 것이 낫다. 이것을 흔히 '에'로 읽을 우려가 있지만, 그렇더라도 '설탕'이 '셀탕' 되는 쪽이 '세올탕'이나 '샬탕' 되는 것보다는 훨씬 괜찮다.중국은 'ㅓ' 소리를 e로 적는다.

개화기에 프랑스 선교사들은 '서울'을 Seoul 이라고 쓰고 '쎄울'이라고 발음했다. e에는 액센트를 붙여 'ㅓ'를 나타내고 ou로써 'ㅜ'를 나타낸 것이다. 영어 사용자들에게 들어가서는 액센트 부호가 떨어지면서 '쏘울'이라 읽히게 되었다. 이래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ㅓ'를 eo, 'ㅜ'를 u로 쓴 것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ㅓ'를 eo로 적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것이다.

프랑스 선교사는 또한 'ㅡ'를 eu로 적었다. 프랑스말의 eu 소리와  좀 닮았기 때문이다. 이것도 우리가 계속 비판없이 따라 하고 있는 것인데,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나는 y로 쓰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그 대신 'ㅜ'는 u로 쓴다. wu는 아무래도 저항이 있겠기 때문이다. y로 쓴다면 결국 y가 두 가지 구실을 맡게 되어 혼동될 것을 걱정하겠지만 실제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Gy-yi mal(그의 말), iyagi(이야기), y'ang(으앙). minjujuyi (민주주의).

q와 x를 쓰지 않게 되는데 이 글자에게도 적절한 구실을 맡기는 것이 좋다. '종성ㄱ' 은 q로 쓰고, 'ㅆ'은 x로 쓰면 편리하다. 'ㄲ' 'ㄸ' 'ㅃ'은 각각 gg,dd,bb보다는 kk,tt.pp가 좋다고 생각한다. 'ㄹ'도 초성일때는 r, 종성일 때는 l로 쓰는 것으로 구별을 두면 좋겠다. gago(가고), gaqo(각오), kkaqqgo(깎고); gerym(거름),gelym(걸음),gelrym(걸름); waxso
(왔소).

Seoul이 Seul 된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중국인들은 Peking으로  굳어 버린 것을 과감히 Beijing으로 바꾸고 외국인에게도 그렇게 쓰도록 만들고 말았다.

박강문<서울신문 과학정보부장>
뉴스피플 1997.5.22 

칼럼니스트
정보화 사회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