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불편 덜어 주는 컴퓨터


  한국통신이 얼마 전 시디롬 전화번호부를 나눠 주었는데,모든 가입자에게 주는 것은
아니었다.나는 궁금증을 풀려고 서울시내 것 한 벌을 손에 넣어 처음에 몇 번 써 보다
가 지금은 거의 쓰지 않고 있다.번번이 시디롬 디스크를 컴퓨터에 집어 넣는 것보다는
82원을 물더라도 114를 돌리는 것이 더 손쉽기 때문이다.이 새로운 방식의 전화번호부
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가 가신 지도 꽤 된 며칠 전 신문의 독자편지란을 읽고는 머리
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그 편지를 쓴 분은 경남 양산에 사는 청각 장애인 황대권씨였다.정상인이 114안내를
이용하는  일은 쉬운 일이지만,청각장애인은 일일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수
있다.청각장애자에게는  시디롬  전화번보부가 절실하게 필요하다.그런데 그런 배려가
없어  정작  청각 장애자에게는 몫이 돌아오지 않으니 서운하다.대체로 이런 내용이었
다.이  글을 읽고 황씨에게 갈 시디롬 전화번호부를 내가 가로챈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죄스럽기  짝이 없었다.한국통신 관계자가 이 편지를 보고 하마 한 벌 보내 주었을 것
이다.내 시디롬 전화번호부도 청각 장애자에게 주고 싶다.

  황씨는 청각에 장애가 있기는 하지만글을 읽고 쓰는 데는 불편이 없는 것 같고,시디
롬  전화번보부를  원하는 것을 보면 컴퓨터를 많이 활용하는 듯하다.컴퓨터는 황씨의
청각  결함을 많이 메꾸어 줄 수 있을 것이다.정상인에게는 쉬운 일이 장애인들에게는
어려운 일이 많고 이 때문에 컴퓨터의 도움은 장애인에게 더욱 크다.        오아볼로
씨는  어려서부터 뼈가 자꾸 부러지는 기이한 병을 앓아 장년인데도 키는 아이만 하고
거동이  불편하다.오씨는 날마다 수십 통의 편지를 써서 신체 장애자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이 정성이 알려져 문화체육부장관이 표창장을 주었다.
몸이  불편한  오씨에게는 글을 쓰는 것이 중노동이지만 컴퓨터 덕분에 이 일을 할 수
있었다.

  이윤자씨는  재수생일 때 도서관에 가다가 택시에 치여 척추를 다쳤다.서른 한 살이
된  이씨는  독학사 시험에 들어 올해 학사 학위를 받았다.이씨의 꿈을 이루게 도와준
것도 컴퓨터였다.입에 막대기를 물고 컴퓨터 자판을 하나하나 눌러 글을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씨는  컴퓨터 통신을 하면서 알게 된 건실한 정상인 총각과 지난해에 결혼
했다.
 
 영국의 고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박사는 대학 졸업 무렵 신경마비 증상이 시작되
어  팔다리를 쓰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한 지가 오래 되었다.마흔 다섯 살밖에 안되었
는데도 퍽 늙어 보인다.그래도 그는 가장 부지런한 연구자이며 인기높은 강연자다.`빅
뱅'이나  `블랙홀' 이야기는 호킹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그는 휠체어에 달아놓은
휴대용 컴퓨터로 말을 하고 글을 쓴다.그에게 컴퓨터는 생명과도 같다. 

  그는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는 글자들을 하나하나 눈을 꿈벅이거나 손에 쥔 스위치를
눌러  고르면서  글을 써 나간다.이렇게 쓴 글을 음성합성해 연설할 수도 있다.개인용
컴퓨터가  나오기  전에 글을 쓸 때는 한 사람이 알파벳판을 들고 한자한자 짚고 호킹
박사가 원하는 글자가 나올 때마다 눈썹을 치켜 올리면 그 글자를 조력자가 골라 옮겨
썼다.지금은 호킹 박사 혼자서 글을 쓰고 수정하고 저장할 수 있으며  음성파일도 만들
수 있다.

  미국의  짐  루빈씨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이다.그는 막대기를 입에
물 만한 힘도 없어서 날숨과 들숨만으로 글을 입력할 수 있는 컴퓨터를 쓴다.루빈씨가
손수  꾸민 웹 사이트는 매우 풍부한 정보를 담고 있다.삶과 죽음 사이를 오가던 그는
절망과 고립 속에서 벗어나 세계의 장애인들을 위한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낀다.
 
  컴퓨터  관련  기술 발달로 청각이나 시각 장애자,척추 장애자가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문제는  컴퓨터가  비싸고 장애인들이 대개 이를 살 만한 돈도 배울 만한 기회도
없다는 것이다.서울 중앙여고의 서영창 선생 같은 이들이 헌 컴퓨터들을 구해 청각 장
애자들에게 주고 사용법을 가르치는 일에 열성을 쏟고 있으며 척수 장애자들을 위해서
는  수레바퀴선교회가  활동하고 있지만,국가와 사회가 여기에 좀더 관심을 가져야 한
다.장애인을 위한 특수 컴퓨터를 만들어 기증하기도 해야 한다.한글 타자기 개발의 공
로자인 공병우 박사(작고)는 맹인을 위한 타자기를 만들어 수백 대씩 기증하곤 했다.

  텔레콤  이탈리아의 웹 페이지를 보면 로마 공항에 시각 장애자와 청각 장애자가 사
용할 수 있는 전화가 있음을 알리고 있다.장애인도 불편 없이 살수 있어야 선진국이다.      
박강문 <서울신문 과학정보부장>
뉴스피플 1997.2.27

정보화 사회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