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강령이 필요없는 사이버세상을 만들자

인터넷이용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사이버공간에서의 윤리문제가 심각하게 부각되고 있다. 아무리 가상세계에서의 일이라도 인간이 활동하는 공간인 만큼 더 이상 윤리의 공백상태로 두어서는 안 된다는 게 네티즌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95년에 PC통신인구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윤리문제가 대두되자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정보통신 윤리강령」을 선포한 적이 있다. 불건전 정보유통의 추방과 건전한 정보화사회의 구현을 위해 지켜야 할 행동양식과 일반적인 사회규범을 담은 내용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지난 6월엔 정보윤리위원회에서 다시「네티즌 윤리강령」을 만들어 선포했다.「정보통신 윤리강령」을 내놓은지 꼭 5년만의 일이다. 취지는 날로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는 불건전정보 유통행위와 사이버 성폭력·명예훼손·도박 등 사이버범죄를 막아보자는 뜻에서다. 그런데 내용을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다름이 없다.

네티즌 윤리강령은 ▲타인의 인권 및 사생활의 존중 ▲건전한 정보의 제공과 올바른 사용 ▲불건전한 정보의 배격 ▲타인의 정보 보호 및 철저한 자신의 정보 관리 ▲속어나 욕설 사용 자제 ▲실명 사용 ▲바이러스 유포나 해킹 등 불법적인 행동 금지 ▲타인의 지적재산권을 보호 ▲사이버공간에 대한 자율적 감시와 비판활동에 적극 참여 ▲건전한 네티즌 문화의 조성 등 10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네티즌들의 윤리문제가 얼마나 심각하면 비슷한 내용의 윤리강령이 거푸 선포되는가 하는 생각을 하면 입맛이 씁쓸해진다. 윤리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경우 다음에는 어떤 이름의 윤리강령이 나올지 자못 걱정스럽기도 하다.

사실 PC통신보다 훨씬 위력적인 인터넷 사용자가 엄청나게 늘어나면서 사이버세계에서는 5년 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갖가지 유형의 우려할 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이 위법한 사항일 때는 법적으로 처리하면 되겠지만 위법성을 가리기 어려운 경우라면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이처럼 가상공간에서의 행위가 현실세계의 법에 저촉이 되든, 안되든 그것이 왜곡됐거나 비윤리적일 때 개인과 사회에는 적지 않은 해악을 끼칠 수 있다. 바야흐로 인터넷시대에 접어든 지금 많은 전문가들이 윤리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도 이러한 행위가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방치될 때 발생할 부작용이 엄청나게 커진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의 패션전문 사진작가 론 해리스(66)라는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미녀모델들의 난자판매를 주선하고 나서자 시민단체 등에서 강력하게 반발한 일이 있다. 이 웹사이트는 8명의 여성모델 사진과 함께 신체 사이즈, 가족관계, 난자를 판매하게 된 동기 등을 자세히 소개하고 1만5천달러에서 15만달러까지의 가격으로 경매에 부쳤다. 해리스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비윤리적이고 혐오스럽다는 비난이 일자 "다윈의 우생학법칙이 적용될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인터넷 경매사이트인 「e베이」에도 얼마전 한 예비부모가 곧 태어날 사내아이를 경매물품으로 내놓아 네티즌들을 경악케 했었다. 이 내용은 결국 장난으로 밝혀졌지만 세상에 태어나지도 아기를 경매대상에 올렸다는 사실은 정마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비록「장난」이었다고는 하나 그러한 발상을 하는 자체가 용납하기 어려운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하겠다.

e베이에는 또 플로리다의 한 남자는 1백% 정상기능을 하는 자신의 콩팥을 팔겠다는 경매내용이 실려 최고가 5백75만달러까지 제시되기도 했다. 장기매매 역시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사이버공간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반인륜적인 현상이 또 어떤 형식으로 나타날지가 걱정이다. 장기매매가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수많은 네티즌이 방문하는 인터넷사이트에 공개적으로 자신의 장기를 경매에 부치는 현상을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과는 경우가 다르지만 얼마전에는 대학생인 딸이 바람을 피우는 자신의 어머니를 인터넷상에 고발한 일이 발생해 네티즌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머니의 실명과 직장 및 친정집 전화번호까지 공개한 딸의 행위가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 일이냐는 것이 논쟁의 초점이었다. 딸의 행위에 대해 옳다는 측이 있는가 하면 「사회적 살인행위」라면 비판하는 측이 있었다.

인터넷은 인류가 지난 1백년동안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포춘지는 지난해 11월호에서 인터넷이 20세기 인류역사를 바꿔 놓은 문화 가운데 가장 위대한 것이라고 공식발표까지 했다. 인터넷을 이렇게 최고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 인류의 생활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행복을 안겨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여러 가지 걱정거리도 함께 안겨주고 있다. 그래서「네티즌 윤리강령」까지 만들지 않는가. 올바른 네티즌윤리의 확립은 윤리강령을 만들었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한다. 인류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신대륙으로 일컬어지는 사이버스페이스(가상공간)가 비윤리적인 행위로 얼룩진다면 우리 인류의 장래는 결코 장밋빛이 될 수 없다.

21세기 정보화사회, 인터넷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이 세상을 참으로 살아갈 만한 세상으로 만들어야 할 의무와 책임을 지고 있다. 그것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어려운 숙제라 할지라도 그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을 결코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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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편집국장
2000.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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