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의 운명, 무선호출기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얼마전 015무선호출사업자인 나래앤컴퍼니가 12개 지역 사업자 가운데 처음으로 사업권을 정보통신부에 반납했다는 소식은 이미 예견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충격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신호음 때문에「삐삐」라고 불리는 무선호출기가 이처럼 허무할 정도로 푸대접을 받고, 그래서 사업자는 「장사가 되지 않아」어쩔 수 없이 문을 닫는 다는 말을 들으니 학창시절 열심히 외었던「인간만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나래뿐만 아니라 전북이동통신, 제주이동통신, 신원텔레콤(제주)과 새한텔레콤(충북) 등도 사업권을 반납하거나 법원의 화의절차를 밟고 있다는 보도에 접하고는 불과 몇 년전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은 존재였던 무선호출기가 어쩌다가 이런 지경이 되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현재의 무선호출가입자수는 50여만명. 지난 97년에 최고 1천5백20여만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이처럼 가입자수가 급격히 줄어든 것은 휴대폰 때문임은 물론이다. 97년부터 기존의 셀룰러방식(011 및 017)외에 PCS방식(016, 017, 018, 019)의 휴대폰이 등장하면서 삐삐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하겠다.

지금 언론에서는 차세대 이동통신인 「IMT2000」사업자선정과 관련해 거의 매일 대서특필하고 있다. IMT2000이야말로 21세기 정보화사회의 입과 귀와 눈의 역할을 할 꿈의 이동통신이라는 점에서 정보통신업계와 인터넷업계의 촉각은 온통 여기에 쏠려 있다.

무선호출기가 1세대 황금알을 낳은 거위였다면 휴대폰은 2세대라고 할 수있고, 엄청난 수요가 예측되는 IMT2000은 3세대라고 부를 만하다. 들고 다니면서 인터넷으로 메시지를 주고받고 전자상거래, 주식거래 등 오만 것을 할 수 있으니 너도나도 IMT2000을 갖게 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게 되면 이 시대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휴대폰은 무선호출기의 운명을 답습할 지도 모른다. 과연 그렇게 될까. 그 해답을 찾으려면 무선호출기의 역사를 돌이켜 봐야 할 것 같다.

무선호출기가 우리앞에 나타난 것은 80년대 중반이었다. 그때는 매우 비싼 것이어서 돈 많은 사람이나 큰 회사의 간부들이 갖고 있던 귀중품이었다. 그래서 삐삐를 허리에 찬 사람을 보면 「무언가 한가락하는 사람」하는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실제로 삐삐 가진 것을 큰 자랑으로 여기기도 했다.

또 고급관리나 수사관, 신문·방송기자들이 업무상 갖고 다닌 탓에 속된 말로 「끝발좋은 사람」으로 인정받았고,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한 대의 가격만 해도 그때 돈으로 20만원을 넘었으니 힘없는 사람이 지니기란 거의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신분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무선호출기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 93년 사업자가 전국적으로 12개사로 늘어나면서였다. 92년에 1백45만명이던 것이 불과 3년만인 95년에 1천만명을, 97년에는 1천5백만명을 돌파하면서 피크를 이루었다.

그런데 무선호출기가 왜 이처럼 신기루같이 같이 빨리 사라져버린 것일까.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업자들이 미래예측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97년 PCS가 등장했을 때 설마 무선호출기를 잡아먹을 공룡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당시 삐삐의 가격은 2만원, 휴대폰은 30만원선으로 단말기의 가격차가 워낙 크고 기능면에서도 삐삐가 앞서고 있어서 사업자들은 적어도 10년 정도는 경쟁력을 가진다고 오판을 했던 것이다.

PCS가 등장한 지 2년도 안되어 휴대폰회사들이 단말기를 공짜로 공급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게다가 무선호출기의 자랑이었던 문자메시지 서비스기능까지 갖추자 휴대폰은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삐삐를 물리치고 이동통신의 왕좌를 차지하고 말았다.

요즘의 휴대폰을 보면 안 되는 것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정보검색, 채팅,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휴대폰인지 컴퓨터인지 모를 정도이다. N세대들이 휴대폰으로 대화하듯이 문자메일을 주고받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기성세대가 휴대폰을 그저 언제어디서나 쉽고 빠르게 음성통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다고 하겠다.

휴대폰회사들이 가입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내용은 제각기 특색을 지니고 있다. 영화나 스포츠, 드라마의 TV프로그램을 보여주는 것, 최신 유행가요의 가수이름이나 제목 및 가사내용을 가르쳐주는 것, 실시간 교통정보를 음성으로 알려주는 것 등 참으로 다양하다. N세대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은 필수다. 휴대폰으로 여러 사람이 동시에 온라인게임을 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휴대폰주인이 구단주 역할을 하는 프로야구게임도 있다.

휴대폰회사들이 이처럼 첨단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생존문제 때문이다. 우선 경쟁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머지않아 IMT2000과의 한판승부를 벌여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 하겠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02년이 되면 휴대폰 가입자는 2천9백만명, IMT2000 가입자는 1백30만명이 되고 2010년에 가서는 휴대폰이 6백30만명으로 줄어드는 대신 IMT2000는 2천5백만명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예측이 들어맞을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무선호출기처럼 휴대폰도 불과 몇 년 사이에 도태될지 모를 일이다. 삐삐가 97년 이후 10년간은 생명력을 지닐 줄 알았으나 2∼3년 사이에 몰락했듯이 휴대폰도 똑같은 운명을 맞게 되지 않으리라고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정보화사회에서는 통신기기뿐만 아니라 우리생활의 모든 면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어제까지의 전통이 오늘은 낡은 관습이 돼버리고, 오늘의 절대적 가치가 내일은 아무런 의미 없는 껍데기가 되고 마는 것이 바로 이 시대의 특징이다.

무슨 일이든 정확하게 예측하고 대비해야만 무한경쟁의 시대, 변화무쌍의 시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를 게을리 했다가는 언제 존재도 없이 사라질지 모른다 정보화사회로 일컬어지는 이 시대가 정말 무섭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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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월간 인터넷라이프 편집인
200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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