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아버 진료행위, 아날로그 잣대로 재서는 안된다

전국 1만7천6백여개의 병원이 폐업에 들어가면서 일주일 가량 빚어졌던 의료대란이 지난 24일 여야 영수간에 약사법을 조기에 개정키로 합의함으로써 사태는 일단 한고비를 넘겼다.

의사와 약사간의 「밥그릇싸움」으로 요약되는 이번 사태는 정부당국과 의사협회측, 그리고 의사와 약사측의 주장이 서로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국민들의 건강을 볼모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지극히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병원이 문을 닫자 질병을 앓거나 갑자기 아프게된 수많은 국민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엄청난 고통을 당해야 했고, 심지어는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도되기도 했다.

그런데 의료대란이 발생하자 사이버의료상담이 매우 활발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현실세계에서 의사의 진료를 받을 수 없게 되자 네티즌들이 사이버공간에 들어가 진단을 받는 행위가 자연스럽고 그리고 필연적인 일이 됐다는 것은 인터넷시대의 특성과 위력이 어떤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모든 길은 인터넷으로 통한다」는 말이 있지만, 어찌 보면 「인터넷으로 못 갈 곳이 없다」고 해야 할 만큼 인터넷으로 못 갈 곳이 없고, 안 될 것이 없는 세상이 됐다. 이처럼 우리들은 어느새 인터넷만능시대를 맞은 것이다.

그런데 지난 13일 인터넷으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아파요닷컴(대표 민경찬·www.apayo.com)이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의약분업이 본격적으로 실시되는 7월1일부터 인터넷을 통해 가입회원을 대상으로 의사면허번호가 기재되어 있는 처방전을 무료로 제공하는 사이버의료서비스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보건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 등이 강력하게 반발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법상 물리적인 형태의 의료기관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고 문진(問診)만으로는 오진의 위험성이 있다며 사이버의료행위를 할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측도 의사는 "문진(問診), 시진(視診), 촉진(觸診), 청진(聽診)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환자를 진료한 다음 처방을 하는데, 문진만으로 내려진 처방을 의료행위로 보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전자상거래서명법을 적용하면 의사면허번호가 기재된 처방전은 일반처방전과 동일한 효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전자처방 전달시스템의 보안이 취약해 처방전의 위조 또는 변조 가능성이 높아 인정할 수 없다"고 논리에도 맞지 않은 궁색한 이유를 내세우고 있다.

이 문제가 알려진 뒤 며칠 되지 않아 의사들이 환자의 진료를 거부하며 문을 닫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자 사이버진료사이트 게시판에는 "국민건강을 염려한다는 의사들이 병든 환자를 내팽개치고 시위나 하는 행위야말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며 인터넷 무료처방전을 찬성하는 의견들이 쏟아졌다.

사이버진료가 문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 인터넷상에 사이버병원을 운영하던 민모씨(39.의사)가 보건복지부에 의해 의료법 및 약사법위반 혐의로 고발조치 당한 것이 첫 사례라 할 수 있다.

그 때도 보건복지부는 지금의 대한의협의 주장대로 "질병진단이라 함은 환자에게 증상을 묻는 문진과 증세를 확인하는 시진 및 촉진 등 종합적 진료행위를 말하는데, 민씨가 전자우편이나 채팅을 통해 진료 및 처방을 한 행위는 위법"이라는 얘기였다.

병원이나 의원을 운영하는 의사가 통신보조수단으로 인터넷상의 가상 의료기관을 활용해 상담하는 행위는 가능하지만 실제상의 병원이 없이 인터넷상에 의료기관을 세운다는 것은 불법이라는 것이 보건복지부의 해석이었다.

그렇다면 보건복지부의 판단대로 두 사이버병원의 의료행위가 과연 위법한 것인가. 현재 인터넷상에는 여러 사람들이 갖가지 직업활동을 하고 있다. 이른바 무점포로 영업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 같은 상행위에 대해 그것이 상법위반이라든가 하는 이유로 당국이 고발했다는 말을 들어 본 일이 없다.

그것이 현실세계든, 가상공간이든 상행위를 하여 이득을 남기면 그만큼 세금을 내면 된다. 실제로 존재하는 점포를 차리지 않았기 때문에 상행위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인터넷에 의한 전자상거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말과 전혀 다르지 않다.

결국 보건복지부의 논리대로라면 전자상거래는 불법적인 행위가 된다. 의사자격을 가진 사람이 실제의 병원(점포)없이 환자(손님)과 거래하는 행위를 위법한 것이라고 한다면, 사업자동록을 한 사람이 점포없이 전자상거래를 한 일도 위법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의사의 진료행위를 일반 상행위와 같은 반열에 놓고 따진다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는 있다. 상행위는 그저 물건만 사고 파는 일이지만 의료행위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소하지만 인터넷이 있는 한 사이버 의료기관은 앞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의학도들이 인턴과 레지던트과정을 끝내고 정식으로 의사자격을 얻었을 때 병원에 취업하지 못하거나 돈이 없어 개업도 할 수 없을 때는 사이버병원을 차리는 일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방침이나 대한의사협회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이 맞고 있는 정보화사회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급격히 발전하고 있음 직시해야 한다. 그런데도 현실의 잣대로 사이버세상을 재려하는 것은 그야마로 어리석은 생각이자 행동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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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칼럼니스트
2000.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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