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3총선은 21세기 사이버선거였다

4·13총선이 승자도 패자도 없이 끝났다. 이번 선거결과를 놓고 여당인 민주당은 민주당대로 비교적 만족할만한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 야당인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4년마다 치르는 국회의원선거지만 이번 선거야말로 종전과는 매우 판이한 양상을 띠었음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거리마다 넘쳐나던 플래카드나 벽보가 별로 보이지 않는 대신 컴퓨터의 인터넷공간에서는 활발하게 선거운동이 펼쳐졌다.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형태의 선거운동이 처음 선을 보인 것이다.

이를 두고 온라인선거라고 말하는가 하면 사이버선거라고 부르기도 한다. 종전의 선거가 아날로그형태의 선거였다면 이번 선거는 디지털형태의 선거였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뉴밀레니엄이 시발점에서 치러진 이번 선거는 21세기선거가 어떤 형태로 진행되는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4·13총선을 사이버선거였다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지금까지 우리가 치렀던 선거는 눈에 보이는 현실세계에서 벌어지는 선거운동형태였지만 4·13총선은 사상 처음으로 인터넷이라는 사이버공간에서도 치열한 홍보와 유세활동이 펼쳐지는 새로운 양상을 나타냈다. 그래서 사이버선거라고 불리어지는 것이다.

지난해만 해도 겨우 몇몇 정치인만이 홈페이지를 개설했지만 이번 선거를 앞두고는 각 입후보진영이 저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놓고 적극적인 선거운동을 벌이면서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는데 힘썼다.

입후보자들을 사이버공간에서 돕는 사이버보좌관들은 각종 사이트에 들어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홍보에 힘쓰는가 하면 상대방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여러 가지 형태로 공격했다.

입후보자들의 홈페이지는 유권자들, 특히 젊은 네티즌들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데 중요한 판단자료를 제공하는 역할을 했다. 그들은 각 후보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그들의 경력이나 공약사항 등을 살펴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했으며 지지할 마음이 생기면 격려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물론 싫어하는 후보자의 홈페이지의 투고란에는 비난이나 비방하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상당수 후보들이 네티즌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이들을 겨냥한 공약을 내걸었던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인터넷을 위한 초고속정보통신망이 깔려있지 않은 지역의 입후보자는 인터넷을 언제, 어디서나, 쉽고 빠르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는가 하면 지역의 컴맹이나 넷맹을 위해 컴퓨터교육의 기회를 넓혀주겠다고 말하는 입후보자도 있었다.

그러나 많은 후보들은 홈페이지를 다양하고 화려하게 만드는 데만 신경을 썼을 뿐  네티즌들을 의식한 공약을 마련하지 못해 득표작전에서 눈에 안 보이는 손해를 입기도 했다.

이런 후보들은 남들이 홈페이지를 만드니까 나도 따라서 만든다고 생각했을 뿐 홈페이지가 선거에 얼마나 영향력을 미칠지를 짐작조차 못한 사람들이다. 더구나 컴퓨터와 함께 밤을 지새는 청소년들이 지금 어느 정도로 인터넷이라는 화두에 매달려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반면에 인터넷의 위력을 조금이라도 알았던 후보들은 주요 공약사항에 정보화사회나 인터넷과 관련한 내용을 포함시킴으로써 자신이 정보화사회를 이끌어갈 새천년시대의 일꾼이라는 점을 네티즌들에게 인식시키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어떤 후보는 아예 홈페이지의 잘 보이는 곳에다 자신이 네티즌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를 상세히 밝히는가 하면 「네티즌은 21세기의 주역이다」는 등의 칼럼을 올려놓음으로써 청소년과 20대 유권자들의 마음을 잡기도 했다.

이번 선거가 사이버선거라는 사실은 선거 이틀전인 11일 영국의 BBC방송이 "한국 총선은 온라인선거"라고 서울발 기사를 보도한데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방송은 "한국이 불과 2년 남짓한 사이에 세계에서 컴퓨터 가독률이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가 됐다"면서 따라서 이번 총선에서 인터넷의 영향력이 뚜렷이 부각된 것은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 방송은 특히 수개월전 시민운동단체들이 부적격 후보자의 명단을 발표하고 이를 인터넷에 올릴 때부터 가시화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BBC방송의 보도내용처럼 이번 선거를 맞아 민주당과 한나라당, 자민련, 민국당 등은 각각 웹사이트을 개설했고 대다수 후보들도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선거운동에 활용했다.

야후나 알타비스타, 네이버 등 이름있는 검색사이트에서도 입후보자들의 홈페이지를 소개하는 공간을 만들어 줌으로써 이번 선거가 「사이버선거」의 특성을 지니는데 한몫을 했다.

종전의 선거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인터넷이 이번 선거에서 아주 중대한 변수로 작용했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인터넷은 입후보자들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했다. 유권자들은 인터넷을 통해 입후보자들을 보다 많이 알 수 있었다. 비록 자기동네에 출마한 입후보자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몰라도 인터넷 홈페이지만 보면 자세한 사항을 알 수 있어 누구에게 표를 던질 것인가를 결정하는 자료로 삼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지난 96년의 15대 선거는 차량 등에 각종 첨단장비를 동원하여 영상물을 보여주는 등 그 이전과는 색다른 광경을 연출했었다. 말하자면 「멀티미디어선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세태가 바뀌면서 선거양상도 「사이버선거」라는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한 것이다.

이번 선거가 사이버선거였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홈페이지제작을 소홀히 했거나 네티즌들을 위한 공약을 내걸지 않은 후보들은 당락에 영향을 미칠 만큼 많은 표를 잃었을 것으로 믿어진다.

4·13총선이 사이버선거라는 인식을 갖고 홈페이지를 통해 네티즌을 마음을 사로잡거나 사이버유세라는 새로운 형태의 선거운동을 한 후보가 그렇지 못했던 후보에 비해 훨씬 유리한 결과를 얻었음은 틀림없을 것 같다.

사이버선거. 무척 생소한 단어지만 21세기의 선거는 가면 갈수록 사이버선거의 위력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우선 시간이 많이 남는 사람이라면 재미 삼아 이번 4·13총선, 즉 첫 사이버선거가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확인해 볼만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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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칼럼니스트
2000.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