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불편만 끼치는 전화자동응답장치

우리는 관공서에 민원이 있거나 판매회사 등에 물어볼 일이 있으면 전화를 걸게 된다. 우선 안내양과 통화한 뒤 자신이 원하는 담당부서를 대어 달라고 요구하고 담당자가 나오면 전화면담을 한다.

이 과정에서 담당자의 답변태도가 불성실하거나 불친절할 때는 전화로 다투기도 하고 심지어는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찾아 직접 항의를 하기도 한다. 이름이 크게 알려진 대기업이나 백화점은 이쪽에서 어리둥절할 만큼 친절하게 응대해주지만 민원업무를 다루는 관공서나 정부산하기관, 단체 같은 곳에서는 아직도 친절과는 거리가 먼 곳이 적지 않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처럼 내가 알고 싶은 것을 물어볼 수 있는 방법이 크게 달라졌다. 답변자가 사람이 아니라 미리 녹음된 전화음성일 때가 많은 것이다. 전화사용량이 크게 늘어나면서 각급 관청이나 기업체에서는 이른바 음성자동응답장치(ARS)를 설치해놓고 민원인을 대하고 있다.

 ARS란 Audio Response System 또는 Automatic Response Service의 약어로 음성응답시스템, 자동음성서비스로 번역할 수 있으며 알기 쉽게 음성응답서비스나 전화자동응답장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ARS는 사람이 일일이 제공하던 음성정보를 전화가 자동적으로 미리 녹음된 내용을 각각의 경우에 맞춰 답변할 수 있도록 해놓았다. 이에 따라 폭넓은 서비스가 가능해져 이제는 웬만한 곳에서는 이 장치를 설치해놓고 있다. 전국적으로는 1만여 회선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엔 전화번호안내나 좌석예약, 자동통지 등 간단한 안내서비스에 국한됐으나 컴퓨터 기억장치의 대용량화, 고집적화, 고속화와 함께 음성의 디지털화가 가능해지고 음성압축기술이 진보하면서 ARS방식도 크게 발전하고 종류도 다양해졌다.

4∼5년전부터 일반화되기 시작한 ARS는 지난 90년대 초 「700서비스」프로야구정보안내가 붐을 일으키자 오늘의 운수, 건강상담, 날씨안내 등 여러 분야로 급격히 번져나갔으며 요즘은 삐삐인사말, 휴대폰 음성녹음 등 개인의 생활에까지 깊숙이 침투돼있을 만큼 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ARS의 기술이 발전한데다 관공서나 기업체의 요령(?)이 늘어난 탓인지 자동응답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는 담당자를 바꿀 수 있도록 해주던 것을 이제는 "다음에 전화를 하라"는 전화음성을 들려주거나 아예 전화조차 받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다만 고객 끌어안기에 안간힘을 쓰고있는 이동통신회사나 백화점 같은 서비스업체는 친절이 생명인 만큼 고객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끝까지 답변해 주고 있는 형편이다.

이처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에 따라 등장한 ARS가 설치한 쪽에서 보면 인력과 시간을 줄일 수 있어 매우 고마운 존재가 되겠지만 민원인 쪽에서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민원인의 전화가 많은 관공서나 정부산하기관에 전화를 걸어보면 사정이 달라졌음을 확인알 수 있다. 얼마 전까지 들을 수 있던 안내직원을 상냥한 목소리는 간데 없고 미리 녹음된 자동응답만 들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자동응답이 시키는 대로 코드를 눌러보지만 "통화량이 폭주하고 있으니 다음에 전화하라"는 말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실패하기 일쑤다. 다시 한번 통화를 시도해보아도 역시 같은 목소리에 같은 내용이 반복될 뿐이어서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다. ARS전화가 클로버(수신자부담)전화처럼 무료이면 몰라도 전화를 거는 이용자가 요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담까지 져야 한다.

민원인을 상대하는 공공기관 가운데 ARS를 설치하지 않은 한 곳은 거의 없다. 그러나 민원인과 직접적인 대화가 필요한 곳이 공공기관의 민원인 창구라는 점을 감안할 때 마구잡이로 ARS를 설치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궁금해진다. 인력감축이라는 점에서는 필요성이 인정되지만 국민들의 경제적·시간적 낭비를 감안하면 국가 전체적으로는 꼭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생각이다.

ARS가 민원인들에게 불편을 끼치기보다는 편리함을 더 많이 선사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만약 ARS라는 것이 없다면 민원인들은 더 많은 불편을 겪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공공기관에서 자신들의 편리성 때문에 일방적으로 ARS를 설치함으로써 공공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데 있다. 그래서 공공기관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생각보다는 경비절약과 자신들의 편의성을 위해 ARS를 설치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ARS가 불편하다는 것은 여러 경로를 통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런 불편을 겪더라도 민원담당자와 통화가 되면 괜찮겠지만 전화폭주 등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불만을 갖게 된다.

현재 격렬한 판매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동통신회사에서는 자동응답으로 소비자의 요구를 해결해 주지 못할 때는 담당자를 연결시켜 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실제로 필요해서 전화해보면 관공서의 ARS로 전화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소비자가 조그마한 불만이라도 갖지 않도록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야만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임은 그들 스스로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공공기관 책임자는 ARS를 설치하는 것만으로 민원인을 위한 책임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을 고쳐야 한다. 그보다는 민원이 폭주하는 시간만이라도 민원전화안내원을 배치해 시민이 민원부서와 통화를 못해 갖게 되는 불편과 불만을 해결해주는데 힘써야 한다.

지난 95년 미국의 보스턴시는 시민들로부터 "기계에 녹음된 소리가 아닌 인간의 목소리를 듣고 싶다"는 건의를 받게 되자 시청 안에 설치한 모든 ARS를 제거시킨 일은 유명한 일화로 알려져 있다.

보스턴시의 이 같은 조치는 시민에게 봉사하는 공공기관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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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일 칼럼니스트
200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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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칼럼니스트모임